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재벌개혁에 대응카드 뽑나?

전경련 '손길승 호' 출범

“새 정부의 국가전략 및 정책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를 명실상부한 동북아 경제 허브로 육성하는 데 전경련이 싱크 탱크 역할을 맡아야 한다. (중략) 기업 스스로가 투명ㆍ윤리 경영과 노블리스 오블리제(상위층의 도덕적 책임)를 발휘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2월7일 전경련 회장 취임사 중)”

재계의 수장인 전국경제인연합회 제28대 회장에 손길승 SK회장이 취임했다.

손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신정부 정책에 대한 협력과 전경련 회장단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강조했다. 최근 실세 오너 경영인들이 잇따라 회장직을 고사함에 따라, 전문 경영인 출신으로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재계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손 회장을 선택한 것이다.

최근 ‘재벌 개혁’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격앙된 목소리에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나온 선택이라 주목받고 있다.


평사원에서 총수에 오른 재계 마당발

1965년 SK(당시 선경직물) 평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총수에 오른 손 회장은 재계에서 마당발. 폭 넓은 대인관계와 강력한 업무 추진력을 통해 손꼽히는 전문 경영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손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을 강력히 고사했으나,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재계 오너 경영인들과 원로 회장들이 손 회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함에 따라 자의반 타의반 회장직을 수락했다.

그러나 손회장이 취임 이후 넘어야 할 난관은 한 마디로 첩첩 산중이다. 우선 노 대통령 당선자가 천명한 집단소송제, 출자 총액 제한 제도, 상속ㆍ증여세 포괄주의 등 3대 재벌 개혁 과제에 대해 재계가 어떤 카드를 꺼내야 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는 그간 수 차례에 걸쳐 재벌 개혁 정책에 대해 강도 높게 반대 의견을 피력해 오던 터였다.

노 당선자 캠프에서는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등 일부에서는 전경련 개혁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다분히 의식한 듯 취임 일성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을 내세웠다는 점은 평행선으로 달리던 상황에서 손 회장이 새로운 전환점을 찾으려는 강한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민감한 사안인 재벌 개혁 문제 등을 둘러싼 정부와 재계의 줄타기에서 실수하거나 재계 간 이해 관계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할 경우 전경련의 위상은 물론 손 회장 스스로의 입지도 상당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손회장이 취임사에서 자신에 대한 회장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우선적으로 요구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한 때문이다.


‘비 오너 회장’ 우려감도

그러나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과거 전문 경영인이 회장직을 맡은 적이 2번이나 있고 손 회장에 대한 회장단의 절대적 지지가 있기 때문에 손 회장이 전경련을 잘 이끌어나갈 것으로 본다”며 이 같은 우려감을 일축했다.

또 그는 새 정부의 재벌개혁과 관련, “정부측과 협력 관계 위에서 토론을 통해 양측 안을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정부안에 무조건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SK는 손 회장의 전경련 회장 취임에 따른 경영 공백으로 기존 최태원 SK(주) 회장과 함께 이끌어오던 쌍두 체제가 무너지고 원톱 체제의 새로운 경영 변화가 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재벌 개혁의 폭풍우 속에서 과연 손 회장이 표류하는 전경련의 위상을 고쳐 세울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손길승 신임 전경련 회장이 고 최종현 SK선대회장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3/02/18 16:36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