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 개그펀치] "노무현·노통장 동시출연"

애비가 원고를 써서 돈을 벌어다가 저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걸 아는지 10살 먹은 아들놈은 기특하게도 개그 콘서트의 열혈팬이다. 애비가 맡고있는 개그 콘서트의 개그맨들 흉내를 곧잘 내곤 하는 녀석이 요즘 심취하고 있는 유행 트랜드는 ‘맞고요, 맞습니다’ 라는 말투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외모와 말투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개그맨 김상태는 현재 봉숭아 학당에서 ‘노통장’이라는 인물로 등장해 장안에 최대 화제를 뿌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신인으로 알고 있는 김상태는 사실 오랜 시간 동안 무명의 설움을 겪어내며 오늘의 주역이 됐다는 면에서 노무현 당선자와 닮았다.

김상태는 공채 개그맨이지만 제대로 된 배역을 맡지 못해 무려 4년이나 개그 콘서트의 녹화장에서 바람잡이를 했다. 녹화를 시작하기 전에 다소 긴장한 방청객들을 상대로 분위기를 띄우고 선물을 나눠주며 방청객들이 오버해서 웃을 수 있도록 미리미리 양념을 쳐주는 역할이었다.

그랬던 김상태가 노무현 당선자처럼 위기를 하늘이 준 운으로 극복하고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로 변신한 것을 보면 오늘 그의 인기는 어쩌면 단순한 닮은꼴 연기를 넘어선 운명 같기도 하다.

어쩌다 코너 하나를 맡았다가도 단 하루 만에 잘리고 코너가 없어지는 불운을 겪던 김상태가 기회를 잡은 것은 연기자들이 단체로 개그 콘서트를 떠나 프로그램의 존폐 여부를 놓고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였다.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새로운 코너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노무현 당선자의 흉내를 내는 김상태가 눈에 띄었다.

사실 선거를 앞두고 몇몇 개그맨들이 대통령 후보들을 상대로 말투나 제스추어 등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그 중 개그맨 A는 이회창의 당선을 믿고 그를 흉내낸 연습을 하고 있었고 김상태는 노무현이 될 것이라며 그 쪽을 연습하고 있었다.

개그맨 A가 더 얼굴이 알려지고 인기도 있었지만 노무현 당선 후, 김상태 쪽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탈퇴한 개그맨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나는 과감하게 봉숭아 학당에 김상태를 합류시켰다.

녹화 첫날, 김상태가 이마에 굵은 주름 하나를 그려넣고 ‘맞습니다, 맞고요’ 하며 노무현 당선자의 말투를 깔끔하게 처리해내자 녹화장은 그야말로 뒤집어지고 말았다. 4년 동안의 바람잡이 인생을 접고 새로운 스타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원래 다른 코너에도 투입됐던 김상태는 제작진의 회의 끝에 ‘보호’ 차원에서 다른 코너에서 모두 빠지고 오직 봉숭아 학당에서 ‘노통장’ 역할만 맡게 했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부터 기자들이 김상태 주변에 모여들어 취재경쟁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들은 ‘노통장’ 때문에 그제서야 노무현 당선자의 특징적인 말투가 ‘맞습니다, 맞고요’ 라는 걸 깨달았다고 얘기한다.

‘노통장’의 인기몰이에 김이 팍 샜던 개그맨 A는 재검표 소식이 들리자 의기양양해 했다. “두고봐, 재검표해서 판이 뒤집어지면 내가 노통장 밀어내고 봉숭아 학당에 들어갈거야.” 결국 그것은 물거품이 됐다. 대신 요즘 여자 개그맨들이 김상태의 주위에 몰려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다름아닌 권양숙 여사의 닮은꼴을 흉내내서 노통장과 나란히 콤비 플레이를 하겠다는 것인데 두고 볼일이다.

거리에 나가도 누구 하나 알아보는 사람이 없던 김상태가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고 얼마 전에는 아침 프로에 노무현 당선자 부부와 나란히 앉아 대담을 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노무현 당선자는 “열심히 해주세요. ‘노통장’이 인기가 있어야 저도 인기를 얻습니다” 라고 했다는데….

얼마 있으면 대통령 취임식이 다가온다.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노무현 당선자가 취임 축하 겸 해서 봉숭아 학당에 노통장과 쌍둥이 형제로 나란히 등장해 ‘맞습니다, 맞고요’를 외치며 전국민을 뒤집어지게 웃겨주면 어떨까? 그날은 아마 대한민국 방송 사상 전무후무한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입력시간 2003/02/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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