조폭 잡던 강력부 조폭 잡다 해체(?)위기

한국판 '마니 폴리테' 서울지검 강력부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받던 살인 용의자 1명이 조사 도중 사망했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휴일이었던 10월 27일 오후 1시30분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 6층 3차장실. 사복 차림으로 황급히 출근한 정현태서울지검 3차장 검사와 노상균 강력부장은 기자들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동반 사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강력부 살인용의자 사망사건이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또한, 지난 12년간 조직폭력배(조폭)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서울지검 강력부에 설립 이후 최대의 위기가 도래한 순간이기도 했다.


김태촌 구속ㆍ슬롯머신 수사등 ‘개가’

서울지검 강력부는 1990년 5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전국 5개 지방청 강력부와 함께 설립됐다. 당시만 해도 조폭 수사는 경찰이 전담했고, 검찰은 수사지휘 및 공소유지만 담당하던 상황이었다.

심재륜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을 초대 강력부장으로 맞아 야심차게 닻을 올렸던 강력부는 설립 초기부터 대어를 낚아 올렸다.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와 함께 조직폭력계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던 서방파 두목 김태촌(복역중)씨를 구속한 것.

김씨는 1986년 말 인천 뉴송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피습사건의 주범으로 구속기소됐다가 89년 1월11일 폐암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처분으로 출소한 상태였다. 김씨는 석방 이후 경기 파주군 모교회 금식기도원에 들어가 금식 간증기도를 하는 등 종교에 귀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범죄세계에서 완전히 손을 씻은 듯한 김씨의 행동이 철저한 위장책이라는 사실을 간파, 추적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김씨가 제주 서귀포 KAL호텔 등지의 빠찡꼬 업자들을 협박해 경영권 지분의 60%에 해당하는 3억원 상당을 빼앗고 시가 8억원 상당의 광주 신양파크호텔의 빠찡꼬 경영권도 3억원에 강제 인수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전격 구속했다.

당시 양재택(현 서울지검 총무부장) 검사는 김씨가 자주 출몰한다는 룸살롱에 잡입했다가 김씨 일파와 마주쳐 술자리를 함께 하는 ‘변’을 당하기도 했다. 김씨가 양 검사의 시계를 보고 “검사님, 시계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라며 즉석에서 자신의 롤렉스 시계와 바꿔 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강력부는 이후에도 서방파의 전신인 동아파 대부 박영장씨와 연예 프로덕션 대부 최봉호씨를 잇달아 구속, 조폭들로 하여금 서울지검 강력부장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 됐다.


박철언 의원 구속등으로 전성기 구가

서울지검 강력부의 위상을 확고히 한 ‘슬롯머신’사건은 1993년 4월 16일 서울시내 79개 빠찡꼬 업체에 대한 일제단속으로 촉발됐다. 5월3일 빠찡꼬 업계의 대부 정덕진씨가 검거됐고, 수사는 급격히 정ㆍ관계 쪽으로 칼날을 돌리게 된다.

당시 정씨는 세무조사에서 180억원의 탈세사실이 적발됐으나 고발되지 않았고 폭행 혐의 등으로 10여 차례 입건되고도 실형을 받지 않는 등 배경이 엄청난 인물로 알려져 수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으나 강력부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어 버렸다.

홍준표(현 한나라당 의원), 은진수(현 변호사)검사 등을 중심으로 한 강력부 검사들은 정씨가 김태촌씨에게 2억8,000만원을 건넨 사실을 확인한 데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선거사조직인 태림회에도 3억원을 상납한 사실을 포착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첫 먹이는 경찰 거물급 인사인 치안감 천기호씨. 천 치안감은 슬롯머신 업소 허가 과정에서 편의를 봐주고 1억1,000여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 수감됐다. 뒤이어 안기부 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 당시 병무청장이 특별세무조사 무마 조건으로 1억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슬롯머신 사건 수사의 하이라이트는 ‘6공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의원의 구속.

홍 검사가 정씨를 상대로 엄 청장 정도의 거물급을 동원하고도 실패했던 세무조사 무마건을 누구를 통해 해결했는지 따져 묻는 과정에서 “‘원자탄’을 썼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

원자탄이 박 의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수사팀은 정씨의 동생 덕일씨가 박 의원에게 돈을 건네는 자리에 동석했던 홍모 여인의 존재를 추적해 홍 여인과 덕일씨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박 의원은 한때 정적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겨냥, “새벽이 왔는데 닭의 목을 왜 비트느냐”고 항변했으나 구속을 면치 못했다.

강력부가 시작한 슬롯머신 수사는 결국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대검 중수부로 넘어갔고, 잘 나가던 K고 인맥의 대부 이건개 고검장의 구속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까지 불러왔다.

강력부는 또 영생교 등 사이비 종교단체의 비리, 연예계 비리 등을 파헤치면서 꾸준히 그 존재가치를 인정 받아 왔다. 조폭수사와 함께 강력부는 서울지검 마약수사부가 별도 설립된 지난해 까지 우리나라 마약수사의 ‘메카’ 역할을 맡기도 했다.


폭력적 수사관행이 부른 위기

운명적으로 ‘거친’ 인물을 다룰 수 밖에 없는 강력부에 대해서는 그 명성만큼이나 수사 방식의 문제점도 자주 지적돼 왔다. 조사 대상이 주로 조직폭력배나 마약사범 등 우락부락한 인물들이라 항상 다소의 ‘완력’이 동원됐던 것.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수사 현실이라는 전제 하에 강력부 수사 관행에 대해서는 검찰안팎에서도 관대한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홍경영 검사의 구속이후 검찰 안팎에서 “이제 조폭수사는 끝났다”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강력부의 폭력적인 수사 관행은 끝내 강력부 역사에서 주임 검사가 구속되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강력부의 살인용의자 조천훈(30)씨 구타 사망사건을 초래한 조직폭력배 살해사건에 대한 수사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홍경영 검사는 1998년과 99년에 발생한 ‘파주 스포츠파’ 조직원 등의 사망사건이 조직내 암투에 의한 살해사건임을 간파하고, 3년간의 추적 끝에 10월 용의자 권모, 정모씨를 체포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문제는 공범으로 체포된 조천훈(30)씨와 최모씨가 쉽게 입을 열지 않으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수사팀은 그간의 관행대로 조씨의 무릎을 꿇리고 구타하면서 밤샘 조사를 벌였고 조씨는 다음날 정오께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이 와중에 최모씨가 도주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검찰청사내에서 조사받던 용의자의 사망이라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공범 박모씨가 실질영장심사에서 수사관들로부터 물고문을 받았다고 폭로,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검찰은 물고문 사실을 해명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특수조사실을 언론에 개방했고, 대검 감찰부는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감찰부는 신속한 조사끝에 홍 검사가 사실상 수사관들에게 구타를 간접 지시한 사실을 밝혀내고 홍 검사 등을 구속한데 이어 공범 박모씨에 대해 물고문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일부 확인,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장관ㆍ검찰총장 동시 사퇴에 이어 현직 주임 검사의 구속이라는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하자 검찰 내부에서는 아예 ‘조폭 수사’를 경찰에 맡기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다.

이는 결국 강력부 설립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로, 사실상 강력부 해체를 염두에 둔 주장이다. 한때 한국판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 이탈리아의 부정ㆍ부패 척결운동)의 전범으로까지 일컬어졌던 서울지검 강력부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지, 아니면 조직을 잘 추스려 ‘조폭 잡는 강력부’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진석 기자

입력시간 2002/11/15 11:18


박진석 jseo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