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인생역전

인생역전이라고 한다. 두자리 숫자 여섯 개만 맞히면 최소한 20억원 이상을 받을 수 있는 로또복권에서 얼마 전에 65억원 짜리 대박이 터지면서 인생역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실감나게 다가왔다. 원래는 로또복권이 서민들의 알량한 주머니를 털기 위해 내건 슬로건이지만 단 한번에 고달픈 삶 자체를 역전시킨다니, 늘 설움에 젖어 살던 그들에게 그만큼 매력적인 말도 없다.

주변을 돌아보면 인생역전은 분명히 있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달아 떨어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12ㆍ19대선에서 대세론의 이회창 후보를 꺾은 것도 그렇고, 로또복권 10만원어치를 사서 51억원을 챙긴 당첨자도 마찬가지다.

또 도무지 가망이 없던 노 후보 진영에 합류한 사람들도 “아무리 벤처시대라지만 그래도 될만한 사람에게 가야지”라는 핀잔을 받았지만 대번에 권력핵심으로 편입되는 인생역전을 경험했다.

그러니 “올해는 내게도 인생역전의 기회가 올까”라고 묻는 건 당연하다. 설날을 전후해 우리 전통의 토정비결을 보거나 올해의 운세, 사주팔자를 물으며 자신의 운명을 점치는 걸 탓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 중에서도 나이 지긋한 분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사주팔자란 그 사람의 자아(에고), 자아에 대한 표현, 물질 욕구, 자기 통제력, 외부로부터의 수용력 등 5가지 성향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를 살피고 그것이 앞으로 어떤 변화 과정을 밟을 것인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사주에는 104만 가지가 있지만 결국은 이 5가지 성향이 어떻게 배합돼 있느냐의 문제다. 보통은 대표적인 성향과 부수적인 성향 하나가 결합돼 그 사람의 색깔을 결정짓는다. 흔히 말하는 개성이고 가장 기본적인 운명이다. 예를 들어 물질 욕구가 강하고 자아 표현 성향이 부수적으로 따라 붙으면 기업가가 되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따지면 5가지 성향마다 4가지 보조 성향이 있으니 경우의 수는 20가지이고, 여기에 오행을 뜻하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5가지 성향을 합하면 100가지 성향으로 늘어나는데, 이를 기초로 해서 그 사람의 성격과 운명을 판단한다.(김태규/음양오행으로 살펴본 세상사/ 동학사)

인생역전의 방법 중에서 작년과 올해엔 화두가 단연 돈이다. 작년에는 “새해에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하더니 올해는 복권 한장으로 인생역전을 유혹한다. “부~자되세요”라는 말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중국인들의 신년덕담 “따지아 꽁씨파짜이” (大家 恭喜發財, 모두 부자 되시기 바랍니다)에서 따온 것이다.

사주(명리학)를 보면 부자가 되는 사람은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 조건은 1) 물질 욕구 2) 물질을 얻기 위한 노력 3) 정신적 육체적 체력 등인데, 통상 1)번의 조건만 갖춰도 좋은 운을 만나면 부를 쌓을 수 있다고 한다. 1)번과 2)번, 1)번과3)번을 갖추고 있다면 한 평생을 살면서 대개 (재물) 운을 만나 부를 축적하게 된다.

“언제쯤 돈을 벌 수 있을까요”라고 물을 때 “올해는 아니고 내후년쯤에나…”라는 답변을 듣는다면 2)번이나 3)번의 조건이 내후년에나 찾아온다는 뜻이다. 복권 당첨자들이 전날 밤 “물 꿈을 꾸었네” “돼지 꿈을 꾸었네”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운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었다고 보면 된다.

부자가 되는 운과 그 부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또 다르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한때 큰 돈을 벌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더니 어느새 몰락해 물의를 빚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귀국 여부가 관심을 끄는 김우중 전 대우회장을 비롯해 벤처의 대부로 추앙받던 메디슨의 이민화 사장 등이 그런 부류다.

그 이유를 명리학적으로 살펴보면 부모 인연이 박하고, 성격적으로는 독불장군 타입이라고 한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교만해졌거나 적당히 만족하고 쉬어 가야 할 시점에도 끝까지 밀어붙이다가 뒤집어진 것이다. 노름이나 도박에도 기세라는 게 있는데 자기의 재주와 기세만 믿었다가 화를 자초한 셈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는가? 기준은 없지만 초심을 잃기 시작하면 경고등이 들어왔다고 봐야 한다. 초기에는 범하지 않던 자기 원칙을 어기거나 실수를 가벼이 여기게 됐다면 초심을 잃은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의 경우 인생역전을 가능하게 했던 서민 풍모나 개혁 이미지, 원칙을 잃는 순간 그야말로 ‘서든 데스 룰’(sudden death rule)이 적용되기 시작할 것이다.

서민들에게 인생역전은 늘 허황된 꿈으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희망마저 버리지는 말자. 엊그제 산 복권이 100억원짜리 대박을 안겨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까, 애독자 여러분 설날 전날밤에는 부~자되는 꿈부터 꿉시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2003/01/3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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