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화끈한 돌발 서비스

신문이나 잡지와 달리 방송에서는 그 특성상 돌발상황이 발생하는 일이 종종 있다.

얼마전 KBS 2TV 뉴스8을 진행하던 황정민 아나운서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고에 대한 항의집회 중 벌어진 경찰과 시위대의 몸싸움 과정의 보도기사가 나간 직후 “부끄럽다”는 표현을 써서 네티즌들의 불같은 원성을 듣고 중도하차 해야만 했다.

본인은 안타깝다는 의미로 이런 표현을 했다고 하는데…이 8시 뉴스가 생방송만 아니었어도 이런 불필요한 오해를 살만한 언급은 당연히 편집해서 지워버렸을 텐데, 뉴스의 특성상 녹화방송이 불가능했던 것이 못내 부끄럽다. 아니, 안타깝다.

몇해전에는 MBC 9시 뉴스 도중에 역사에 길이 남을 돌발상황이 벌어졌었다. 한 청년이 뛰어들어와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의 뒤에 서서 ‘내 귀에 도청장치가 돼있다’ 라고 소리쳐 앵커는 물론이고 뉴스를 시청하던 전국의 시청자들을 경악시킨 사건을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귀에 도청장치가 돼있다니, 참으로 획기적이고 허무맹랑한 이 발언 때문에 국민들은 잠시나마 이 청년이 UFO를 타고 온 외계인이냐, 아니면 안기부 같은 국가 정보기관에서 진짜 저 청년의 귀에 도청장치를 해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그 옛날 ‘굳센 체력 슬기로운 마음’이라는 진행멘트가 지금도 귀에 생생한 명랑운동회라는 게임프로그램에서는 종종 트레이닝복을 입고 게임을 하다가 청팀 출연자가 백팀 출연자의 바지를 잡고 늘어져 결국 그 선수의 트레이닝복 바지가 벗겨져 시청자들의 배꼽을 쏙 빼던 기억이 난다

개그 콘서트 녹화중에도 돌발상황이 벌어졌었다.

방청객들의 열기와 성원이 워낙 뜨겁기 때문에 연기자들은 감정이 더욱 고조되고 뛰어난 애드립으로 보답하게 마련이다. 바로 그 넘치는 열성이 사고로 이어지고 말았다. 개그 콘서트 마지막에 방송되는 봉숭아 학당의 녹화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그날도 녹화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불과 1, 2분 후면 끝난다는 안도감이 나른하게 퍼질 무렵, 이장으로 등장하는 김준호가 심현섭의 바지를 끌어내리고 말았다. 원래는 바지만 벗기려고 했겠지만 과도한 힘이 들어갔던지 몽땅 벗겨버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몽땅 벗겨지고 말았다. 한 순간의 정적과 비명이 순간적으로 교체되고 벗긴 김준호나 벗김을 당한 심현섭이나, 심현섭의 중요부위를 너무도 생생하게 볼 수 밖에 없었던 방청객들이 모두 경악한 표정이었다. 재빨리 바지를 올린 심현섭은 무대 뒤로 뛰어내려갔고, 녹화는 끝났다.

심현섭은 끝내 마지막 무대인사를 할 때 나오지 않았고, 나중에 방송은 심현섭의 그 부분이 까맣게 칠해져서 돌발상황으로 나왔다. 개그 콘서트가 한 순간에 에로 버전으로 탈바꿈했던 순간이었다.

김준호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심현섭이 너무 화가 나서 무대인사도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불안한 표정이었다. 나는 담당 작가니까 심현섭을 위로해주려고 분장실로 내려갔는데 멍하니 앉아있던 심현섭이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형님, 죽고싶어요. 앞에 다 여자들이 앉아있었는데…내가 그것만 컸으면 이렇게 분하지는 않을거예요. 보니까 별거아니라는 소문이 나면 어떡해요…”

“현섭아,그냥 네가 녹화장을 찿아준 관객들에게 화끈하게 팬 서비스를 했다고 생각해라.”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세월이 지나서 성인용 개그콘서트가 생긴다면 이 장면을 하나도 가리지 않고 그냥 내보내면 모래시계를 능가하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방송에서의 돌발상황도 문제지만 정치적인 돌발상황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5.16 쿠데타,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12,12 쿠데타, 3당 합당 등은 우리 국민들을 너무 당황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입력시간 2003/01/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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