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삼척의 바닷가

7번 국도, 그 황홀경에 취하라

사는 일에 지치고 힘에 겨울 때 사람들은 동해바다를 떠올린다. 백두대간을 넘고 밤길을 더듬어 달려가면 거기에 와락 달려드는 파도가 있다. 파도 앞에 서면 바늘로 콕 찌르는 것처럼 차가운 바람이 훅 끼쳐온다. 검은 잉크를 쏟아놓은 것처럼 막막한 바다와 하늘이 한 몸뚱어리가 되어 있다.

폐부를 찌르는 그 상쾌한 바람을 맘껏 들이키고, 찌든 속을 다 게워내면 그제서야 연보랏 빛으로 물든 바다와 하늘 사이로 말간 해가 솟는다. 삶을 비춰주는 등대처럼 희망이 담긴 해다.

삼척 시내를 빠져 나와 남쪽으로 가는 7번 국도를 따른다.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길은 몇 굽이를 돌아 오르면 험한 비탈의 정점인 한치에 선다. 급한 마음으로 차를 몰면 놓치기 쉬운데, 이곳을 지나치면 두고두고 후회한다. 삼척 바닷가 풍경 가운데, 아니 동해안의 풍경 가운데 으뜸인 맹방해수욕장이 발아래 펼쳐지는 곳이다.

언덕바지에 올라서면 길 왼쪽으로 차를 세울 수 있다. 차에서 내리면 발치 아래부터 멀리 수평선까지 망망하게 펼쳐진 동해바다가 보이고 천천히 눈을 남쪽으로 돌리면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와 끝없이 펼쳐진 맹방해수욕장이 보인다. 깊고 푸른 동해의 늠름한 자태와 백사장의 모습이 이 보다 더 웅장한 곳이 없다.

맹방리에서 7번 국도를 벗어나 해수욕장으로 난 샛길로 간다. 길은 백사장 한 가운데로 나 있다. 길을 따라 전신주가 나란히 달리며 운치를 더하고, 파도는 한결 가까이 다가와 해변에 몸을 부린다. 이 길을 한번에 스쳐 가는 것은 아무래도 아쉽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가서 다시 차를 돌려 느긋하게 되돌아온다. 그리곤 다시 눈 높이로 달려오는 파도를 즐기며 천천히 되짚어 간다. 그래도 아쉬우면 차에서 내려 무심한 눈길로 파도를 좇을 일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길에서는 긴장을 풀고 조금은 마음이 흐트러져도 상관없다.

7번 국도를 따라 살해치(殺害峙)를 넘는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과 그의 두 아들이 태조 이성계에 의해 모두 살해당했다는 고개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공양왕과 두 아들의 무덤이 바닷가에 있다.

궁촌해수욕장을 지나서 초곡으로 가는 솔숲 길로 접어든다. 이 길은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초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달려가던 길이다. 솔숲 길이 끝나는 곳에 차 ?대 간신히 지나는 조그만 터널이 있고, 터널을 나오면 황영조 기념관이다. 전망대에서 초곡마을의 포구 풍경을 감상하고 다시 7번 국도를 찾아간다.

고개를 오르면 장호용화랜드 휴게소다.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용화해수욕장과 장호해수욕장의 그림같은 해변 풍경을 전망하는 곳이다. 발 밑으로 코발트빛에서 쪽빛으로 색을 달리하며 푸르름으로 깊어지는 동해바다가 있다. 해변 너머에 포구가 있고, 포구 너머에 또 해변이 가물가물하다.

용화해수욕장을 스쳐 지나면 고개 하나를 더 넘는다. 장호해수욕장을 비롯해 동해에 접한 해변의 그윽한 맛은 이곳이 더 좋다. 집어삼킬 듯이 파도가 덤비는 해변을 걷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먼발치서 바라보는 것도 운치가 있다.

동해바다가 달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 임원항이 마중을 나온다. 울릉도로 가는 배편이 있어 외지인들이 드나들면서부터 횟집이 하나둘씩 들어서 이제는 삼척에서 가장 소문난 횟집촌이 형성된 포구다. 임원항에서 나는 자연산 활어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었던 이곳도 십 년 세월에 상흔만 늘었다. 그래도 아직은 흥정붙이는 맛이 남아 있다.

임원에서 원덕까지는 10km. 삼척에 속한 7번 국도의 종점이다. 호산항은 직사각형의 방파제가 한쪽 귀퉁이만 바다와 통해 있어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하다. 그 안에 삐죽하게 솟은 바위섬들이 있어 갈매기들의 피난처가 된다. 새벽에 돌아오는 고깃배에서 실컷 속을 채운 갈매기들은 따사로운 햇살을 쬐며 바위섬 위에서 졸고 있다.


  • 삼척 7번 국도 드라이브 길라잡이
  • 삼척의 7번 국도를 여행하려면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강릉까지 간 후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삼척까지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매원리 문암마을에서 좌회전하면 솔밭 길로 들어간다. 조그만 터널을 지나면 황영조 기념관이다. 황영조 기념관 주차장에서 터널로 돌아오지 말고 곧바로 산비탈로 난 길로 올라가면 다시 7번 국도와 만난다. 임원항과 호산항은 7번 국도만 따라가면 된다.

    호산에서 돌아오는 여정은 왔던 길을 따라 되짚어 강릉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도 되고, 호산에서 가곡천을 따라 태백으로 넘어가 영월-제천-중앙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동해안의 해변은 통제가 심하다. 일몰 후부터 일출 전까지는 어느 곳이나 해변에 들어갈 수가 없다. 밤바다를 실컷 즐기고 싶은 이들에겐 무척 억울한 일이다. 그래도 비상구는 있다. 삼척시에서 가까운 삼척해수욕장은 밤바다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밤이면 해변을 따라 조명을 환하게 밝혀놓아 파도가 몰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해변을 따라 인도가 나 있어 인도를 따라 거닐 수 있다.


    ▲ 먹을거리와 숙박

    삼척에서 싼값으로 회를 즐기려면 정라항을 찾아가야 한다. 경매가 열리는 수협 어판장에 가면 두어 집이 난전을 치고 있는데, 싱싱한 활어를 아침 경매에 입찰해서 판다. 횟집에서 먹는 것에 비해 몇 곱절은 싸다.

    이곳에서 회를 사서 곁에 있는 방파제에서 겨울바람 맞아가며 먹는 맛이 좋다. 이곳에서는 회만 떠 주기 때문에 초장과 상추 등은 따로 준비해야 한다. 귀찮기는 하지만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그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정라항에는 아침 해장국으로 인기 높은 곰치국을 파는 식당이 많다.

    삼척에서 호산으로 가는 7번 국도 주변의 해수욕장과 항에는 숙박할 곳이 많다. 호산비치호텔(033-576-1001), 여래장(033-573-4646) 장호용화관광랜드(033-573-6321) 등이 대표적이다.

    입력시간 2002/12/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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