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21세기 첫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예고하듯 비주류에서 나왔다. 출신이나 학력, 정치경력 등 어느 하나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은 80년대 사회주의 국가에서 일어났던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연상케 했다. 또 그렇게 한 시대가 가고 있음을 느낀다.

12ㆍ19 대선의 진정한 승리자는 20~30대의 행동하는 젊음이 아닌가 한다. 너무나 익숙한 정치ㆍ사회 체제와 권력 질서, 가치관을 모두 낡은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바꾸려는 20~30대의 당돌한(?) 세대는 권력 배분의 여야(與野)가 아닌, 인물로 본 여야, 사고와 노선으로 여야를 구분한 뒤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노무현 후보를 택했다.

그들의 가치관은 모 이동통신업체가 유행시킨 ‘나’(Na)세대답게 “다른 사람과 다른 나”였다. 그래서 주류든 비주류든, 대세든 아니든, 남이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무려 60%나 됐다.

Na세대는 원래 집단이나 조직에 의지하기 보다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는 월드컵의 붉은 물결로, 여중생 추모의 촛불 시위로,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개미군단 형태로 조직화한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 그 고리는 바로 휴대전화와 인터넷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포탈사이트 다음(www.daum.com)의 이재웅 사장과 네이버(www.naver.com)의 이해진 사장 ”이라는 평가가 나돌 만큼 인터넷은 선거전에 나선 젊은 세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노 후보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기존 언론이 ‘노무현 때리기’를 계속할 때마다 진실 게임을 벌이며 결집도를 높였다. 특히 우리 사회의 주류 계층이 대규모 유세와 같은 유권자들과의 ‘스킨십 부재’의 아쉬움과 ‘영웅 만들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을 때 그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스킨십 이상의 교감을 나누며 끊임없이 ‘영웅’들을 만들어 냈다.

Na세대는 그러나 9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미(me)제너레이션과는 달리 현대판 ‘노마드(유목민)’에 가깝다. 20세기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맥루한이 30년 전에 간파했듯이 Na 세대는 말과 천막만으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유목민’처럼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한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뉴스를 찾고, 스스로 정보원이 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었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저서 ‘노마드 사상’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자이퉁지 주필 출신의 미래학자 군둘라 엥리슈가 ‘잡 노마드 사회’에서 21세기의 노마드 상(像)을 그렸지만 우리는 이번 대선에서 실존하는 노마드 족(族), Na 세대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Na세대에도, 노마드 족에도 끼지 못한 40~50대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노 당선자가 기자회견에서 지역통합과 세대간 화합의 정치를 부르짖었지만 그가 세대교체와 변혁을 요구하는 Na세대의 분출하는 열기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40~50대는 더 이상 설 곳이 없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짓눌려 있다.

물론 세대교체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을 시작으로 50대 최고지도자가 등장한 서방 세계에서 이미 확인된 것이다. 전후(戰後)세대가 주류로 등장했고, 전전세대는 2선으로 밀려났다. 그렇다고 해도 DJ정권의 탄생으로 권력 지도가 크게 바뀐지 5년만에 또다시 밀려올 세대교체 압력에 40대 후반의 ‘유신세대’는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386세대가 Na세대의 힘을 바탕으로 자신들을 뒤쪽으로 밀어내지 않을까 하고.

유신세대는 사회변혁의 도도한 흐름을 실감하면서도 컴퓨터 게임에 패밀리 레스토랑의 퓨전 음식에 맛든 Na세대를 포용하기에는 힘에 부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안다. 결국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뜻인데, 이전의 경제성장 주도세대와 민주화를 앞당긴 386세대 사이에 낀 세대였다가 급기야는 밀려나야만 하는 ‘잊혀진 세대’의 비애가 그들만의 대화속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IMF라는 물리적인 힘앞에 겨우 살아 남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결집된 젊음의 욕구앞에 왜소함을 느낀다”는 40대의 토로는 위기감을 반영한다.

40~50대의 심리적 위축은 물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바람직하기는 하나 너무나 빠르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에 가슴 철렁하는 ‘유신세대’는 아직도 우리의 사회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세대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2002/12/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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