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단일화에 '숨어있는' 변수

16대 대통령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중앙선관리위원회가 얼마전 대통령 선거 비용제한액을 발표했고, 11월 27일부터는 법정선거운동이 시작된다. 후보 등록은 27일과 28일 이틀 동안이다.

선거일에 부득이 집을 떠나있거나 중대한 신체적 장애로 투표소에 못 가는 사람들은 부재자 투표를 해야 한다. 부재자 투표 기간은 12월 12일부터 14일까지인데 부재자 투표를 할 유권자는 11월 21일부터 25일까지 부재자신고를 해야 한다.

코앞에 닥친 대선 구도가 갑자기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 동안의 대결구도는 유력한 3인의 후보가 팽팽하게 맞서 있고, 진보정당의 후보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4자 대결구도였다.

TV토론에도 이 네 후보만이 참가하도록 결정되었다. 대선구도가 바뀌는 것은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단일화의 시기와 방식, 단일화 이후의 선거운동에 대해서 구체적인 합의까지 마친 상황이다.

단일화 합의는 극적이었다. 몇 달 동안 단일화 문제를 놓고 민주당은 당의 해체나 분열 직전까지 가는 진통을 겪었다. 정몽준 후보는 한나라당과의 단일화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상태에서 추대에 의한 단일화를 노렸다.

단일화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양측의 이해관계가 너무도 달라 단일화가 어려워 보였다. 지지기반은 겹치지만 정책과 이념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다가오고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막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후보 단일화 노력에 불을 당긴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기세를 올리고 있지만 단일화가 당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후보 단일화로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면 당선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원칙 없는 단일화를 이루거나 단일화 과정에서 잡음이 생긴다면 당선가능성이 낮아질 수도 있다.

후보단일화가 여론조사에서 앞서가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려는 ‘반창연대’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면 단일화 효과는 약해질 것이다.

한나라당은 전격적인 단일화 합의에 당황하고 있다. 조자룡 헌칼 쓰듯 기회만 있으면 써먹었던 ‘DJ 때리기’를 다시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단일화가 청와대 공작에 의한 ‘국민 기만 사기극’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97년 대선에서 떨어진 뒤 줄곧 여론조사 1위를 달려왔지만 늘 불안했다. ‘반(反)DJ’에 의한 반사이익을 누렸을 뿐 대안으로서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 인기도가 떨어져도 이회창 후보의 인기도가 40%를 넘지 못했던 것이 그 때문이다.

검찰의 눈치보기로 병풍이 잦아드는가 했으나 또다시 불법정치자금 의혹이라는 장애물을 만난 한나라당이 단일화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숨어있는 1cm’를 찾아 ‘마의 40% 벽’을 넘을 수 있어야 당선을 확신할 수 있던 이회창 후보로서는 단일화가 ‘낙선으로 가는 1cm’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일화의 또 하나의 변수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이다. 97년 대선에 출마해서 30만표를 얻는데 그쳤던 권영길 후보는 민주노동당이 6.13지방선거에서 8%를 득표해 자민련을 제치고 제3당으로 부상하는 기세를 올렸다.

지금도 4자 구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성향상 권영길 후보의 지지도 상승은 노무현 후보의 지지를 잠식할 수 있다.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한 후보단일화에 민주노동당도 가세해야 한다는 여론에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변수이다.

단일화에 우호적이지 않은 거대족벌언론의 불공정한 보도 또한 단일화 효과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97년 때 DJP도,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탄생한 한나라당도 모두 선거 승리를 위한 짝짓기였다. DJP가 야당끼리의 연대라면 한나라당은 여당과 야당의 결합이었다. 그런데 당시 언론은 DJP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하면서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이 없었다.

이 같은 걸림돌을 딛고 단일화를 이뤄 DJP 공조로 정권교체에 성공했지만, 이질적인 정치세력의 연대였기에 개혁과 국정운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점을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입력시간 2002/11/2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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