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국회 高壓에 맞선 영화사 暴力

2월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는 웃지 못할 소동이 한바탕 벌어졌다.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제작 한맥영화) 제작팀이 국회내 촬영이 거부되자 주인공 여배우인 예지원씨를 의사당 담을 넘게 해 마지막 장면으로 활용한 것. 영화사는 이를 크레인 카메라에 무사히 담았지만 이후 예씨는 사무처 직원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다.

이 영화는 윤락녀 출신인 여주인공이 ‘금배지’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코미디물. 제작사는 국회 촬영을 허락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회기중이라 국회 일정에 방해가 되고 국회의원의 이미지가 실추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해 이 같은 고육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후 국회 및 예씨의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빗발쳤다. 대부분 국회의 고압적인 행태를 비난하는 글이다.

“범죄행위도 아니고 고작 영화촬영인데 이를 막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 “허구헌날 싸움만 하는 국회의원들의 이미지가 더 이상 실추될 우려가 뭐 있느냐”

영화사의 월담 촬영에 이은 네티즌들의 반발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영화촬영까지 거부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또 국민대표기관의 성지라던가 국회의 권위를 국민이 세워줘야 한다는 식의 고리타분한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공공기관에서 촬영 거부 결정을 내린 일이다.

왜 반대하느냐고, 왜 거부하느냐고 항의하는 것은 자유다. 그렇지만 공공기관의 결정을 무시하면서 강제로 담을 넘는다는 것은 엄연히 법에 위배되는 일이다.

미국도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을 민간에게 개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화촬영도 허락한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 기관이 허용할 때만 가능하다. 그들은 영화촬영이 거부됐다고 해서 월담을 하지는 않는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천황이 사는 궁안에서 영화촬영이 거부됐다고 해서 황궁을 강제로 범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준엄한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자기들이 편을 갈라 싸움만 하는 국회쯤이야 마음대로 해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치 않을까. 아니면 합당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모두 정당화된다고 지레 짐작하지나 않을까.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2/11 16:00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