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미국으로 가라

미국 현지 교민들은 우스갯 소리로 “우리는 2만5,000개의 회원권을 소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과언이 아닐 만큼 미국에는 엄청난 골프장이 있다. 상당 수가 주택가 인근에 있는 퍼블릭 골프장들이다.

미국에 반해 국내 골프장들은 대개 회원 위주로 운영된다. 만성적인 초과 수요 상태가 계속되면서 골프장 사업자들이 고가 회원 위주의 골프장을 계속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특권층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아마 골퍼들 때문에 고가 골프장이 계속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현지 교민의 도움으로 LA에 있는 팔로스 베르데스GC에서 플레이를 했다. 팔로스 베르데스GC는 현지 교민들도 치기 힘들다는 명문 골프 클럽이다. 첫 홀 티샷을 기다리며 둘러본 주변 경관은 일품이었다. 태평양이 내려다 보이는 멋진 경관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자아냈다.

또 페어웨이 경사가 심하고 나무들도 빼곡이 차 있어 미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웅장한 페어웨이와 아기자기한 동양적 매력이 합친듯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티샷을 기다리는 동안 어디선가 범상치 않은 한국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스윙 천천히 하세요…” 낯선 타국에서도 필드 레슨을 하나 하는 생각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알고 보니 한국의 여자프로인 P씨였다.

2003년에는 무엇인가를 보여 주려고 여느 해와 달리 동계훈련비를 아껴 태국 대신 이곳 미국을 찾았다고 했다. 동남아 지역에 비해 경비가 많이 들어 주중에는 2번 정도의 필드 레슨을 해서 여비를 충당한다고 했다. 참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4일은 연습을 하고, 이틀은 경비 마련을 위해 미국 현지에서 레슨을 하는 것이다. 미국은 말 그대로 ‘골프 천국’이다. 하지만 실력 있는 코치가 많지 않은 데다 언어 문제 때문에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이 필드 레슨을 많이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프로가 왔다고 하면 서로 레슨을 받으려고 난리를 친다고 한다.

미국은 골프 정보를 수집하고 스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어 프로들의 동계 훈련지 제 1순위로 꼽힌다. 하지만 워낙 훈련 경비가 많이 들어 톱 프로들도 지원을 받지 않으면 두 달 이상 있기가 부담스럽다. 많은 주니어나 프로들이 동남아 지역을 선호하는 이유도 동계훈련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남아 전지 훈련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P프로는 올 겨울 조금 고생스러워도 미국 현지 분위기를 익히면 앞으로 있을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사실 동계훈련은 라운딩 위주의 훈련이 아니라 자신의 단점을 집중적으로 교정하는 게 중요하다. 라운딩 할 때 주 1~2번의 필드 레슨은 본인의 편안한 마인드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동계 훈련과 경비 마련을 병행한다는 것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P프로는 교민들의 도움과 본인의 의지를 통해 이를 훌륭히 소화해 내고 있었다.

미국은 골프의 지상 천국이지만 한국에 비해 현지 교민들을 위한 이벤트나 레슨 프로그램은 별로 없다. 또 교민 골퍼들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않는 이상 효율적인 레슨을 받기 힘들다. 레슨비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런 연유로 한국에서 프로 골퍼가 오면 라운딩을 원하는 교민들이 꽤 많다.

프로 골퍼들은 앞으로 동계훈련은 무조건 자기 연습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지 단순 비용이 적다는 이유로 동남아로 몰려가 쓸 데 없는 시간을 낭비해선 곤란하다.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현지 답사와 적응 훈련을 미리 한다는 생각으로 골프 전쟁터인 미국으로 가라. 그리고 거기에서 교민 레슨을 병행하며 차츰 기량을 키워가라.

편하게만 연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시간을 할애해 가능한 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충당하는 것도 실력(?)이다. 자기를 희생하는 골퍼가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입력시간 2003/01/3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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