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모습을 기억하십니까?

1세대 사진작가 5人의 사잔집 '한국사진과 리얼리즘'

시간을 반세기 전쯤으로 돌리면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인도교(제1 한강교) 부근에서 수영과 뱃놀이를 즐기는 서울 시민들, 꽁꽁 얻어 붙은 한강에서 큼직한 얼음을 캐내 달구지에 싣고 있는 마부, 막걸리를 대폿집에서 받아오려는 듯 주전자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축대 계단을 줄달음쳐 내려가는 까까머리 어린이, 체통도 잠시 잊은 채 요지경을 들여다보며 마냥 즐거워 하는 할아버지들, 모처럼의 소풍(현장학습)에 들떠 전차 창가에 매달려 함박 웃음을 짓는 어린이들, 개장 준비에 바쁜 남대문시장 상인들, 서울 남산의 공동우물 옆에서 코를 흘리면서 얼음과자 ‘아이스께끼’를 맛있게 먹는 동심…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은 춥고 꾀죄죄한 시절이었다. 그래서인가, 두 세대 정도 밖에 안된 가까운 과거이며 지금의 50, 60대가 개구쟁이였던, 살아있는 과거인데도 흘러간 역사 속 아스라한 이야기 같다.

‘한국사진과 리얼리즘’(눈빛 펴냄)은 망각의 늪에 빠진 1950년대와 60년대를 되살려는 내는 마법사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맹활약했던 한국 사진계의 1세대 작가 5명의 리얼리즘 사진 작품 70여 점을 엄선한 사진집이다.

김한용(78) 손규문(75) 안종칠(74) 이형록(85) 정범태(74)씨 등 원로 사진작가는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주제의식과 시대정신을 견지하려 했던 사진가들이다. 해방 이후 한국 사진계는 풍경과 정물에 집착한 모더니즘과 인간과 그들의 생활상에 관심을 가진 리얼리즘 계열로 갈려 있었다.

현재까지도 현장을 누비며 영원한 현역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범태 전 한국일보 사진부장은 파월 장병 환송식장의 뜨거운 모정(母情)과 법정에 선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아기의 안타까운 사진을 통해 진한 감동을 전하고 김한용씨는 전쟁고아 등 전후의 참담한 실상을 담담하면서도 뭉클하게 앵글에 잡았다.

손규문씨는 한강에서의 채빙 모습을, 안종칠씨는 전후의 동심세계를, 이형록씨는 시장 풍경을 통해 당시의 고단한 삶과 민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전한다.

권두언을 집필한 미술평론가 정진국씨는 “그토록 곤궁하던 시대에 이렇게 활기찬 이미지를 찾아낸 작가들은, 분명 그 당시보다 발전되고 향상된 오늘 날의 생활을 예고하고 있다”며 “세계화와 선진 도시문화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취향과 유행이 지극히 보편적이며 달콤하게 우리의 무의식까지 지배하려 드는 지금, 단편적이더라고 뚜렷하게 현실과 역사를 향한 맑고 소박한 창문을 우리 앞에 열어놓고 있는 이 사진들 앞에 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2/12/12 14:0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