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랑타령… 쌈빡한 아이템 없나

사극·시대극 열기주춤, 남성성 강조 불구 사랑 이야기 주류

“또 출생의 비밀이냐.” “신데렐라가 나와야 시청률이 오르지.” “또 콩쥐 팥쥐형 인물이 나오는군. 유치하군.” “우리나라에는 웬 재벌이 그렇게도 많으냐.” “복수를 해야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백혈병 걸려서 죽는구만.”

SBS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 에서 세 자녀와 극중 탤런트 역으로 나오는 노주현이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나누는 대사들이다. 역설적이지만 이 대사가 우리 드라마의 현주소다. 오죽했으면 시트콤 대사에 이런 내용들이 반영된 것일까.

이제 시청자라면 누구나 드라마 1~2회만 봐도 앞으로 전개될 상황과 인물의 성격, 그리고 드라마의 결말까지 예측할 수 있다. 시청자가 드라마에 대한 심도 있는 눈을 가졌다기보다는 우리 드라마의 상투성과 진부함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새해 문을 열면서 KBS, MBC, SBS 등 방송 3사가 새 드라마를 선보이거나 방송할 예정이다. 드라마는 각 방송사들이 사활을 걸며 경쟁하는 장르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좋으면 다른 프로그램까지 시청률이 덩달아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사 간부진과 제작진은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가며 드라마에 승부수를 띄운다.


방송3사 드라마로 승부수

1~2월에 시작하는 드라마는 올 한해 드라마의 경향을 전망하고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우선 외형적으로 이전 드라마와 비교가 안 될 인원, 규모와 제작비를 투입하는 블록버스터형 드라마가 시청자와 만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랑을 다룬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 돼 극단적인 인물형의 사랑을 소재로 내세우는 드라마 특히 트렌디 드라마가 안방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성들의 활발한 방송 작가 진출과 남성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이전의 여성이 드라마 전면에 나선 드라마는 점차 감소하고 남자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남성성이 강조된 드라마가 활기를 띌 것으로 전망된다.

올 한해 스케일이 큰 사극을 방송사마다 준비하고 있지만 ‘허준’ ‘태조 왕건’ ‘여인천하’ ‘대망’ ‘야인시대’ 로 이어지면서 최근 3~4년 동안 안방극장의 인기를 독차지 했던 사극과 시대극의 열풍은 점차 약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현대적 대사와 분위기, 음악 등을 가미한 트렌디성 요소가 강화된 사극이 주요한 흐름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1월에 시작했거나 방송 예정인 드라마는 KBS의 ‘아내’(6일 첫 방송) ‘저 푸른 초원위에’(4일 첫 방송) ‘헬로 발발리’(2일 첫 방송), MBC의 ‘눈사람’(8일 첫 방송) ‘기쁜 소식’(5일 첫 방송), SBS의 ‘올인’(15일 첫 방송), ‘태양 속으로’(11일 첫 방송) 등이다. 2월에는 KBS에선 새로운 일일 드라마와 ‘제국의 아침’ 후속의 ‘무인시대’를 방송할 예정이다.

KBS 미니 시리즈 ‘아내’는 남자 주인공(유동근)이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이전의 아내(김희애)를 잊고 새 아내(엄정화)를 맞은 뒤 기억을 되찾아 가며 겪는 사랑의 아픔을 담은 드라마로 5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하는 김희애의 출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또한 ‘저 푸른 초원위에’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성격이 다른 두 형제(최수종과 윤태영)와 이들과 사랑을 엮어가는 사촌 자매(채림과 채정안)간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홈드라마이고 만화가 강철수씨가 극본을 쓴 ‘헬로 발바리’ 홀아비와 아들, 이혼녀와 딸의 두 가정을 중심으로 코믹하게 전개되는 일일 드라마이다.

MBC의 ‘눈사람’은 형부와 처제의 사랑을 다룬 것으로 연기파 탤런트 조재현과 오연수 공효진이 주연을 맡았으며 ‘전원일기’후속으로 선보인 ‘기쁜 소식’은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이 동서간으로 등장해 일어나는 일들을 경쾌하게 그려나가는 시추에이션 드라마이다.

SBS의 ‘올인’은 깡패에서 마피아로 도박에 승부를 거는 노승일 동명소설속 실존인물 차민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야망을 묘사한 드라마로 이병헌 지성 송혜교 박솔미 등 스타급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해 방송 전부터 눈길을 끌고 있으며 ‘태양 속으로’는 해군 대위(권상우)와 여의사(명세빈)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주말극이다.


블록버스터형 드라마 물량공세

회당 5,000만원이던 드라마 제작비가 1억원을 넘은 첫 드라마는 ‘태조 왕건’이었다. 이 기록은 불과 1년도안돼 회당 2억원에 이르는 드라마가 탄생하면서 깨졌다. 5일 끝난 ‘대망’과 인기 고공비행을 하는 ‘야인시대’ 가 그렇다.

