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문화읽기] 까발림의 유혹은 이제 그만

르네 마그리트의 <겁탈>(rape)이라는 작품이 있다. 약간의 퍼머 기운이 있는 다갈색의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약간 추상적으로 그려놓은 그림이다. 멀리서 보면 분명히 여자의 얼굴인데, 가까이서 보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된다.

여자의 얼굴 속에 벗은 몸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두 눈은 유방으로, 코는 배꼽으로, 입은 여성의 성기로 대체되어 있다. 여성의 벗은 몸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당혹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관객인 우리의 욕망을 미리 앞질러서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얼굴 그림을 보면서 어차피 벗은 몸을 연상하게 될 테니, 관객이 상상할 것을 미리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관객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벌거벗은 욕망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비전공자의 어설픈 그림 읽기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지만, 마그리트의 그림은 우리의 관습화된 상상력이 포르노그라피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인의 상상력 속에는 포르노그라피가 가로 놓여져 있으며, 우리의 일상과 문화 속에 포르노그라피가 일반화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와 동시에 우리를 포르노그라피적인 상황과 대면하게 함으로써 포르노그라피적인 일상이 하나의 폭력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달리 말하면 포르노그라피 내지는 과도한 섹슈얼리티는 우리를 한없이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깨닫게 한다.

그의 그림은 성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라는 사실의 확인과 함께, 성적인 것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게 되면 지하철 가판의 스포츠신문은 도색잡지로 탈바꿈한다. 저널리즘으로서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경기 중에 퍽에 맞아 사망한 아이스하키 선수에 대한 기사를 조금은 심층적으로 다루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스포츠신문의 제 1면은 온갖 이니셜로 도배된 스캔들 보고서일 따름이다. 일부 연예인들과 부유층 자제들이 그렇게 너저분하게 노는 줄을 마치 처음 알았다는 듯이 기사를 써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처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신문사에도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르노그라피나 인터넷 야설(야한 이야기) 수준의 기사를 톱으로 뽑으면서 선정적인 기사야말로 세인의 관심과 신문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성적인 코드(code)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분명하다. 하지만 성적 코드는 과연 사람을 매혹시키기만 하는 것일까.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과도한 성적 코드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성적 매력이 과시되는 장면은 혼자서 훔쳐보기에는 어울리겠지만 여러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장희빈>의 경우 여주인공의 노출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각종 매체를 통해서 장희빈 역의 배우가 어디까지 가슴을 드러낼 것인지, 궁중에서 전해진다는 방중술이 과연 어떤 것인지 등등 선정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시청률도 그다지 상승하지 않았고 세간의 평가도 겨울 날씨처럼 차갑기만 했다. 그렇다면 왜 <장희빈>은 한국최고의 건강미인을 출연시키고도 대중을 매혹시키지 못했을까.

두 가지의 이유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장희빈>의 연출자에 의해서 제시된 장희빈의 섹슈얼리티가 이미 남성적인 시각과 욕망에 의해 길들여져 있는 성적 매력이라는 점이다. 대다수의 남성들을 포함한 대중들은 벗으면 벗을수록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장면들 앞에서 어느 시청자가 마음 편하게 드라마에 빠져들 수 있을까.

다른 하나는 과도한 섹슈얼리티는 사람을 억압한다는 사실이다. 숨김과 가려짐 그리고 느림이라는 유혹의 코드를 몰각하고 노출과 까발림이라는 논리가 강박적으로 적용될 때, 섹슈얼리티는 유혹이 아니라 동물성의 차원을 환기시킨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한국사회는 포르노그라피적인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 결과 유혹은 사라지고 살 덩어리들의 이미지와 소문들만이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벗기면 대중은 유혹 당한다는 단순논리가 지겹다. 이제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유혹 당하고 싶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입력시간 2002/12/0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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