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제보지 보셨어요?"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시집의 제목이었던 이 낭만적인 문장이 문득 떠오른다. 20대의 풋풋한 감성이 내 정신을 지배했을 때 읽었던 것 같은데 전체 시 내용은 잊어버렸어도 그 제목만큼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다.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이 오롯이 느껴져서일까? 그 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잊어버렸던, 잃고 살았던 사람들이며 다짐이며 꿈들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우리는 매일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며 산다. 곱고 맑았던 감성을 나이라는 세월을 탓하며 잃어버리고 굽힐 줄 모르던 도전적인 반항정신은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슬그머니 뒷자리로 물린 채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이기적인 어른으로 살아간다.

간혹 침대 밑이나 소파 밑을 청소하다가 먼지를 잔뜩 묻힌 채 숨어있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한동안 열심히 찾다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그냥 포기하며 잊었던 물건들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볼펜이나 단추 따위 같은 소소한 물건들이 참으로 대단히 값진 것으로 둔갑한 것처럼 마음을 자극한다. 먼지를 떨어내며 마치 집 나갔다가 돌아온 철없는 자식을 보듬어 안고 ‘너 돌아왔구나, 여태 어디 있었어?’ 하며 나무라는 그런 다정한 마음마저 든다.

아마 아침 신문에서 분실물 센터에 쌓인 수많은 핸드폰들을 찍은 사진을 보고 난 후라 마음이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칸칸이 쌓인 비싼 핸드폰들이 주인을 잃어버리고 뽀얀 먼지를 얹은 채 쌓여있는걸 보니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핸드폰이라면 값이 꽤 나가는 귀중품에 속하는데 그걸 잃어버리고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을 생각을 안 한다는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

나도 전에 핸드폰을 택시에 두고 내린 적이 있었다. 다행히 좋은 기사분을 만나서인지 금방 돌려받을 수 있었다. 나를 여의도에 내려놓고 강남까지 갔던 기사분은 뒤늦게 내 핸드폰을 발견해서 연락을 해주었고 일부러 방송국 근처까지 가져다 주셨다.

하도 고마운 마음에 기름값 정도라며 인사를 차리려고 했더니 극구 사양을 하는 것이다. 전에 내가 썼던 책을 사서 읽었다며 나를 알아본 기사분은 ‘좋은 글 더 많이 쓰세요’ 하는 덕담까지 해주며 사람 좋은 웃음만 남기고 가버리셨다.

나처럼 좋은 분을 만나기도 하지만 탤런트A군은 그렇지 못했다. 술을 마셔서 택시를 탔던 A는 취중에 핸드폰을 두고 내렸다. 다음날 아침 정신을 차린 A군이 부랴부랴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더니 택시 기사가 보관하고 있었다.

마침 방송국으로 가야 할 시간이라 핸드폰도 돌려 받을 겸 택시를 집 앞으로 오게 했다. A가 택시에 타자 기사가 알아본 모양이었다. “어, 정말 탤런트네. 이름만 같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잃어버렸던 핸드폰도 무사히 찾고 또 자신을 알아보며 팬이라고 반가워 하는 택시기사와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며 방송국까지 왔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A가 택시요금에다 인사 겸 해서 조금 더 얹어주었는데 돈을 받아 든 기사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지더란다.

“뭐야, 연예인이면 돈도 많이 벌 텐데 기껏 이거야? 참내, 그 핸드폰 갖다 팔아도 이거보다는 많이 받겠다.” 결국 말싸움까지 벌였지만 A는 두고두고 그 때 경험을 불쾌해 했다.

몇 년전 라디오 일을 할 때였다. 운전자들이 신속하게 제보해 주는 교통상황을 방송해야 했는데 리포터가 잠깐 한눈을 팔았는지 원고로 정리해 둔 제보지를 잃어버렸다. 방송시간은 다가오고 사색이 된 여자 리포터는 울먹거리며 보는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제보지 보셨어요? 제보지 보셨어요?”그러자 짖궂은 PD 하나가 그 여자 리포터를 아래위로 훓어 보더니 말했다. “자기 걸 자기가 간수해야지 왜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 제보지가 제 보지로 들렸나….

입력시간 2003/01/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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