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타운] '죽어도 좋아'

황혼기 인생 불태운 노인의 사랑

천신만고 끝에 ‘죽어도 좋아’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11월 26일 열린 영화 ‘죽어도 좋아’ 시사회에는 박치규 할아버지와 이순예 할머니를 비롯해 감독 박진표, 제작 책임을 맡은 이미경, 이미숙이 참석했다.

‘죽어도 좋아’는 경노우대 사상이라는 국민 정서 차원에서 볼 때 성역 파괴를 했다 하여 세간의 화제를 뿌렸으나 두 노인의 과감한 정사장면으로 인해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제한 상영가 판정을 받았고 국정감사장까지 나갔던 작품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며 실존 인물이 직접 연기한 것이기에 그 사실감 더해 주고 있다. ‘죽어도 좋아’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에서 꽃핀 절대 사랑에 이제 ‘죽어도 좋다’ 할 만큼 여한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관객들은 이런 의문을 가질 것이다.

‘노인들도 사랑에 대해 젊은이들처럼 설레임과 열정을 가지고 있을까, 설사 마음이 있다 해도 다 시들어가는 육체를 가진 그들에게 섹스가 있을까’라는 의문과 ‘별 해괴 망측한 영화 같으니…’.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해 애써 좋게 생각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고 고정관념을 깨가며 다르게 생각해 보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노인들도 젊은이의 사랑에 대해 한때에 불과한 철 없는 사랑이라 하기도 하고 좋은 시절이라 하기도 한다. 노인들의 사랑에 대해 주책이라 할 수도 있고 황혼기의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그간 언급되지 않았던 것이 시도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개념 자체를 평론가들 논리나 그에 따른 사회적 분위기를 끼워 맞출 필요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만남

박치규 할아버지는 담배 파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꾸벅꾸벅 졸거나 하늘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그리고 치우지 않은 방, 라면 식사 한끼. 이것이 박치규 할아버지의 전부였다. 그런데 할아버지에게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났다. 공원에서 만나 이순예 할머니다.


결혼과 청춘가

할아버지는 치우지 않던 방을 노래를 부르며 치우기 시작하고 머리에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에게 청춘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동거에 들어가는 두 커플. 이들에게 뜨거운 밤은 청년 못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지극 정성 그 자체이다. 하루는 할머니가 외출하고 늦게 오자 온 시장을 돌아다녔고, 할머니가 아프자 닭을 잡아 닭 요리 솜씨도 보여준다.

이 영화의 흐름을 이어주는 것이 있다. 바로 청춘가. 이 청춘가는 이들의 삶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팔청춘에 못 다 이룬 사랑을 황혼에 이르러서야 만난 두 노인은 청춘가에서 만남을 이렇게 표현한다. ‘얻었네~ 얻었네~ 천하를 얻었네 이순예 박치규가 천하를 얻었네~’

시사회장에서 박치규 할아버지, 이순예 할머니는 참가자들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했다. 백마디 해설보다 당사자들의 말 한마디가 더 진솔하게 와 닿을 것 같아 일문일답 내용을 옮긴다.


“남은 인생 멋지게 살려고 찍었다”


- 노년의 사랑에 대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박 할아버지 : 영화를 찍은 것은 할머니와 만나 남은 인생 멋지게 살려고 하다 보니 영화를 찍게 됐다.

이 할머니 :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노인들도 과연 사랑을 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으나 노인들도 사랑을 하며 살고 있다. 이점을 영화를 통해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 출연 계기는

박진표 감독 : 두 분이 경인방송의 다큐멘터리 ‘사랑’에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PD를 그만둔 뒤 영화 데뷔를 준비하던 중 두 분의 재미있는 삶을 영화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 내 생애 영화를 찍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이만한 영광도 없다. 그래서 흔쾌히 승낙했다.

할머니 : 여성으로서는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노인들에게 사랑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영화 출연 후 주위의 반응은

할아버지 : 아직 영화가 개봉되지 않아 친척들의 반응은 없다. 자녀들은 좋게 생각하고 있다.

할머니 : 자녀들은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뜻 있게 볼 영화이니 자식들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 영화에서 할머니는 장구와 창을 잘하시던데.

할머니 : 경기민요 전수자로 장구를 배운지 20년 가까이 된다. 한때는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 소리꾼이었다. 요즘은 소리할 시간이 별로 없다. 소리는 꾸준한 연습이라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할아버지 : 나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고 한때 가수가 꿈이었다. 아내를 잃고 홀로 살다가 2년 전에 할머니를 만났다.


- 다시 영화에 출연할 계획은

할아버지 : 당연히 응하겠다. 앞으로 좋은 영화 만들 수 있다면 아주 멋들어지게 배우가 되고 싶다. (할머니에게) 그렇지? (이 부분에서 웃음을 자아냈다)

윤지환

입력시간 2002/12/0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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