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꿈나무에게 라운딩 기회를…

날씨가 많이 춥다. 해도 많이 짧아져 빨리 지고. 연습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새벽에는 그립을 잡고 백 스윙을 하다 보면 몸마저 잘 안 돌아간다. 거기에 톱핑까지 하면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얼얼하다.

그럼에도 두 손을 호호 불며 해도 안 뜬 이른 새벽에 나오는 아마 골퍼들이 있다. 골프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 정말 부럽다. 어떤 이유인지, 어떤 계기가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꾸준히 연습장을 찾는다는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런 골프 열정을 가진 아마 골퍼들 덕택(?)에 국내 골프장은 소위 ‘부킹 전쟁’에 휩싸여 있다. 상당수가 ‘돈을 내고도 부킹을 할 수 없어 골프를 못한다’고 하소연 한다.

최근 한 골프장 관리 감독은 “골프 부킹 업무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며 ‘골프 부킹 업무 사절’을 선언하기도 했다. 골프장이 밀집돼 있는 경기도의 한 관청은 몰려드는 골프 청탁 때문에 일을 못한다며 ‘부킹 사절’을 언론에 밝히기까지 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하다 보면 꿈나무 주니어나 프로 지망생들을 간간히 앞뒤 팀으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전혀 보기가 힘들다. 대중 골프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골프 지망생들의 자리가 그만큼 좁아진 것이다.

요즘 일반 골퍼들은 부킹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워졌지만 억대 회원가를 자랑하는 소위 명문 골프장의 VIP 회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부킹이 가능하다. 골프장 회원권 하나를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인 3억~5억원에 분양하는 골프장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들 VIP회원들에게 혜택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 골프장 회원권이 고가화하면서 프로 지망생들의 입지는 날로 좁아지고 있다. 개인적인 연줄이나 소위 말하는 ‘백’이 없으면 연습을 하기도 힘들다. 예전만 해도 세미 프로나 꿈나무 주니어 선수들에게는 빈 시간대를 쪼개서 라운드 기회를 주는 곳이 많았다. 그린피도 회원 대우를 해주는 곳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혜택을 주는 골프장은 찾기 힘들다. 명문일수록 회원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박세리, 김미현, 최경주 등 월드 스타들의 등장으로 한국 골프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국내 여건은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실전 만큼 좋은 연습은 없다. 국내 골프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려면 박세리, 김미현, 최경주 같은 실력 있는 선수들을 배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꿈나무들에게 부담 없이 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골프장도 장사를 하는 곳이다. 수입 감소를 감수하면서까지 주니어들에게 특혜를 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골프장측에 프로 지망생과 아마추어 3인을 한조로 편성하는, 소위 ‘준 프로-암’ 이벤트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

대신 이벤트에 참가하는 프로 지망생에게는 그린피를 대폭 할인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마추어는 준 프로와 함께 라운드하면서 골프 스윙을 배울 수 있고, 프로 지망생은 자신의 존재를 일반에게 알리고 자신의 스윙감도 유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국내 골프계에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발전 가능성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그들이 국내 골프장 여건 때문에 사장될까 안타깝다.

물론 이런 이벤트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가 성사된다면 우리나라 골프계는 장기적으로 크게 발전할 것이다.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프로 기술과 프로 생활의 어려움을 이해시킬 수 있고, 준 프로들도 팬과의 교감을 통해 멋진 경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골퍼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세계 무대를 장악해가고 있다. 이런 한국 골프의 저력 뒤에는 골프장을 비롯한 골프업계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골프 꿈나무에게 라운드 기회를 주는 것은 일시적인 수입면에서는 손해가 될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골프의 위상을 끌어올려 골프 대중화를 앞당기는 길이다. 골프업계가 보다 장기적이고 대국적인 차원에서 꿈나무들을 보기 당부한다.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2/11/2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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