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매장 '썰렁' 명품점은 '후끈'

[연말특수 노리는 백화점 르포] 소비 양극화 현상 뚜렷

“사람들은 많은데 실제 쇼핑 백을 든 사람이 몇 명인지 세어보세요?”

매년 연말이면 연중 최고 실적을 올려온 백화점업계에도 경기불안과 사회 전반의 소비 위축 여파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주말이었던 12월 7~8일 서울시내 중심가의 롯데, 신세계, 영등포의 경방 등 주요 백화점들은 연말특수를 노리려는 화려한 치장에도 불구하고 매장 분위기는 지난 여름의 세일기간보다도 못한 듯하다. 그래서 백화점 마다 내놓은 연말 전망이 비관적이다.

12월 첫째 주말부터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 행사에 돌입한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은 “연말 실적이 잘해야 지난해 수준에 그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의 쇼핑가 1번지인 서울 소공동 롯데 백화점. 대설을 훌쩍 넘기고 뒤늦게 눈보라가 몰아친 12월8일 롯데백화점 신관에는 세일기간이 아니어서 인지 백화점 앞길은 평소 때와 큰 차이가 없다.

10~20대 여성 캐주얼 의류 등 여성 의류 층이 모여있는 2층 한정 판매 코너에는 30~40대 아주머니들이 모여 가죽 재킷을 걸쳐 보고 거울을 바라보지만 정작 실제 구매에 나서는 고객은 찾아보기 힘들다.

10~20대 젊은이들이 몰리는 영캐주얼 코너에도 날씨 때문인지 사람은 붐비지만 정작 지갑을 여는 이는 드물다. 구매 열기는 월드컵 기간 이후 최악이라는 분위기라는 느낌이다. 일반인들이 주로 찾는 매장만 그럴까? 명품이라고 불리는 고급상가는 어떨까.


세일없는 12월, 매출 '뚝'

200만~300만원 대 밍크 코트를 판매하는 우단 모피 코너의 판매사원은 먼저 울상을 지어보인다. 가게 주인은 “경기 위축에 따른 고객들의 소비행태도 6개월전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 역력하다”며 “12월 세일이 없는 쇼핑은 눈 오지 않는 겨울과 같다”고 말했다.

이 주인의 말대로 백화점이 썰렁한 데는 12월 세일이 없어진 탓도 없지 않다. 백화점들은 올해 처음으로 12월 세일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고객들도 쇼핑찬스를 내년 초 세일시점에 맞추고 있는 분위기다.

하루 전인 7일 서울 남서지역 부도심인 영등포의 신세계 백화점. 영등포 전철역에서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그런대로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근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영등포로 나온 김에 눈요기나 하려고 들린다는 한 주민의 말처럼 주부들이 주로 찾는 식품코너나 할인코너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

그러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오를수록 썰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성 의류코너에서 만난 가정 주부 김모(46)씨는 “올해는 추위가 예년보다 일찍 찾아와 일찌감치 겨울의류를 장만했다”며 “연말 부모님에게 보낼 선물을 고를려고 나왔는데, 온 김에 둘러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매장의 한 판매원도 “11월 초에 추위특수를 누렸다”며 “올 연말 특수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은행이 가계대출을 줄이고, 신용카드의 사용 한도를 낮추면서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심리가 급격하고 줄어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저금리와 쏟아져 나온 신용카드로 ‘일단 쓰고 보자’는 젊은 층의 소비행태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게 백화점 일각의 진단이다.

수능시험을 끝낸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가전 코너의 판촉전략도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진 상태. “대학 논술ㆍ면접 시험을 대비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대학 입시에 잔뜩 신경을 쓰고 있어 최종 합격 여부가 판가름나는 내년 1월에야 수험생 특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판매코너의 이야기다. 그때쯤이면 입학과 졸업에 따른 컴퓨터, 디지털카메라, CD플레이어 등 다양한 수요 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인근 주민들에게 신세계 백화점보다 가격이 좀 비싸다고 알려진 경방백화점. 주변의 롯데나 신세계가 고객들로 북적일 때도 ‘알짜(?) 고객’들만으로 장사를 해온 백화점답게 ‘뜨내기’형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백화점의 쇼핑 백을 든 손님들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인근에서 나름대로 상위 소비계층을 공략해 온 백화점의 판매전략이 경기 한파를 나름대로 헤쳐나가고 있다는 정황으로 비친다.


재고 쌓일 틈 없는 명품점

그러나 각 백화점의 명품관은 상황이 다른 코너와 크게 다르다.

샤넬과 구치 등 각종 명품관들이 위치한 소공동 롯데 백화점 신관 1층엔 발 디딜 틈 없이 20~30대 젊은 고객들로 가득하다. 그나마 명품관은 아직 불황의 여파가 크지 않다는 증거. 특히 샤넬의 경우 불황 여파와 관계없이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판매 열기는 식지않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것은 265만원 상당의 클래식 핸드백. 하루에도 3,4개씩 판매되고 있다. 명품에 대한 젊은이들의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아니면 돈 있는 사람들에겐 불황이란 단어 자체가 없다는 것일까?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모(28)씨는 샤넬 남성시계인 J12를 차고 있다며 보여줬다. 명품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잘 나가는 젊은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바로 옆 구치 상가에도 20대 젊은이들이 발디딜 틈 없이 몰려 있다.

최근에도 가장 많이 팔리는 82만원 대인 재키백은 여유 분이 없어 들어오기가 바쁘게 팔린다고 한다. 이밖에도 소량으로 들어오는 고가의 타조가죽 백 역시 예약 고객들에게만 팔릴 정도로 이곳엔 불황이 없음을 보여준다.

최고의 남성구두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테스토니 신발가게엔 최근 들어 스포츠용 신발이 들어오면서 한층 판매가 늘고 있다. 이 가게 여점원은 “강북점보다는 갤러리아 등 강남 점에서는 재고가 밀릴 틈 없이 한층 잘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살바도르 페레가모 점 역시 불황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명품을 찾는 고객들에겐 불황에 따른 소비위축이란 남의 문제이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2002/12/17 11:49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