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巨匠] 시대를 고치는 의사 허갑범

한국형 당뇨병 퇴치에 헌신한 '큰 의사'

“소변 검사 결과를 보니 당이 조금 섞여 나오긴 하지만 괜찮아요. 두 달 있다 오세요.”

허갑범(66) 박사는 온화한 미소와 말로 환자를 끌어 들인다. 멸균된 하얀 가운에다 딱딱 끊어지는 말투가 우선 떠오르기 십상인 의사의 일반적 이미지는 흔적도 없다.

국내 최고의 당뇨병 권위자가 하는 말에 당뇨 초기의 부인 이혜숙(65)씨와 함께 11월 8일 내원한 성호근(67ㆍ사업)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1993년 둘 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이래 용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 다녔다. 그러나 전혀 호전의 기미는 없을 뿐더러, 3년 전부터는 모대학병원의 지시로 인슐린 펌프(인공 췌장)까지 늘 달고 다녀야 했다.

1995년 뇌경색으로 운동 중 갑자기 쓰러진 성씨는 그러잖아도 거동이 불평한데 바늘을 꽂아 펌프를 복부에 붙였다 뗐다 해야 하는 게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러다 11월 1일 수소문 끝에 허 박사를 찾을 수 있었다.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온유함

합병증 검사 결과, 펌프는 불필요한 조치로 드러났다. 이후 인슐린 펌프를 허 박사의 지시대로 떼고 지냈는데, 검사 결과까지 좋다니 이보다 더 희소식이 없다. 단, 간에 기름이 많이 끼어 있으니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주문과 “앞으로 잘 하면 된다”는 희망까지 덤으로 얻고 간다. 노부부는 “이렇게 자상한 의사는 10년 만에 처음”이라는 감탄을 연발했다.

여타 병원이라면 혈당 체크 결과만 보고 인슐린 주사 처치를 내리는 것이 극히 상식화돼 있다. 지루한 고통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이 병원 환자들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5년째 허 박사의 치료를 받고 있다는 주부 김춘성(57)씨는 “혈당이 낮다, 높다 정도만 일러주고 끝내는 의사들한테 목매던 시절이 꿈만 같다”며 “내가 낫게 해줄 테니 내 말대로만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무한한 용기”라고 말했다.

허 박사는 하루 한 시간 운동하라고 김씨에게 일렀지만, 한술 더 떠 매일 두 시간 20㎞씩 걸을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신촌의 당뇨병 전문 클리닉 ‘허 내과’의 진료 시간에는 언제나 늙수구레한 환자들이 붐빈다. 생계에 쫓겨 육체를 혹사해야 했던 한국의 청장년들은 허리 좀 펴고 살만하게 됐다 싶자, 당뇨의 습격을 받고 만성 고질병 환자가 되어 세월의 앙갚음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에게 허 박사의 온유함은 참으로 큰 격려가 된다.

“환자는 늘 가슴으로 대하라, 친절하라, 의사는 동정심이 많아야 한다고 후배들한테 늘 강조하죠.” 특히 당뇨병에 이 같은 원칙은 절대적이다. “화를 거의 안 내시죠. 솔직하고, 뭘 해도 열심히 하세요.”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 이선희(64)씨의 인물평이다.

피로와 무력증 등 대수롭지 않게 시작되는 이 질환은 망막증, 신장병, 신경병증 등 합병증과 고혈압, 심장병, 중풍 등 2차적 질환으로 이어져 결국 만년을 황폐화시킨다.

당뇨병은 물론 뇌하수체, 전립선, 비만, 대사장애 등 내분비 관련 질병까지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허 박사는 잃어버린 시간을 복구하는데 세월을 바쳐오고 있다. 대형 종합 병원에서만 해온 ‘인슐린 내성 검사’를 개인 병원이 담당하는 곳은 국내에서 이곳뿐이다.


당뇨= 난치의 관념을 깨다

요즘 이 병원은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매년 11월 둘째 주로 잡힌 ‘제 10회 당뇨병의 주간’ 때문이다. KBS나 SBS 등 공중파 방송사는 물론 인천 i-TV나 마포 와우 TV 등 지상파 카메라들이 환자 대기실을 더욱 좁게 보이게 한다. 성인병 관련 비디오를 제작해 보자는 제의도 종종 들어 온다.

‘당뇨병 주간’은 1992년 그가 대한당뇨병 학회를 만들어 4년간 회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제창해 지금껏 이어 오고 있는 행사다. 이 기간중에는 혈당 측정이나 영양 상담을 무료로 해준다. 당뇨병은 무엇보다 예방과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적 당뇨병 퇴치에 한 평생을 바치고 있는 그에게 교수 퇴임 이후, 노년의 여유란 사치에 가깝다. 더구나 2003년 6월에는 부인의 병원 ‘자애 산부인과를 증축해 ‘21세기 당뇨병ㆍ비만 연구소’로 개원할 예정이어서 푹 쉬어 볼 틈이 없다.

현재 한국에는 전체 인구의 7~8%인 300만여명이 당뇨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령별로 봤을 때 50대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40대와 60~70대 순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1%에도 못 미쳤던 질환이다.

그러나 허 박사가 있기 전까지 그들은 한국인의 체질에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고통스럽기까지 한 치료를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형 당뇨병’에 대한 인식이 없이, 서양식 치료를 답습해 온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X-증후군’으로만 분류돼 있던 한국형 당뇨병이다.

