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프레소] 한국적 퓨전재즈의 진수 만끽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 재미 있게 즐거운 음악을 하자는 거죠.”

그룹 ‘웨이브’의 리더 김용수(32ㆍ색소폰)가 하는 말은 시원시원하다. 한달 전 4집 ‘The Style’을 발표하고 11월 5일 대학로 폴리미디어 씨어터에서 처음 갖는 콘서트의 현장에는 그의 말대로 ‘재미 있고 즐거운’ 재즈가 가득했다.

공연 직전 김용수가 객석에 한가지를 주문한다. “저희가 연주하는 곡이 시끄러우니 박수 치며 호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타 재즈 공연에서는 접할 수 없는 풍경이다. 주문이 주효했을까, 여늬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박수와 환호가 공연 내내 끊이지 않았다. 한국 퓨전 재즈의 선구 그룹다운 인기를 새삼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재즈는 항상 무언가에 굶주려 있다. 대다수의 재즈맨들은 이른바 모던 재즈, 즉 정통 재즈의 어법 내에서 그 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길을 벗어나 굶주림을 해소할 수도 있다. 그 길은 두 가지 극단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완전히 혁명적인 양식의 음악을 추구할 수도, 보다 대중에 다가서는 길의 모색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혁명적 프리 재즈와 대중적 퓨전 재즈라는, 도저히 상응할 수 없는 극단적 대처는 그 궁기에 대한 나름의 방안이다. ‘웨이브’의 답안은 퓨전. 즉, 재즈와 록의 융합이다.

잘 알려진 샹송 ‘고엽’을 완벽한 록으로 해석했다. 3집의 수록곡이다. 신디사이저 특유의 다양한 효과음이 화려한 음색을 자랑했다. 여타 재즈 공연이라면 금기시되는 일이다. 정통 재즈 공연이라면 건반 악기는 어쿠스틱 피아노 하나뿐이다. 신디사이저의 도드라진 음색만으로도 이것이 퓨전 무대라는 사실을 충분히 말해준 셈이다.

비브라폰 효과가 청량한 ‘가을 단풍(Automn Maple)’에 이어, 황량한 삭풍 소리가 전면에 깔리는 ‘겨울(Winter)’은 신디사이저의 다양한 음색 효과를 최대화시킨 곡들이다. 여기에 드럼의 현란한 비트가 어울렸다.

록 색소폰 주자 데이비드 샌본을 뺨치는 김용수의 폭발적 연주를 맨 앞에 두고, 박철우(드럼), 박지운(피아노), 한현창(기타), 최훈(베이스) 등 여타 멤버들이 빼어난 연주력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량을 뽐냈다. 기존 앨범을 통해 이들의 재즈에 익숙해 있던 객석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사실 이들의 콘서트는 이미 음반을 통해 소개돼 있던 음악을 무대에서 그대로 펼쳐보이는 것이었다. 클래식이나 록 공연이라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정통 재즈의 입장에서 본다면 ‘재즈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다. 왜냐하면 재즈가 재즈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즉흥을 한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정말 재즈라면 연주할 때 마다 달라진다.

그러나 정통 재즈 특유의 어법은 재즈의 어법에 아직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부담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 다섯명의 젊은이들은 빈틈없는 연주력과 세련된 무대 매너로 재즈의 멋을 펼쳐 보이는 데 힘을 다했다.

김용수는 “우리 팬의 대부분은 재즈 팬”이라고 확신한다. “재즈에 문외한이었던 사람이 우리의 음악을 듣고 진짜 재즈를 듣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웨이브’의 음악이 진짜 재즈다, 아니다 라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소모적이거나 소아병적일 수 있다.

이같은 음악을 통해 진짜 재즈의 맛에 빠져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98년 11월 결성해 4년 만에 넉장의 신보를 발표한 부지런한 그룹 ‘웨이브’가 갖는 적극적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2/11/1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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