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밤꽃에 곰팡이(?) 슬겠네"

'프리선언' 늘고 업소마다 튀는 서비스로 생존 몸부림

수도권 일대 윤락가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이른바 ‘빅3’로 통하는 미아리 텍사스, 용산역 텍사스, 청량리 588을 상대로 정부가 잇따라 딴죽을 걸자 ‘무한 생존경쟁’에 돌입한 것.

새롭게 변신한 ‘2003년형’ 윤락가의 특징은 기존 시스템을 깡그리 무시한다는 점. 살아 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태세다. 일부 업소의 경우 윤락녀에게 교복 등의 유니폼을 입히거나 프리랜서 개념을 도입하는 등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파리날리는 윤락가 “쑥대밭 직전”

오랫동안 한반도의 ‘밤거리’를 지배해왔던 이들이 적극적인 자기 변신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윤락가를 상대로 한 정부의 ‘선전포고’가 잇따르면서 입지가 점점 줄어든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실제 서울시는 최근 미아리 텍사스, 청량리 588, 용산역 텍사스에 대해 2004년까지 재개발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청량리와 용산은 도심 재개발 방식을 적용하고, 미아리는 재개발이나 도시개발 방식을 채택해 시 주도로 개발을 하겠다는 게 서울시가 내놓은 청사진의 골자.

경찰도 단속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종암경찰서 여성청소년계의 한 관계자는“저녁9시부터 12시까지 1조를, 새벽 12시부터 3시까지 1조를 교대로 투입해 미아리 주변을 순찰하고 있어 요즘 미아리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일부 포주들은 이 같은 변화를 ‘연례 행사’ 정도로 폄하하는 분위기다. 미아리의 한 포주는 “재개발 이야기는 이미 80년대부터 있었다”며 “정권 초기인 만큼 반짝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어질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당수 업주들은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입장이다. 비록 ‘반짝쇼’라고는 해도 하루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게 이들의 한목소리다. 이곳에서 만난 한 업주는 “손님들이 겁을 먹고 들어오지를 않는다”며 “이 상태로 가다가는 개발도 되기 전에 일대가 쑥대밭이 되겠다”고 볼멘 소리를 낸다.

수에 밝은 일부 업주들의 경우 ‘아웃소싱’ 개념을 도입해 경쟁력 고취에 나섰다. 종전까지만 해도 윤락녀들은 포주와 계약을 한 후, 업소에 갇히다시피 한 상태에서 매춘을 강요 당했다.

그러나 경기가 안좋아지면서 아가씨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자 궁여지책으로 프리랜서 윤락녀를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은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손님이 있을 때만 불려 나온다. 화대는 보통 업주와 윤락녀가 6대4 비율로 나눠 갖는다.

이중에는 10대 후반의 여성이나 20대 초반의 대학생들도 상당수 끼어있다는 게 포주들의 귀띔. 한 포주는 “무분별한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해 빚더미에 오른 학생들이 마지막 비상구로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보통 2~3개월 단위로 계약해 일을 하다가 빚을 갚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빅3’는 아니지만 서울이나 수도권 일대 대표적 윤락가들도 잇따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미아리, 청량리, 용산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 환락가로 꼽히는 서울시청 일대 북창동이 대표적인 예. 이곳은 최근 검찰로부터 ‘클린존’(Clean Zone)으로 지정,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경기 북부의 대표적 윤락가인 파주 용주골도 검찰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용의자 조모씨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검찰이 대대적인 ‘보복 사정’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검찰에 구속된 용주골 관계자만 10여명에 달한다.


세일러 복 통일 등 차별화로 성업

사정이 이렇자 수도권 인근 윤락가들도 바짝 긴장했다. 언제, 어디서 자신들을 상대로 목을 조여올 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차별화를 시도하는 윤락가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 22일 저녁 11시 성남시 중원구 중동 1200~1300번지 일대 속칭 ‘여관골목’. 붉은빛의 네온 아래로 교복을 입은 여성들이 지나가는 취객을 유혹한다. 간호사복이나 백화점 도우미복을 한 윤락녀들도 자주 눈에 띠었다. 마치 놀이공원의 화려한 가장행렬을 보는 듯 하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세일러복’으로 불리는 교복 차림. 이곳에서 만난 한 포주는 “손님들이 교복을 좋아하기 때문에 교복 차림의 아가씨들이 많다”며 “아가씨들도 교복을 입으면 나이가 어려보이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한 두벌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간호사복을 선호하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는 귀띔이다.

이같은 차별화 전략 때문일까. 폭탄을 맞은 것처럼 폐허가 된 미아리 등과 달리 이곳은 활기가 넘친다. 손님과 업주간 다툼도 자주 일어난다.

성남남부경찰서 중동파출소 정영기 경사는 “손님과 업주간에 벌어진 술값 시비로 인한 출동이 가장 잦다”며 “일부 윤락가에 대한 개발로 인한 불안심리도 있지만 특화된 서비스가 취객들의 발길을 부채질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이미 이곳이 한번쯤 들러보는 코스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서점이나 가판에서 판매하는 안내도에 중동 여관골목이 버젓이 가 볼만한 곳으로 소개될 정도다.

최근 새롭게 오픈한 업소도 10여개에 이른다. 정 경사에 따르면 중동 여관 골목은 크게 윗 골목과 아랫 골목으로 나뉜다.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유흥업소만 300여개가 넘는다. 그러나 ‘윤락과의 전쟁’을 이기지 못한 업주들이 넘어오면서 최근 10여개 정도의 업소가 신규 오픈했다.

존폐 위기에 빠지면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윤락가. 살아 남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지 눈길이 쏠린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2003/02/0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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