‘인슐린저항성 증후군’ 또는 ‘대사성 증후군’이라고 그가 명명한 이 질환은 인슐린 분비는 정상이지만, 효과가 저하돼 유발되는 증상을 가리킨다. 그 이전의 당뇨병 치료는 체질에 관계없이 WHO에서 정한 ‘혈당 치료’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다. 식사 운동 경구약 등으로도 혈당 조절에 실패해 공복 혈당이 1㎗당 250㎎을 넘으면 인슐린을 주사해야 했다.

서양의 이론을 최고로 쳐 온 국내 병원들도 그대로 답습해 왔다. 때문에 그 동안 이땅에서는 ‘당뇨=난치’라는 악순환을 통제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허 박사는 근본적인 데서 착안했다.

당뇨 환자는 예외 없이 ‘절구통 비만인’인 서양과 달리 이땅의 당뇨 환자는 ‘비쩍 마른 어른들’이기 일쑤다. 재직해 온 세브란스 병원의 경우도 당뇨 환자의 8~9할이 왜소한 편이었다. 임상 환자들을 중심으로 그는 면밀히 체크해 갔다.

그 결과, 한국의 당뇨는 ‘빈곤과 풍요의 충돌’에서 비롯한다는 통찰을 얻었다. 그는 “모태내에서 빈곤하게 살던 세대가 중년 이후 과영양으로 당뇨병이 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자신의 이론을 펴나가기 위해 그는 1990년대 모두 50여편의 관련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는 등 연구자로서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97년 독일 제약회사 베링거 인겔하임이 수여한 ‘분쉬 의학상’이 바로 그 공로의 대가였다.


당뇨병연구로 1997년 분쉬의학상 수상

의사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에 그러잖아도 편찮은 마음이 더 아팠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한두번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허 박사는 1995년 연세대 의대 학장 재직 당시부터 친절한 의사상 확립을 주장해 왔다.

지난 3월부터 추진 중인 ‘의학전문대 설립 방안’은 이제 한국에도 의사들의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청에 발벗고 나선 결과다. 국내 의료계도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 실시 중인 MEET(Medical Education Eligibility Testㆍ의사 교육 적성 시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2004년 후반부터 실시될 예정으로 돼 있는 이 시험으로 실기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5~10%의 예비의사는 부적격 인성자로 가려져 개업 등 사회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빨갱이에다 거짓말쟁이라는 말까지 들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3년은 지나야 제대로 된 게 나오겠지요. 불행한 사람임에는 틀림 없죠.” 1998년부터 4년 6개월 동안 김대중 대통령의 주치의로서 관찰한 ‘인간 김대중’을 말했다.

대통령 주치의란 평소 40여명에 달하는 분야별 대통령 보좌 의사들을 통합 관리(코디네이트)하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나 청남대 휴가 때는 수행하는 직분이다. 그는 “김 대통령을 주치의 임기 이후 한번도 뵙지 못했다”며 “11월 셋째주 중으로 문안 올리겠다”고 말했다. 요즘은 당시 의무실장이던 장석일 박사가 주치의 자리를 이어 받고 있다.

요즘 허 박사는 제 2의 개원에 여념이 없다. 2003년 6월 문을 열 예정인 ‘21세기 당뇨병 센터’가 그것이다. 부인이 이화여대 부근에서 하는 4층짜리 건물 ‘자애 의원’을 7층으로 증축해 당뇨병은 물론 혈관 합병증, 갑상선, 비만, 치료까지 겸하게 될 병원이다.

현재 세계 유일의 당뇨병 전문 의료 기관인 독일의 뮌헨 당뇨 센터에서 기술적 지원을 약속해 왔다.

허 박사는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인생은 결국 노화와 성인병 관리로 귀결되지요. 배와 다리의 싸움이란 말입니다.” 다리는 굵을수록, 배는 가늘수록 좋다는 진리이다. ‘거미형 비만’이 늘어가는 21세기 초입의 한국 성년들이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금과옥조다.

그도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다. 경기 안성의 1만평 농장에 심어 둔 수령 20여년의 나무 200그루를 돌보는 일은 언제나 커다란 낙이다. 되도록이면 일요일마다 내려가 전정 작업 정도는 손수 해오고 있다. 사회적으로 이렇다 할 빛도 못 보는 손(手)성형 수술 전문의인 사위 한경진이 큰 의사가 돼 주길 바란다. 2남 1녀의 막내 병욱은 지금 단국대 의대 4학년이다.


“한국의학은 이제 대의로 가야”

오늘날 한국에서는 의사 계층이란 더 이상 선택 받은 소수가 아니다. 힘들고 명 짧은 외과 등은 기피하고 성형 외과 등 시류에 편승하는 분야에 몰리는 것은 그 같은 위기에 대응하려는 나름의 자구책일 지도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연세대 재직 중 1주일에 한번씩 제자들한테 베풀던 ‘만두 강의’가 더욱 그리워진다.

아침에 강의실 등지에서 모여 그가 사 온 만두 보따리를 풀어서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이다. 인술(仁術)로서의 의술(醫術)은 사라지고 환자가 의사를 불신하는 의술(疑術)만 높아 가는 이 시대가 잊어 가는 풍경이기도 하다. 요즘도 1주일에 한 명꼴로 제자들이 그를 찾는다.

그렇다면 의사와 환자의 벽을 허물고 환자들의 아픔속으로 들어가는 그의 의사론은 무엇일까? “의사는 소의, 중의, 대의로 나뉩니다. 소의가 질병을 치료한다면, 그보다 큰 중의는 사람을 치료하죠. 그러나 대의는 연구, 개발, 보건, 예방의학에 정성을 다하죠.”

한국의 의학도 이제 환경 의학, 법의학, 의공학, 신약 개발, 생명 공학에 눈떠야 한다는 인술의 거장은 이번 일요일에도 안성 땅 수목원에 들러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올 것이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2/11/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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