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한국문화도 너무 매력적"

가수 한대수 부인 옥산나 스물셋 나이차를 건너뛴 사랑

오후 3시 연희동 ‘전설의 히피’ 가수 한대수(55)의 집 앞. 초인종을 거듭 눌러도 인기척이 없다. 추위에 떨다 돌아서려는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비로소 열린다. 막 잠자리에서 일어난 듯 부스스한 모습의 한씨가 맨발로 기자 일행을 반긴다. 아내 옥산나(32)는 아직도 곤한 잠에 빠져 있다.

“낮에는 친지들에게 인사 드리러 다니고 밤에는 쇼핑하러 돌아다녔더니 너무 피곤하네요. 아시죠? 남자가 여자를 따라 다니며 쇼핑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아내는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아내는 이틀 뒤면 또 미국으로 가요”

잠시 후 한대수는 커피 한 잔을 뽑아 옥산나가 잠 자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향기로운 커피 한 잔과 몇 분간의 부드러운 마사지. 드디어 눈을 뜬 옥산나는 “남편이 나를 이렇게 깨워줄 때가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문을 연다.

이내 사랑스러운 눈빛을 교환하는 두 사람. 옥산나가 ‘뽀뽀’ 하고 응석을 부리자 한씨는 천진한 표정으로 입을 맞춘다. 보는 사람이 있건 없건 별로 개의치 않는다. 마음이 동한 김에 코까지 마주 부빈다. ‘에스키모’ 키스란다.


남편은 ‘남편이자 아버지’

옥산나는 남편을 “나의 남편이자 아버지”라고 말한다. 갓난 아기 때 부모가 이혼을 해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는 지난해 어머니마저 잃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고통 받는 아내에게 남편은 “부모 역할까지 해주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여전히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듯한 한대수ㆍ옥산나 부부가 결혼을 한 것은 11년 전인 1992년. 몽골계 러시아인 옥산나가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온 지 8개월 만에 남편을 만났다. 만남의 계기는 ‘한국인에게는 몽골인의 피가 흐른다’는 남편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남편의 사무실(사진 현상소)에 제 친구가 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친구가 와서 남편이 자신에게도 몽골계의 피가 흐른다고 했다는 거에요. 저는 당연히 ‘한국인은 한국인이지 왜 몽골인이냐’고 반박했죠. 그래도 호기심에 궁금해서 만나게 됐어요.”

첫 만남의 장소는 옥산나와 친구가 함께 살던 아파트. 닭의 간 요리를 하고 있는데 그가 보드카를 사들고 왔다. 먼저 문제의 혈통을 거론하자 그는 “한국인에게도 몽고 반점이 있다”며 동질감을 강조했고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두 사람 모두 술을 엄청 좋아한다는 것도 공통점.

독한 보드카를 한 병 두 병 마시다 보니 어느덧 몸이 풀린 그를 집에 보내지 못해 응접실에서 재웠다. 그때 이미 한대수는 젊고 예쁜 그녀에게 반해 있었다. 그는 친구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 연일 데이트를 신청했고 화통한 성격의 옥산나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후 3주만에 한대수가 청혼을 했고, 두 달 뒤 전격적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미친 듯이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을 두고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함께 해보지 않고 끝낸다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올바르게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청혼을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 선택엔 후회가 없어요. 10년을 더불어 살아보니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존경해요.”

나이 차가 스물 세 살이나 되지만 평소에 나이 많은 남자와 얘기 나누는 것을 즐기던 그녀인지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래의 남자들은 어린 애 같다’는 것이 나이에 비해 조숙한 옥산나의 생각이다.

“지금도 남편은 무척 천진해요. 세대 차가 느껴지기는커녕 어떤 때는 남편이 저보다 젊게 느껴지는 걸요.”


서울과 뉴욕서 각자 생활

부부의 인연은 따로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맞나 싶다. 음식을 거의 못 하는 그녀에 반해 한대수는 요리가 취미이자 특기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남자들이 부엌에만 들어가도 무슨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여기기 일쑤지만, 그는 어린 아내를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해낸다.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 양식 요리는 두루 잘 한다. 불고기나 국수, 사골 요리도 제법 맛을 낸다. 그녀의 일이라면 남편의 요리를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이다.

주변의 부러움을 살만큼 이 부부는 금슬이 좋다. 하지만 이들도 역시 부부 싸움을 한다. 나름의 부부 싸움 원칙도 있다.

“전화로 따따따 싸우는 건 절대로 안 해요. 얼굴을 마주 하고 얘기를 하자는 게 원칙이에요. 또 될 수 있으면 저녁에는 싸움을 피해요.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나눠야 얘기도 잘 풀리니까요.”

문화적 차이 등으로 가끔 의견 충돌을 경험하지만 대체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특히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다툼에 시간을 낭비하느냐는 생각이다. 결혼 생활 중 옥산나가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서로 떨어져 사는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현재 옥산나는 뉴욕에서 증권회사 사무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1년의 절반을 떨어져 지내요. 남편이 음악 활동으로 서울에 가기 때문이죠. 뉴욕에서 일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잖아요. 그럴 때면 남편과 의논을 하고 위로도 받고 싶은데 곁에 없으니 답답해요”

떨어져 지내는 동안 두 사람은 전화와 인터넷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전화는 하루 걸러 한 번 정도. 옥산나는 남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전화를 더 선호한다.

그녀는 결혼 초기 남편이 유명한 가수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저 사진계에서 자리잡은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가끔 남편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도 그냥 보고 ‘아, 잘하는구나’ 하는 정도였다.

“남편은 한국에 대해 분노 비슷한 감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의 생활도, 유명 가수였다는 것도 일절 내세우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에서 친구나 후배들이 자꾸 찾아오더라구요. 김수철, 조영남 같은 가수들이죠. 처음엔 그들이 남편을 보고 ‘마이 보스(my boss)’라고 해서 크게 놀랐어요.”

한대수의 음악세계를 알게 된 뒤엔 사진 대신 음악 작업을 강력히 추천했다. “남편의 음악을 접하고 사진보다 음악이 그의 길임을 알았죠. 이후론 그가 다시 왕성한 활동을 하는데 자신을 갖도록 배려했어요. 요즘도 남편의 공연을 보면 상당히 흥분되고 그래요”


한국서 연예활동 고려중

옥산나는 음악과 춤을 매우 즐긴다. 춤 솜씨는 남편의 넋을 단숨에 빼앗을 만큼 뛰어나다. 결혼 전에는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대수는 “옥산나는 큰 대륙의 나라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매우 정열적이고 예능에 능하다”며 “1~2년 후 우리나라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했다.

옥산나가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7번째. 길어야 열흘을 머물다 가는 짧은 방문이지만, 올 때마다 느껴지는 친근감은 매번 깊이가 다르다.

“처음 왔을 땐 배탈이 나서 아주 혼났어요. 음식도 입에 안 맞고요. 지금은 없어서 못 먹죠. 김치도 맛있고요. 한국의 문화는 대단히 매력적이에요.”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한 옥산나는 최근 우리나라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미국의 한국어 학원에서 기본 과정을 밟고 있다. 연예계 진출은 물론, 한국과 러시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이즈음 민간외교관으로서의 활약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와 일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젊은 정신이 남편을 많이 닮아 있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3/01/21 15:00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