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IJ 피박에 광박까지, 철새들은 쪽박신세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정치권 인사들은 저마다 득실계산을 따지는 듯 각기 다른 표정을 지어보였다. 새 세상의 주인격이 된 노 당선자 측근에서 패배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들의 엇갈린 희비는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양극점에서 중간지대에 걸쳐 서 있는 제3의 인사들 입장. 같은 민주당 소속이라도 친노(親盧)와 비노(非盧), 반노(反盧)로 사실상 3등분돼 있고, 한나라당과 국민통합21 인사라 해도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입장이 조금은 다를 수 있다.

대체로 ‘3김’의 퇴장에 따른 동교동ㆍ상도동ㆍ구 민정계 소속 인사들은 고개를 깊게 떨궜고 30~40대 소장파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기세가 등등하다. 지역적으로는 PK지역과 호남 출신 인사들이 새 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고 TKㆍ강원지역은 상대적으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먼저 민주당의 경우 개혁파인 소장 그룹의 득세가 예상되고 동교동계를 비롯한 노장파의 퇴조세는 뚜렷해 보인다. 국민통합21은 원군에서 역적으로 몰린 상태고, 자민련은 중립을 지킨 김종필 총재 계열은 플러스(+)값, 노 당선자 반대편이었던 이인제 대행 쪽은 마이너스(-)값으로 전체적으로는 평균치를 했다.

대선패배의 한나라당은 주요 당직자를 비롯한 원로 정치인들과 철새로 낙인 찍힌 입당파들의 입지가 가장 궁색해졌다.


盧캠프 진영, 탄탄대로 열려

대박을 터뜨린 노 당선자 캠프는 파안대소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치적 고문인 김원기 의원과 선대위 의장 정대철 의원은 당 대표나 1인지하 만인지상인 국무총리 급으로 단숨에 지위가 격상됐다. 특히 김 의원의 경우 현 정권의 권노갑씨 수준의 막후 실세로 자리매김할 것이 분명하다.

국민경선을 완주한 뒤 줄곧 지지를 보낸 정동영 의원과 국민참여 운동본부를 진두지휘하며 당선에 앞장선 추미애 의원 등도 차기를 노려볼 수 있는 당내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또 캠프내에서 핵심 보직을 맡은 이해찬(기획) 임채정(정책) 이상수(총무) 김경재(홍보) 김한길(미디어) 허운나(인터넷) 본부장 등은 차기 정권의 장관급으로 거론된다. 이미 당선자 비서실장과 대변인으로 임명된 신계륜ㆍ이낙연 의원도 청와대 입성의 꿈에 부풀어 있다.

원년 공신으로 꼽히는 천정배 의원과 염동연ㆍ이강철 특보, ‘좌 광재 우 희정’으로 불릴 정도로 노 당선자의 신뢰가 두터운 이광재 기획팀장과 안희정 행정지원팀장, 노 후보의 ‘입’을 대신한 이미경 대변인과 유종필ㆍ남영진 특보 및 이평수 선대위 수석 부대변인 등도 청와대로 가는 이사짐을 챙기려 하고 있다.

당내 의원중에는 ‘반노의 파도’에서 노 후보 옹립에 앞장선 문희상 정동채 이강래 의원 등 3인방도 각료 후보로 거론되며, 끝까지 노 후보 지지를 굽히지 않은 조순형 신기남 천정배 이호웅 이재정 정세균 유재건 김영진 강봉균 김성순 임종석 의원 등도 1등 공신 대열에 올라 있다. 여성인사로는 김희선 의원에 이어 김화중 조배숙 의원이 줄을 서 있다.

원외 인사로는 막판에 합류한 김상우 전의원과 재야시절 인연을 맺은 문재인ㆍ조성래 변호사 등의 중용이 예상되며, 전체적으로 당의 중심을 잡고 결속을 주장하면서 노 후보를 끌어 안은 한화갑 최고위원도 당내 ‘어른’의 위치를 굳건히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이회창 대세론이 한참이던 지난 10월께 노 후보를 측면 지원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탈당, 개혁국민정당을 출범시킨 김원웅 의원과 개혁정당을 창당해 민주당 보다 더 뜨거운 성원을 보냈던 유시민씨도 노 당선자가 잊지 못할 최고의 공신들이다.


손 보기 리스트에 누가 있나?

이번 대선에서 가장 손해를 본 사람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와 이인제 자민련 총재대행. 정 대표는 최후의 7시간을 참지 못해 정치적 이미지는 물론 모 기업인 현대그룹의 안위까지 걱정해야 되는 바람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자민련에 새 둥지를 튼 이인제 총재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 당을 옮기면서 두 차례의 경선불복 이미지만 각인됐으며 한나라당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한 점도 정치적 부담이다. 또 충청권이 이 대행의 뜻과는 다른 표심을 보여줘 향후 지역 맹주의 입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다음은 철새 의원의 대표격으로 떠오른 김민석 전 의원.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통합21에 합류하는 바람에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또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둥지를 옮긴 김원길 강성구 전용학 원유철 박상규 이근진 김윤식 의원과 국민통합21을 거쳐 자민련으로 옮긴 안동선 의원 등은 노 당선자 측에서 ‘손볼’ 대상으로 까지 꼽히고 있다.

한나라당에 줄을 섰던 인사들은 정치적으로 은퇴냐 생존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이른바 킹메이커를 자처했던 원로급 정치인들인 박태준(朴泰俊) 전 총리와 김윤환ㆍ박찬종 전 의원 등은 낙향을 앞두고 있다.

당내에서도 현역 의원들은 야당 의원으로 연명할 수 있지만 특보단 등 원외 인사들은 대부분 짐을 꾸려야 할 형편이다. 서청원 대표와 김영일 사무총장, 권철현 비서실장과 최고위원 전원 등 당직자들은 위상 재정립이 불가피해졌으며, 선거전 복당한 박근혜 의원의 정치적 이미지도 순 적자로 계산된다.

이 전 총재 측근에서 선거를 도운 이병기ㆍ이종구ㆍ이흥주 특보 등은 짐을 챙겨 당을 떠날 형편이고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과 나경원 정책특보, 조윤선 대변인 등도 현업 복귀가 불가피하다.

또 민국당과 한국신당에서 입당한 한승수 김용환 의원도 당분간 개점휴업 상태가 될 것이고 자민련에서 옮긴 강창희 이완구 이재선 이양희 함석재 의원 등은 ‘철새’ 정치인이란 오명만 쓴 채 17대 총선의 공천마저 걱정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


민주당내 반노세력, 처신 곤란

재미있는 것은 민주당내 범 반노세력의 입장.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옛말처럼 노 당선자 진영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오락가락한 한화갑 대표와 정균환 총무, MJ와 손잡으려 한 박상천 최고위원 등은 선거를 이겨놓고도 처신이 곤란해졌다. 후보단일화협의회를 주도하면서 사기극 발언을 한 김영배 의원과 김 의원에 이어 바통을 넘겨 받은 최명헌 의원은 당분간 굳게 입을 다문채 잠수하고 있어야 할 형편이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2/12/27 13:23


염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