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절(?)로 갈 뻔한 PD

이제 게임은 끝났다.

이번 16대 대통령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가장 치열한 선거전을 펼쳤다. 대권을 향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선거전은 누구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박빙의 대결이었으나, 선거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정몽준 의원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아주 싱거운 게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강했다.

그러나 개표전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잠시도 개표방송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이는 정몽준의 지지철회라는 호재가 최진실ㆍ조성민 부부의 파경 소식에 묻혀 이회창 후보가 낙선했다는 분석을 내놓아 주변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항상 선거 때마다 인기 연예인들이 특정후보를 지지하고 또 적극적으로 선거유세 기간동안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곤 했다

그래서 지난 시절에는 자기가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을 도운 후보가 당선되어서 방송활동하는데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었고, 혹은 자기가 지원한 후보가 낙선할 경우 출연 중이던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탤런트 박규채씨의 경우 이번 김대중 정권하에서는 5년여동안 변변한 드라마에 한번도 얼굴을 내밀지 못하다가 최근 정권 말기가 되어서 단막극에 얼굴을 한번 비췄다고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대한민국 연예계의 대표주자들이 저마다의 정치철학과 소신을 바탕으로 각 후보 진영에 합류해서 밤잠 못 자가며 선거운동을 했다.

개그맨 심현섭의 경우 세상이 다 알 듯이 호남 출신이지만 지역정서를 떠나서 이시기에 대한민국을 이끄어갈 지도자는 이회창 후보 뿐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이회창맨으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심현섭의 부친은 5공 초기 현실정치를 바꿔보겠다는 신념아래 전두환 정권에 참여했으나 안타깝게도 아웅산 폭발사고로 그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머나먼 이국 땅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그래서 심현섭은 일방적인 북한 퍼주기에 염증을 느끼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손을 잡았는 지도 모른다.

심현섭이 캐럴음반을 내고 윤도현의 러브러터에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윤도현이 정치적 견해(?)를 달리한다는 이유로 심현섭의 출연을 막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와 같은 연예인끼리 얼굴을 붉혀야만 했다.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모든 걸 풀고 같은 연예인으로서 화합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모든 방송인들의 바람이다.

특정후보가 당선되면 어느 연예인은 문화부 장관으로 갈 것이라느니,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공천을 받을 것이라는 등의 설이 있었지만 이 모두가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왜곡해서 전한 말들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노무현 후보의 핵심 지지자인 영화배우 명계남의 경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들을 가리켜 그들은 ‘종자가 다르다’는 표현을 써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선거운동을 한 연예인들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선거운동에 뛰어든 연예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물어봤었다.

“그러다 상대쪽 후보가 대통령 되면 어떻하냐?”

“그렇게 되면 나 선거 다음날 외국으로 이민 가야지.”

그만큼 결연한 각오로 지지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얘긴데, 하여튼 이제 게임이 끝났으니까 선거기간동안 서로 적이 아닌 적이 되어서 혼신의 힘을 다 쏟은 대중 연예인들이 본연의 위치로 돌아와 대중문화 발전을 위해 다시 힘을 합쳐야 한다

그리고 이번 선거를 계기로 우리도 외국의 연예인들처럼 당당하게 자기의 소신에 따라 지지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또한 그런 일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끝으로 이번 대통령 선거 출마자중 스님이라는 신분 때문에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김길수 후보의 경우 방송가에서는 그가 당선되었다면 불교방송과 지상파 방송3사가 통폐합 돼 현직 PD들이 전국 유명 사찰로 발령을 받아 내려가야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하기도 했었다.

입력시간 2002/12/2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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