물론 두 개다 사극과 시대극이어서 야외세트가 많아 제작비가 많이 소요된 점도 있지만 특수 효과 등을 위한 드라마 완성도를 위한 경비 소요와 스타급 연예인의 출연료 급등, 스케일이 큰 드라마의 지향 등이 제작비의 상승 현상을 부채질 했다.

‘올인’ 역시 블록버스터형 드라마를 표방하며 미국 로케이션 등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장기간 해외 촬영 등 물량 공세를 하고 있다. ‘태양 속으로’ 도 진해 해군을 무대로 야외촬영이 위주가 돼 막대한 제작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월에 ‘제국의 아침’ 후속으로 방송될 KBS 대하사극은 고려 의종 24년(1170년) 정중부가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때부터 고종 45년(1258년) 최씨정권의 최후 집권자 최의가 죽기까지의 권부를 수놓은 이의방 이의민 경대승 최충헌 최우 최항 등의 삶과 활동을 담는데 주요 연기자만 해도 130여명에 이르는 스케일이 큰 대하사극이다.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한국 영화처럼 안방극장에서도 블록버스터형의 드라마가 최근 1~2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것은 수준이 높아진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드라마의 완성도를 제고하기 위한 취지였지만 볼거리 제공에 수준에 그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노정했다.

1992년 ‘질투’를 시작으로 텔레비전 드라마의 형식과 내용을 지배해 온 트렌디 드라마는 최근 3~4년 동안 무늬만 바뀌었지 내용과 형식은 콩쥐팥쥐형 인물 등장, 선악대결, 출생의 비밀, 이복자매나 형제간의 한 남자나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사랑, 극중 주인공의 극적 죽음 등으로 축약된다.

이런 트렌디 드라마 내용의 경향은 심지어 가족 드라마의 본령이라는 일일 드라마에도 영향을 미쳐 현재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MBC 일일극 ‘인어아가씨’와 KBS 일일극 ‘당신 옆이 좋아’에도 각각 이복자매와 친자매간이 한 남자를 놓고 벌이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뤘다.

1월에 시작하는 새 드라마 중 ‘눈사람’은 형부와 처제의 사랑을 다뤘고 ‘아내’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가 두 아내와 겪는 사랑과 갈등을 묘사한 것으로 극단적 극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TV앞에 앉은 남자들

여자 작가의 득세와 드라마의 주소비층이 여성이라는 점은 안방극장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의 봇물을 이뤘고 남성들을 상대적으로 드라마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사극과 시대극을 중심으로 남성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드라마가 선보임으로써 남자 시청자를 안방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올해에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이 방송작가로의 진출이 여성이 비해 떨어지지만 예전에 비해 크게 늘면서 선 굵은 남성 드라마가 선보이고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멜로 드라마 역시 남성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방송되기 때문이다.

깡패에서 도박사로 승부수를 던지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올 인’, 한 남자와 두 아내를 다룬 ‘아내’, 해군을 배경으로 하는 ‘태양 속으로’ , 아내와 처제와의 갈등과 사랑 등을 담은 ‘눈사람’, 무인들의 권력을 향한 야망과 갈등을 묘사한 ‘무인시대’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최근 3~4년 동안 인기 고공비행을 했던 장르인 사극과 시대극의 열기는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의 전개가 느슨해지면서 ‘인어 아가씨’에 시청률 1위 자리를 내준 ‘야인시대’와 ‘태조 왕건’의 관심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제국의 아침’은 이러한 예상을 짐작케 한다.

물론 각 방송사가 올 한해 야심 찬 사극을 준비하고 있다. 서인석(이의방역) 김흥기(정중부역) 이덕화(이의민역) 임혁(두경승) 등 중견급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KBS ‘무인시대'가 대표적이다.

MBC는 ‘허준’ ‘상도’로 사극 붐을 조성했던 이병훈 PD의 연출로 조선 중종 때 인물로 여성으로서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궁중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우연곡절 끝에 어의가 되었던 실존인물 장금의 일대기를 다룬 ‘대장금’을 8월에 방송할 예정이며 SBS는 ‘장길산’을 드라마화 할 계획이다.

올 한해에도 수많은 드라마가 시청자와 만날 것이다. 미국에서 시트콤이, 일본에선 오락 프로그램이 대중적 인기가 높듯 우리나라에선 드라마가 단연 인기가 높다. 이로 인해 드라마는 청소년을 비롯한 많은 시청자의 정서와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올 한해는 선정성과 폭력성 그리고 자극적인 소재로 단순한 눈요기거리를 제공하기보다는 우리의 정서와 마음에 감동과 따뜻함을 전해줄 수 있고 건강한 웃음을 제공하는 삶의 진성성이 담보되는 드라마가 안방을 찾았으면 한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1/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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