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대북송금 파문, 어디까지] "5억달러 줄테니 한꺼번에 합의합시다"

현대의 대북사업 독점·정상회담 개최 '패키지 딜' 주장 제기

‘현대의 대북 사업과 남북 정상회담 개최는 한 패키지로 추진됐다?’

현대가 남북특사의 비밀회동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정황 증거가 하나 둘 밝혀지면서 현대의 대북 사업과 남북 정상 회담 개최가 ‘패키지 딜’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재계에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대북 사업을 통해 쌓아 온 송호경 아ㆍ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의 친분 덕에 비밀회담 초기에만 ‘커넥션’을 만들었다는 설이 팽배해 왔던 터다.

그러나 정 회장이 남북 정부의 비밀 회담마다 동석해 깊이 관여했다면 현대의 대북 사업과 정상 회담이 ‘패키지’로 추진됐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북한이 두 가지를 한 묶음으로 보고 현대의 대북 송금을 조건으로 정상 회담 개최에 합의해 주었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추진 특사는 남측에서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 북측에서는 송 아ㆍ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박 전 장관은 3월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송 부위원장을 처음 접촉했고, 3월22일 베이징에서 두 번째 만나 양측의 입장을 통보한 뒤 4월8일 최종적으로 정상회담 합의서에 서명했다.

지금까지 박 전 장관은 “정상 회담과 관련해 남북접촉 시 현대측 관계자는 일절 배석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첫 접촉 시점인 3월17일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이 상하이에 있었고, LA에 머물던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 또한 상하이에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 현대가 깊숙이 관여할 수 있었음을 암시하는 근거다.

특히 정 회장과 이 전 회장은 정상회담 2차 접촉(2000년 3월22일)이 남북 간 입장 차로 진전이 되지 않자 3월 29일 북측 송 부위원장을 접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4월 8일 박 전 장관과 송 부위원장 사이에 정상회담 최종 합의서가 교환되던 당시 배석했던 정황들이 드러남으로써, 현대가 정상회담 성사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음을 암시한다.

또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북한 개발권 대가로 지불키로 했던 금액이 당초 10억 달러 규모였고 계약서를 체결한 시점은 2000년 3월 17일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돼 이 같은 ‘패키지 딜’이 한층 신빙성 있어 보인다.

정 명예회장과 친분이 깊었던 한 경제계원로는 최근 “정회장이 북한개발을 대가로 5억 달러를 주기로 최종 합의한 것은 2000년 3월 17일 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정 명예회장의 말을 빌어 “북측에서 당초 요구한 금액은 10억 달러였으나 밤샘 조율 끝에 5억 달러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당시 계약서를 체결하는 자리에는 북측에서는 송호경, 황 철, 현대측에서 정몽헌, 그리고 박지원 장관이 함께 했다는 것을 정 회장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경제계 원로는 이와함께 “현대상선 2억5,000만 달러, 현대건설 1억5,000만 달러 등 총 4억 달러가 정상회담에 앞서 지급됐고 나머지 1억 달러가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의 북한 계좌로 입금됐다는 말을 정 회장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현대는 이 돈을 북에 보내는 대가로 북한에서는 금강산 개발 등 7대 경협사업의 ‘독점권’을 챙겼고, 남북정상 회담이 성사됨에 따라 정부로부터 3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 지원 등 각종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입력시간 2003/02/1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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