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새 사령탑 움베르투 코엘류

"세계 제1의 압박왕 만들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깨어있겠다” 월드컵 4강 신화에 빛나는 한국축구의 새 사령탑 움베르투 코엘류(53) 감독이 ‘정신력’을 새 화두로 제시했다.

과거 히딩크 감독이 “한국선수들은 체력이 약한 것이 문제”라고 해 우리를 어리둥절케 했던 것을 떠올리면 우리를 또 한 번 당황하게 만드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과거 한국 축구의 장점은 늘 정신력과 체력이었는데 체력에 이어 정신력까지 도마에 오른다면 한국 축구의 정통성이 완전 부정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흥분할 필요가 없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역사 발전은 도전과 응전에 있다고 갈파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월드컵 4강전력으로 앞으로 세계각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할 한국은 이제 그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이 전제돼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결국 그는 한국 축구가 한단계 도약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한국축구를 이끌어 히딩크 전임 감독의 그늘에서 벗어나 또하나의 성공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나는 압박을 좋아한다

코엘류 감독은 자신의 축구를 압박과 스피드, 수비를 기본으로 공간활용을 중시하는 토털 사커라고 다소 길게 규정했다. 그는 압박을 가장 좋아하며 특정 선수에 의존하는 축구 보다는 모두가 뛰는 축구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이 5가지는 히딩크 역시 강조한 점이다. 강한 체력을 앞세워 미드필드부터 압박, 상대 공격의 예봉을 꺾은 것이나 스피디한 이천수 최태욱 등을 활용한 측면돌파, 그리고 원톱으로 상대 공간을 휘저어줄 능력이 있는 설기현을 중용한 것은 모두 일맥 상통한다.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으로 이어지는 스리 백 위에 이영표 김남일 송종국 등 뛰어난 수비 능력에 패스 감각을 갖춘 선수를 배치, 안정감을 추구한 것도 똑같다. 역시 세계적 수준의 명장들은 통하는 것일까.

코엘류식 축구는 언뜻 히딩크와 변별력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가 강조한 ‘정신력’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일정 수준에 도달한 팀이 세계적 수준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마지막 마무리(last touch)’라고 그는 말했다.

히딩크가 짧은 시간에 한국을 급성장시킨 것은 인정하지만 뭔가 세밀한 마무리가 빠져있다는 점을 간접 지적한 것이다. 터키와의 3ㆍ4위전이나 이탈리아, 스페인전을 상기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즉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벌일 수 있도록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인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부족한 것은 개인기일 수도 있고 조직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보완으로 이르는 길로 누구도 겁내지 않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정신력을 제시한 것이다.


좋은 선수는 많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식의 선수 선발을 통해 코엘류호를 출범시킬 것인가. 코엘류는 홍명보나 최진철 등 한국 수비진의 노쇠화에 대해 질문을 받자 “올림픽 팀에 있는 키 185㎝내외의 수비수들은 훌륭했다.

그들은 유럽 선수들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고 말문을 연 뒤 “훌륭한 선수는 많다. 모든 구단을 방문해 그런 선수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은 “팀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세와 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치는 선수”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코엘류는 조만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로부터 추천받은 선수들과 자신이 10개 프로구단을 방문해 발굴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3월중 순 25명 내외의 태극전사 1기 멤버를 꾸려 첫번째 시험대인 콜럼비아와의 평가전(4월1일)을 대비할 예정.

당연히 그때가 되면 그의 선호도는 자연히 알려지겠지만 일단 그는 장신에 몸싸움이 뛰어난 수비수들과 체력을 앞세워 압박에 충실한 미드필드진, 정확한 슈팅력을 갖춘 공격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엘류는 이미 기술위원회에 자질 있는 50명의 선수명단과 부상전력, 그들의 정확한(골 수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서 어떻게 골을 넣어는 지 등을 포함하는) 골기록 등을 알려달라고 말해 이 같은 추측을 가능케 했다.


목표는 계약연장이다

코엘류는 기자회견장에서 “2004년 아시안컵까지 1년6개월은 코엘류식 축구를 구사하기에 너무 짧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축구는 제한된 여건에서 좋은 결과를 이뤄내는 경기다.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그리고 그는 “아시안컵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축구협회로부터 ‘계약을 연장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라는 요청을 하게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축구는 결과가 좋아야 모든 것이 좋은 경기”라고 뼈있는 한마디를 놓치지 않을 만큼 그는 자신의 입지가 2004년 7월 중국에서 있을 아시안컵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승’임을 그는 아울러 알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 같은 자신은 그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에서 드러난다. 그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월드컵경기장, 파주NFC(국가대표훈련장)를 방문한 자리서 잔디를 만져보고 인터뷰실 샤워실 휴게실 숙소 등을 모두 둘러보는 치밀함을 과시했다.

앞서 대표 후보군의 상세한 기록과 10개 구단 모두 방문 등을 요구, 한차례 놀란 협회 관계자들은 앞으로 코엘류가 어떤 요구사항을 새로 제시할 지 몰라 긴장해야 할 판이다.

코엘류는 NFC를 방문한 자리서 “NFC의 시설이 정말 완벽한데 놀랐다”면서 “이제는 내가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 자신감을 보였다.


히딩크와 비교해 달라

한일월드컵 4강신화로 기적을 이뤄내 히딩크의 업적은 후임자에게는 크나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재 기술고문으로 대한축구협회와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히딩크 감독은 2004년 6월 이후 국가대표 감독 우선협상권까지 보장받은 상태라 코엘류로서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는 “오랜기간 사람들은 나를 히딩크와 비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스타일대로 밀고 나갈 것이다. 히딩크와 비교, 분석해 달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다 검토하고 계약했다는 말로 여러가지가 부담스럽고 두려웠다면 이 자리를 스스로 찾아 올라왔겠냐는 반문이었다.

현역때 포르투갈을 빛낸 수비수 출신에다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협회 기술위원장을 역임했던 코엘류는 일단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넘어야 할 산은 지금부터다. 한국의 프로지도자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며 경기장을 쫓아다녀야 하고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히딩크와의 만남을 통해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한다. 대표팀 운영에 전권을 행사한 히딩크 처럼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감독이 돼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누구와도 대화할 것이다. 그러나 결정은 감독이 내릴 것이다”는 말로 원칙을 잃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범구기자

입력시간 2003/02/19 13:42


이범구 gogu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