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산업 가능성 확인, 자신있다"

홍정욱 신문사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

“코리아 헤럴드(KH)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내외경제(내경)는 국내 유일의 석간 경제지라는 점에서 둘이 합쳐지면 충분히 색깔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감에 넘쳐 있다. ㈜IKR 카리아 대표 홍정욱(洪政旭ㆍ32)씨.

12월 4일 ㈜신동방 및 ㈜대한종합금융과 ㈜KHㆍ내경의 지분 50.5% 양도ㆍ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IKR 카리아가 48억원(2002년 7월 현재 시가)을 지불하고 377억원의 부채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맺어진 계약이다. ㈜신동방은 지분의 50%를, ㈜대한종합금융은 담보권을 갖고 있었다.

㈜KH와 내경은 코리아 헤럴드 어학원, 키즈 헤럴드 스쿨, 코리아 헤럴드 번역 센터 등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 어린이 영자신문 ‘키즈 헤럴드’도 발행하고 있다. 홍씨는 12월 21일 임시 주주 총회에서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취임, 두 신문과 함께 연계 사업의 총괄자로 나설 예정이다.


“언론사 경영으로 돈벌생각 없다”

홍씨는 “이번 M&A는 일반적 경우처럼 매매 차액을 남겨 수익을 남기자는 게 결코 아님”을 강조했다. 2002년 8월 23일 양해 각서를 체결한 이후 2주간 실시된 실사는 바로 지식 정보 산업체로서의 가능성과 전망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체크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대주주 신동방이 지난 3년 동안 겪었던 어려움이 눈에 두드러지더군요.” 실사 작업 등을 통해 그는 언론사란 여타 업종에 비해 노사간의 화합이 사활의 관건이라는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그 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해 분투한 내경 노조원들의 희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가 “언론사를 경영해서 돈 벌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윤 창출보다는 수익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욱 관건”이라고 전제, “교육 사업과 출판 사업 등에 무게 중심을 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수한 두 매체에 대한 그의 애정어린 시선이 이 같은 말을 어느 정도 뒷받침 해준다.

그는 “내경은 언론 기업이라기 보다 종합적 지식산업체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한다”며 “특히 KH는 고유의 강점을 지닌다”고 말했다. 1953년 창간돼 세계 무대에서 대표적 국정 홍보 신문으로 자리매김한 점, 언어 교육 부문에서 50년 동안 축적된 역량 등을 이유로 꼽는다.

“또 정치 등 경영외적 변수로 언론사를 재단하려는 한국 특유의 언론 상황 내에서 내외경제신문이라는 대중 전문지가 갖는 입지점도 신선했구요.” 정치 편향으로 기울기 십상이었던 경제신문에 다양한 시각을 도입, 학생ㆍ부녀자ㆍ노인 등 다양한 계층을 독자로 끌어들이려 노력한 점을 높이 샀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비언론인 출신인 그가 언론 사업쪽으로 선뜻 뛰어들 수 있었다.

두 매체가 2003년이면 창간 30주년, 창간 50주년을 맞는다는 점도 인수의 시기를 늦출 수 없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저한테는 대운이죠. 경제적 운과 천운이 맞아 떨어졌으니까요.” 정치에 뜻을 둔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눈길도 있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 나서고 싶다면 굳이 신문사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느냐”며 반문한다. 그러나 “회사가 잘 된다면 정계 진출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해 길은 열어 둔 상태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천혜의 자산

미국 하버드 대학, 베이징 대학원, 스탠포드 법과 대학원 출신의 그는 귀공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준수한 외모, 명료한 화술 등 아버지인 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씨로부터 물려 받은 천혜의 자산 덕택이다.

현재의 깔끔한 헤어 스타일은 초등학교 2학년 이후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름의 멋을 즐긴다는 사실은 그의 이미지 메이킹에 득이 됐음은 물론이다.

중국 베이징대 국제 정치학과 대학원생이던 1995년, 그는 서울 강남에 재즈 클럽 카멜롯을 만들어 한국 내 유행의 첨단에 서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세계 제일의 재즈 기타리스트 얼 클루, 팻 메스니 등을 국내에 부른 것도 그의 안목과 수완이었다.

하버드 대학 1학년 때 접한 빌리 할러데이를 시작으로 재즈에 매료됐고, 앞서 코네티컷주의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이미 오페라에 빠져 있었다. “매년 ‘내경 재즈 콘서트’여는 것을 구상 중”이라는 말이 이 대목서 자연스레 나온다.

분명 지금껏 그는 선택 받은 소수였다. 1993년 유학 체험기 ‘7막7장’를 쓴 주인공이란 이미지는 고정 관념으로 굳어져 홍정욱을 특출 난 사람으로 그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도서출판 삼성). 치열한 경쟁, 고독, 좌절 등 유학 생활의 생생한 이야기가 명사의 미남 아들의 손에서 풀려 나오자 당시 사람들은 환호했고, 책을 기록적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그는 100만부라는 기록적 판매고를 세우고 있던 1997년 절판 결정을 내렸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었다”고 그는 당시 심정을 돌이켰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케네디를 좋아한다’고 서술한 대목이 ‘정치가를 꿈꾼다’는 말로 와전돼 심기가 불편했던 에피소드가 숨어 있다. 그가 정치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데에는 그 같은 과거도 한몫 한다.


정계진출설 등 소문도

“지금 이름은 친하게 지내던 베이징대 국제 정치학과 교수가 지어 줬어요. 원래의 ‘욱’자가 중국에서는 ‘우울할 위’로 읽히니 바꾸라는 충고였어요” 그 말을 듣고 그 때까지 쓰던 ‘郁(욱)’을 ‘旭’으로 바꿨다.

그의 향후가 과연 바꾼 이름자 처럼 ‘욱일승천(旭日昇天)’하게 될는지, 더욱 현실적으로는 새롭게 쓰기 시작한 인생의 ‘제 8막’이 어떤 빛깔로 칠해질 지에 세간의 관심이 커 가고 있다.

2001년 9월에 귀국해 11월에 만든 그의 투자 자문 회사의 이름 중 IKR이란 ‘일어서는 산업 한국’(Industrial Korea Rising)을 뜻한다.

또 카리아는 그가 미국서 서울로 올 때 종종 들르는 하와이에서만 나는 건축 자재의 이름이다. 이번 인수 작업은 그가 귀국한 뒤 6개월 간 용산초등학교에서 공익근무요원(전산 요원)으로 근무를 마친 뒤 2002년 6월부터 본격 진행돼 왔다. 맥슨전자 손명원의 장녀인 도예가 손정희(29)와 1999년에 결혼, 딸 지승(2)을 두고 있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2/12/1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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