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패트롤] "당당하고 떳떳한 부자아빠 될래요"

한국의 워렌 버핏, 젊은 투자자 김민국 편집장

얼마 전 삼성증권에선 일반인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모의주식투자게임을 벌였다. 결과는 잦은 매매를 지양하고 시가총액 상위20종목에 집중투자한 대학생들의 수익률이 일반인들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것은 일반인 그룹이 대학생 그룹보다 잦은 매매를 하고 한 두 종목에 자금 대부분을 쏟아 붓는 ‘몰빵’식 투자경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투자동아리, 기업분석 보고서 묶어 출간 화제

<대학투자저널>(www.itooza.com)의 김 민국 편집장(26. 서울대 경제학부 4년)은 이번 결과를 젊은 세대의 건강한 투자 문화의 승리이자 정석투자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표현했다. “기존의 주식투자는 투기적이고 좋지 않은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탕주의에 물든 일부 투자자들로 인한 오해에 불과해요. 새롭게 주식투자는 도박의 장이 아닌 기업 지분의 일부를 경영자와 함께 나눠 갖는 나눔의 장입니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지 6년째. 이제 그는 옥석을 구분할 줄 안다. 지난해 6월엔 동아리 친구들로부터 5,000만원을 모아 펀드를 만든 뒤 최근까지 114%의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펀드 이름은 'VIP(Value investment pioneer)'. ‘가치투자의 개척자’라는 명칭처럼 그는 이 펀드를 통해 가치투자의 새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포부에 불타고 있다.

실제 그는 종목을 고를 때 숫자와 경영의 질을 동시에 보면서 노른자를 집어낸다. 의류업체인 한섬에 투자할 때도 그랬다. 그는 숫자에 주목했다. 당시 대형 의류업체들이 장사를 못해 쓰러지는데도 한섬만은 유독 자기자본이익률(ROE. 당기순이익÷자기자본)이 27%대를 유지하는 비결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답은 있었다. 하청을 통한 생산 방식으로 공장 건설 등 투자비에 대한 부담이 적고, 제품 기획력이나 브랜드. 디자인 파워가 탁월했던 것이다.

펀드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종목들을 발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생활의 발견이란 평범한 원칙을 적용했다. 이는 소비가 늘어나는 종목을 주목한 뒤 재무제표를 검증하고 나서 투자하는 방법으로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렌 버펫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이런 식으로 발굴해 펀드에 넣은 22개 종목은 대부분이 의식주에 관련된 종목들. 모두 주가가 많이 오른 것은 물론 분기마다 투자자에게 나눠주는 배당 수익도 높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투자 전략은 첫째도, 둘째도 가치투자다. 가치투자란 시장의 인기 종목을 따라가지 않고 기업의 내재 가치를 중시하는 전략. 이렇게 가치투자를 중시하게 된 것은 처음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을 때의 쓰라린 경험 때문이었다.

“대학 1학년 때인 1997년에 과외로 번 돈을 모아 부모님 몰래 주식에 멋모르고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봤어요. 남들이 볼 땐 얼마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저에겐 충격이 컸죠. 거기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부모님께서도 주식투자하면 패가망신하기 딱 좋다면서 말리시는데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더 이상 실패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본격적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죠.”

이후 200권이 넘는 증권. 경영 관련 서적을 탐독했고, 지난해부터는 서울대 투자연구회에 가입하면서 자신과 뜻이 맞는 선후배들과 주식 투자의 기초부터 재정리했다. 결론은 ‘주식 투자는 트레이딩이 아니라 기업의 일부를 사는 것’이라는 투자 원칙이었다.

<대학투자저널>을 창간한 것도 새로운 세대가 주도하는 깨끗한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소박한 시도에서였다. 초기엔 가치투자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의견을 교환하겠다는 생각에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금씩 나눠줬지만, 이젠 서울에 있는 22개 대학에 월간지로 배포되고, 정기구독자도 수백명이 될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인기 종목 보다는 기업가치를 보고 투자”

“주로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을 투자 화두로 삼아서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반응이 참 좋아요. 특히 <개그 콘서트>를 맨파워 기업에 비유하거나, <야인시대>를 통해 투자의 키워드를 설명한 기사들은 독자들에게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신문을 발간하는 한편 지난해 초부터 투자연구회 동료들과 함께 꾸준히 써낸 기업 분석 보고서를 묶어 지난 3월엔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은행나무 펴냄)>이라는 책을 펴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신년 계획은 신문을 증면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투자 지침서를 출판하는 것. 독일의 유명한 어린이 경제 이야기 <12살에 부자가 된 키라>와 같은 재미와 교육이 함께하는 책으로 만들어 내고자 동료들과 불철주야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앞으로의 꿈은 한국에 가치 투자를 정착시켜 한국 주식시장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올바른 주식투자를 위해선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제 아이들에게도 아빠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은 게 아니라 원칙과 기본을 지켜 돈을 모은 착한 부자라고 당당히 얘기해주고 싶어요.”그의 젊은 웃음이 당당하기만 하다.


  • 기업유형 8가지
  • 최근 서울대 투자연구회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열풍을 활용해 기업별 모ㆍ자회사의 유형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연구회가 제시한 부자(父子)관계의 기업유형은 모두 8가지다.


    ◇ 효자아들형

    시장의 탁월한 지위를 바탕으로 매년 대규모 지분법 평가이익을 내주는 유형으로 모회사가 어려울 때 자회사가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유한양행과 유한킴벌리가 좋은 사례. 유한킴벌리의 지난해 자본총계(3,090억원)는 유한양행 시가총액(3,474억원)에 버금간다.


    ◇ 불효자 아들형

    아들이 사고치고 아버지에게 돈 뜯어가는 유형. 새롬기술과 다이얼패드가 해당된다. 다이얼패드는 지난해 33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모회사 새롬기술에 부담을 주었고 결국 경영진의 내분과 오상수 전 사장의 검찰 구속까지 초래했다.


    ◇ 입양가능 아들형

    불효자이지만 특기는 있어 남에게 팔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기업을 말한다. 동양메이저와 동양캐피탈이 이 유형으로 꼽혔다.


    ◇ 아버지보다 부유한 아들형

    수익은 모기업보다 떨어지지만 현금보유액이나 자산은 자회사가 더 많은 기업도 있다. 다함이텍의 자회사 다함넷의 자본총계는 763억원으로 다함이텍 시가총액 678억원보다 많다.


    ◇ 부자협동형

    모회사가 자회사에 납품을 하고 자회사가 영업을 맡아 배당이나 지분법 평가이익의 형태로 이익을 모회사로 돌려주는 형태. 동서와 동서식품, 율촌 화학과 농심, 한섬과 마임이 이런 경우다.


    ◇ 부자 아들, 가난한 아빠형

    자회사가 모회사보다 이익이나 자산규모가 훨씬 더 큰 경우다. 태영과 SBS, 동원산업과 동원증권이 해당된다.


    ◇ 양아들형

    지분관계는 갖고 있지만 실질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너는 따로 있는 기업군이다. SK와 SK텔레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등 주로 대기업이 이 유형이다.


    ◇ 미래유망 아들형

    모회사 규모에 비해 아직은 별 볼 일 없지만 성장성은 뛰어난 유형도 있다. 신세계와 신세계 푸드ㆍ스타벅스커피코리아가 적절한 사례로 꼽혔다.

    오유경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1/10 10:3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