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들여다보기] 밥과 찬의 왜곡을 바로잡습니다

'바른 식생활 실천 연대' 대표 김수현

겨울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12월 9일 저녁, 남의 밥상을 엿 볼 수 있다는 호기심에 집을 나섰다. 매서운 서울 봉천동의 칼바람을 맞으며 찾은 곳은 김수현(36)씨가 대표로 있는 ‘바른 식생활 실천 연대’(www.GFN.or.kr)의 사무실 겸 자택이었다.

김씨는 이미 방송과 책을 통해 “밥상을 다시 차리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통곡식 먹기운동과 함께 식생활 전반에 걸친 계몽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오고 있다.

최근 잘못된 식습관이 오랫동안 축적된 결과 나타나는 만성 질환자들이 많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이들의 병을 ‘생활습관병’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자신의 슬로건이 그녀의 식탁 위에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담담하고 심심한 맛의 성찬

김씨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부산한 모양이었다. 솔솔 풍겨오는 음식 냄새가 코끝을 간질렀다.

잠시 뒤 식탁에 마련된 음식이 하나 둘 올랐다. 현미 잡곡밥, 김치, 아욱조개된장국, 시금치 들깨 무침, 파래 무 초무침, 연근오미자 효소 절임, 참다래, 사과, 양파를 갈아 만든 소스로 버무린 야채 샐러드, 고등어 무조림, 콩비지 찌개 등이었다.

취재를 간 필자와 사진기자가 곧 손님이 되어 식탁 앞에 앉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음식에 젓가락이 오갔다. 음식에는 일체의 화학 조미료대신 갖가지 천연조미료가 사용된다는 주인 김씨의 귀뜸이 있었다. 조미료가 몸에 좋을 리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지만 음식에 습관적으로 넣어 왔던 사람들은 맛을 핑계로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게다가 그 흔한 볶음요리나 튀김요리는 없고 대신 무침이나 조림으로 대치되어 담담하고 심심한 맛이 먹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기분이 들게끔 한다. 야채 샐러드 위에 끼얹은 선명한 녹색의 소스가 독특해 맛을 보았더니 상큼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어떻게 만들었냐는 질문에 “참다래 5개와 사과1개, 양파1개를 큼직하게 썰어 믹서에 넣고 현미식초와 약간의 황설탕을 넣어 갈아만든 것”이라며 “마요네즈와 케첩 일변의 소스 대신 사용하면 어른아이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또 “물기를 꼭 짠 두부와 땅콩을 믹서에 간 다음 식초와 황설탕, 겨자와 와사비, 레몬 등을 취향에 맞게 넣어 소스를 만들어 먹으면 훨씬 야채를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며 “간장에 무즙이나 양파즙, 과일즙을 넣고 식초, 청주, 참기름을 넣어 만든 간장소스에 살짝 데친 야채를 찍어 먹어도 좋다”고 덧붙였다.

시금치무침 역시 약간의 소금간에 들깨가루를 넣어 버무린 것인데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연근은 모양대로 얇게 썰어 오미자 효소액을 물로 희석한 후 하루저녁 담가놨다가 밥상에 올린 것으로 선명한 분홍빛이 밋밋한 겨울밥상을 화사하게 만들었다. 조리방법이 간단한데 비해 아삭거리며 씹히는 연근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현미잡곡밥만 먹어도 식생활 개선

“선생님, 밥 색깔이 이상해서 그렇지, 먹어보니 정말 맛있는데요?”

현미 잡곡밥을 천천히 씹던 김수현씨의 대답이 길어졌다. “우리가 밥이라고 하면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것은 새하얀 쌀밥으로 현미의 껍질과 씨눈에 들어있는 영양성분들을 모두 제거하고 단순히 전분질 덩어리만 섭취하게 되는 거지요, 흰쌀밥에 대한 집착으로 심지어 10번 이상의 도정과정을 통해 이런 귀한 영양소들을 배제한 밥을 먹고 있으니 현대인들이 만성적으로 비타민과 미네랄의 부족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고 봐요. 현미잡곡밥만 제대로 지어 먹어도 식생활의 상당부분이 해결될 수 있는 거지요.”

“현미 50%에 현미찹쌀10%, 차조와 차수수, 통밀, 통보리, 율무, 기장 중 3가지 이상을 섞어 30%을 채우고 팥과 콩을 10%로 해서 한 두 시간을 불린 후에 밥을 지어 먹으면 맛있는 현미 잡곡밥을 먹을 수 있어요, 단, 팥은 미리 살짝 삶아 놓은 걸 사용하시구요.”

“일반적으로 현미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현미 잡곡밥에 들어 있는 많은 섬유질은 소장과 대장을 적절하게 운동을 시켜주고 통곡의 풍부한 영양이 이미 손상된 위점막 세포를 복구시켜 위와 장의 기능을 회복시켜주는 걸요.”

그녀는 연이어 밥상의 반찬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현미는 말할 것도 없고 김치,아욱, 시금치, 무, 파래, 이 과일 소스에 야채 샐러드까지 반찬 하나하나에 비타민과 섬유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들이 충분히 공급이 되는 셈이죠.

중요한 건 주식은 통곡식으로 먹고, 질기고 푸른 제철 채소를 즐겨 먹어야 건강한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하시며 가공식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건 입에만 달고 부드러운 음식이 아니라 오래, 천천히 씹을 수 있는 음식, 그래서 소식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김수현씨는 본인 역시 “잘못된 식습관으로 혈당조절이 잘 안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던 적이 많았다”며 “이제는 지방에까지 가서 강의하는 강행군을 계속하고도 이렇게 건강 한 걸 보면 믿어도 되지 않겠냐”며 활짝 웃었다.

더구나 딸아이(박소현, 8살)는 어릴 적에 폐렴, 장염 등으로, 아들(6살, 박현일)은 약한 천식으로 골골거렸는데 지금은 아주 건강해 졌다며 온가족이 병원에 가본 지가 오래된 것 같다고 한다.


“우리 몸은 소박한 밥상을 원한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먹거리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시대에 오히려 제대로 먹지 못해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5년 전만 해도 아무도 먹는 것에 원인이 있으리란 생각을 하질 않았죠.

다들 너무 잘 먹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리라 확신했어요. 원인이 먹는 문제에 있는 걸 아무리 현대의학으로 치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 밥상을 아무리 들여봐도 멋지고 근사한 요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옛날 나를 아껴주시던 외할머니의 손맛을 연상케 하는 소박하고 편안한 밥상만이 내 앞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우리 몸도 그런 자연스런 밥상을 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집 밥상을 가만히 살펴보자.

이주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12/3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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