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갤러리의 힘

아마추어와 마찬가지로 프로 골퍼들에게도 징크스가 있다. 남자 골퍼들 사이에서는 ‘타이거 징크스’ 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타이거 우즈와 함께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이상하게 타이거 우즈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우즈가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이길 수가 없다’라는 말까지 나오곤 한다.

아예 타이거 우즈와 마지막 날 같은 조가 되는 골퍼는 그 전날 밤부터 일찌감치 마음을 비우고 경기에 임한다고 한다. 바로 전날까지도 타이거 우즈와 같은 점수를 유지해 왔는데 같은 조에서 플레이 하면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이거 우즈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신비의 실력자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선수가 타이거 우즈 만큼의 실력이 없어 같이 플레이 하면 주눅이 드는 것이 아니다.

물론 타이거 우즈는 신기에 가까운 실력을 보유한, 소위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발군의 골프 천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를 절대 강자로 만드는 것은 타이거 우즈가 자신의 능력을 배가시킬줄 아는 또 다른 천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갤러리의 힘이다.

타이거 우즈를 열성적으로 따라 다니는 ‘우즈 마니아 갤러리’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즈와 같이 플레이를 한다’는 인상을 준다. 타이거 우즈가 극적인 버디를 잡은 뒤 특유의 어퍼 컷 자세를 취할 때 우즈 마니아 갤리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수 천명이 동시에 똑같은 자세를 취한다. 때로는 ‘저런 동작을 가르쳤나’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처럼 타이거 우즈에게는 자신의 갤러리들을 이끌고 흡입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와 같이 플레이 하는 선수는 갤러리들의 ‘기(氣)’에 억눌려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갤러리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불교에서도 ‘합장기도’ 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듯 몇 만 명의 갤러리들이 한 선수를 마음속 깊이 응원하면 그 ‘기(氣)’가 그 선수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또 홀 컵에 볼이 들어가는 순간 갤러리들의 함성과 환호는 타이거 우즈에게는 또 다른 힘이자 자신감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처럼 갤러리는 골퍼에게 있어 그 날의 ‘기(氣)와 운(運)’을 좌우하는 요소다. 한 예로 국내 여자 P모 프로는 마지막 날 마지막 조만 되면 소위 ‘박수 부대’라고 하는 사람들을 대거 동원한다. 그들은 P프로가 파만 기록해도 떠나갈 듯 박수를 친다. 그런 연유에선지 그 프로는 우연히도 마지막 날 성적이 좋은 편이다.

국내 여자 프로들은 처음 미국 LPGA에서의 첫 대회를 치르고 나면 공통적으로 ‘기(氣)’가 죽는다고 말한다. 실력은 엇비슷한데 갤러리의 응원과 낯선 주변 분위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대다수 골퍼들이 경기 중에는 경기에만 몰두한다고 말하지만 골퍼도 사람인 이상 주위와 무관할 수 없다.

심지어는 아쉽게 퍼팅을 실패하는 순간 주변에서 짧게 들리는 ‘아’ 하는 탄성 하나에도 선수들은 가슴이 찡하는 경우가 있다.

갤러리의 힘은 특히 외국 투어에 나서는 프로들에게 더욱 절실히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 미국 LPGA투어에 도전하는 국내 꿈나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실력 만큼이나 갤러리들의 마음과 시선을 끌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프로 골퍼들도 이젠 거의 준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매 대회 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어 실력 만큼이나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춰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 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이 깔끔한 의상이라도 좋고, 앙증맞은 표정이라도 좋고, 멋진 제스처라도 좋다. 자신만의 독특한 것이라면 된다.

프로의 세계에서 내 자신의 값어치를 높이는 것은 절대 자만이 아니다. 당연한 권리이자 책임이다. 나를 지켜주고, 나를 인정해 주고,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많아야 책임감과 사명감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선수에게 있어 실력 연마는 기본이다.

‘나’ 자신만의 매력을 만드는 것은 현대 프로 골프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이다. 자신을 잘 관리하는 선수는 언젠가는 그 만큼의 실력도 갖게 마련이다.

입력시간 2003/01/09 17:25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