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vs 정몽준, 조연의 대결

불복의 정치인·권력 나눠먹기 시각 부담

양자 구도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는 예전의 다자간 대결에서 보기 힘들었던 후보 주변 인사들의 ‘조연 승부’도 관심거리다. 조연들의 역할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수도 있거니와 본인들의 향후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도 놓칠 수 없는 한판 승부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들은 조연의 영역을 넘어 주연급인 ‘러닝메이트’에 해당하는 선거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선거공조 파트너는 1997년 대선 패배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인제 자민련 총재대행(IJ). 자민련 김종필 총재(JP)가 당무회의를 통해 당론을 엄정중립으로 내세웠지만, IJ는 “과격ㆍ급진세력의 정권을 반대한다”며 사실상 이 후보 지지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IJ는 같은 당 정진석ㆍ안동선 의원 등 이 후보 지지 세력들과 함께 충청권 단합을 강조하며 ‘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원군은 후보단일화 와중에 치열하게 대립했던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MJ). 단일화 패배이후 완전 공조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잡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지만 12월13일 대전 유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MJ는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힌 뒤 노 후보와 손을 잡고 공동 유세를 벌여 한나라당의 애를 태우고 있다.

IJ와 MJ 입장에서는 일단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이 무엇보다 급하다. 이 대행은 신한국당에서 탈당한 데 이어 민주당에서도 사실상 마지막 둥지인 자민련으로 옮긴 만큼 본인의 경선불복 이미지를 상쇄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럴려면 본인의 힘으로 이 후보를 당선시켜야 충청권 맹주와 포스트 JP의 대안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경우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민주당으로부터 국정 공동운영이란 ‘선물’을 얻어낸 만큼 노 후보가 당선되면 적어도 웬만한 장관 자리는 정 대표의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정권 중ㆍ후반기에는 국무총리 자리도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 조연 2인의 입장도 이렇게 절박한 상황이다.


IJ의 빚 청산 ‘충청권 다잡기’

IJ는 12월13일 ‘급진세력 집권 저지’를 명분으로 사실상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한 뒤 곧바로 대전ㆍ충청권 순회 방문에 나서 기자회견과 당직자 간담회를 잇따라 열고 ‘노무현 불가론’을 역설했다. 한나라당은 IJ의 지원으로 충청권은 물론 경기 남부권에서도 이 후보 지지율이 상승, 막판 뒤집기를 위한 결정적 반전의 계기를 만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IJ에 대한 충청권의 기대와 동정심, JP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심대평 충남지사의 이 후보 지지 선언이 합쳐져 상당한 파괴력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IJ는 충청지역 순회 간담회에서 “대선에서 급진세력 등장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국정은 다시 혼란에 빠지고 국가의 존망은 위태롭게 될 것”이라며 ‘노 후보 불가론’을 주장한 뒤 “굳건한 안보를 바탕으로 안정적 개혁과 평화적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국민들이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이 후보를 지원했다.

그는 또 노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 “수도이전은 국가 대사중의 중대사임에도 불구, 즉흥적으로 발표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불행한 일”이라며 “수도 이전은 몇십년 걸리는 사업인데 만약 통일이 된다면 그때 수도를 또다시 어디로 옮겨야 하느냐”고 ‘행정수도 이전’ 공약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외형상으로는 충청권의 이 대행과 심 지사 등 토호(土豪)의 지원을 얻어냈지만 역시 JP가 움직이지 않는 한 ‘반쪽 지원’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어 한나라당은 고민 중이다. 자민련이 당론을 엄정 중립으로 정해 총재 권한대행인 IJ로서는 직접 정당이나 후보를 거명해 지지의사를 밝힐 수도 없고 이 후보와의 공동유세도 벌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자민련의 대선 중립 입장 당론은 차기 총선에서 부활을 꿈꾸는 JP가 IJ를 사실상 견제한다는 의미와 함께 오히려 노 후보가 당선되는 게 정치적 입지에서는 더 유리하다는 복잡한 속내가 얽혀 있어 ‘양 이씨’(이회창-이인제)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고 있다.


MJ, 전국유세에 노 후보와 동행

MJ도 이 대행의 노 후보 불가(不可)를 천명한 13일 노 후보와의 대전 공동유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14일 부산과 울산에 이어 15일에는 강원지역에서 공동유세를 벌이는 등 전국을 순회하며 러닝메이트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민주당은 IJ와 달리 MJ의 지원활동은 직접적이고 사실상 전국적인 영향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막판까지 노 후보의 우위를 지킬 수 있는 ‘비장의 카드’로 간주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MJ가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에서 깨끗하게 승복하고 차기 정권의 국정운영에서도 공조하기로 한 점을 IJ의 ‘경선불복’과 대조시켜 수도권은 물론 충청과 강원, 영남지역의 부동층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정 대표는 공동유세에서 “낡은 정치의 틀을 깨려고 저와 노 후보는 후보단일화를 했다”고 강조한 뒤 “노 후보는 낡은 정치의 틀을 깰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저에게 보내주신 성원의 2배, 3배로 노 후보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뒤이어 나온 노 후보는 정 대표의 상징색인 빨간 머플러와 노란 목도리를 함께 두른 채 “옛날엔 단일화니 승복이니 없었지만 우리는 해냈다. 이게 새로운 정치가 아니냐”며 “새 정권은 국민의 정권이자 정 대표와 함께하는 정권”이라고 연대를 과시했다.

하지만 ‘MJ 효과’는 후보단일화 성사 당시부터 이미 충분히 반영됐으며 노 후보와 MJ간 이념과 노선의 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에 비록 정책공조 합의로 절충점을 찾았지만 선거를 염두에 둔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정 공동책임 합의는 5년전 내각제를 고리로 이뤄진 ‘DJP 공조’와 같은 사실상의 ‘권력 나눠먹기’라는 비판이 부담이다.

대선 이후 두 조연의 계산법은 지지 후보의 차이 만큼이나 판이하다. 이 대행은 자민련 총재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갖춘 채 한나라당과의 당대당 통합을 꿈꾸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자연스레 JP를 2선으로 후퇴시킬 수도 있고 이회창 후보 이후 사실상 구심점이 약한 한나라당의 대표주자로 올라설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 대표의 속내는 좀 더 다양하다. 먼저 현대가(家)의 일원으로 그룹 전체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고, 정 대표 개인적으로는 내각 구성에 막강한 입김을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 여기에다 국민적 이미지면에서도 ‘약속을 지킨 정치인’이란 참신성마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2/12/23 11:06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