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공식 초청 국내 1호 가수가 된 동요포크가수 이성원

통기타 동요로 말레이지아 꿈의 무대에 서다

지난해 말 한국 대중 가수로는 처음으로 김수철이 UN본부의 기념식 무대에 초청됐다. 86 아시안게임, 88올림픽, 2002한일 월드컵 등을 통해 국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온 그가 ‘전자기타 산조’라는 대중 음악 어법으로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국악의 세계를 선보여 "한국 대중음악의 또 다른 지평을 외국에 알렸다"는 호평을 이끌어 냈다.

그 감동이 채 가시지도 않은 지난 1월 말. 이번에는 국악을 통기타에 담은 이성원의 공연이 동남아에서 열렸다.

‘80년대 3대 언더그라운드 포크 가수’로 불리는 이성원은 말레이시아 왕실이 지원하는 국제문화재단 SGM의 공식 초청으로 수도 콸라룸프르의 유일한 예술극장 이스타나 부타야에서 1월 17일부터 22일까지 5일 동안 두 차례공연을 가졌다. 한국의 대중가수가 공식 초청을 받고 말레이시아 최고의 무대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류 열풍의 주역 안재욱이나 국민가수 조용필에 비한다면 차라리 무명에 가까운 이성원이 아시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국제적 문화재단 SGM(Soka Gakkai Malaysia)의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말레이시아 최고의 예술극장 '이스타나 부타야'는 클래식과 세계 유수의 뮤지컬 그리고 품격 높은 3세계 문화공연을 주로 소개, 우리의 세종문화회관과 비슷한 위상의 공연장이다. 현지의 대중음악인들조차 "이 무대에 한번 서 보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할 만큼 꿈의 무대이다.


타국서 인정 받은 언더 포크 가수

비록 이성원이 김두수, 곽성삼과 더불어 소위 80년대 3대 언더포크가수로 가요 마니아들의 추앙을 받고 동요 포크 가수로서 대중의 사랑을 제법 받고 있긴 하지만 '말레이시아 최고의 무대에 초청 받은 한국대중가수 1호'로 기록된 것은 의외다.

하지만 SGM관계자들은 "국적이 분명치 않는 저급 대중음악보다는 아시아 각 국의 고유의 문화와 정신을 존중하고 나아가 아시아의 문화교류를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한국의 유명가수들 보다 국악을 모던포크라는 대중음악어법에 담아온 이성원의 가락이 진정한 한국대중음악으로 받아들여 진 것이다.

외롭게 한국 포크의 명맥?이어오며 돈과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노래꾼 이성원은 오히려 외국에서 인정을 받은 셈이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은 박수를 보내지만 한편으론 부끄러운 우리 대중가요계의 자화상을 보는 듯 씁쓸하기만 하다.

금년 들어 말레이시아의 첫 외국인 초청 공연으로 기록된 "Korea Youth Recorder Concert". 이성원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 58명으로 구성된 한국 청소년 리코더 합주단과 함께 초청을 받았다.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몇 년 전부터 민간문화사절단으로 스위스, 헝가리, 태국, 일본등 유럽과 아시아를 돌며 한국의 문화를 알려온 한국 청소년 리코더 합주단의 공로 덕분이다. 이들의 명성을 전해들은 SGM문화재단 관계자들이 말레이시아 문화부 장관의 허락을 얻어낸 것.

1년 전부터 이 공연을 추진해온 합주단의 지휘자 이재만씨는 이성원 음악의 열렬한 지원자. 그는 "이성원의 음악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또한 그의 동요는 어린이보다 어른들이 다시 한번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음악에 매료되었기에 말레이시아 공연을 추진하면서 그의 음악을 소개했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작년에 이성원이 두 번째 동요 음반을 작업할 때 이루어졌다. 이성원의 노래를 접하고 반했던 지휘자 이재만씨가 그의 녹음실로 찾아가 리코더 연주를 해주면서 두 사람은 서로 팬이 되었다.

이후 서로가 공연을 할 때마다 특별 게스트로 초청을 하면서 음악적인 연결고리를 이어왔다. 이성원은 "작년의 한국 청소년 리코더 합주단의 양평, 수원,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공연부터 올해 건국대에서 치른 정기연주회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를 해왔다"고 밝힌다.


폭우 속 감동의 무대

이스타나 부타야의 1천 5백석은 두 차례 공연 모두 만원사례를 이뤘다.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의 현지 관객들이 몰렸다. 이례적으로 말레이시아 국영방송인 TV3에서 이들의 공연 안내방송을 몇 주전부터 홍보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공연 첫 날 궂은 날씨에 비까지 억수처럼 쏟아졌다. 공연장에 도착한 이성원은 차에서 내린 곳부터 공연장까지 20여m 길에서 현지인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감동했다.

"초청한 공연단이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 숲을 만들어준 현지인들 사이를 지나면서 너무도 정성스런 대접과 친절함에 감격스러웠다"고 이성원은 감회에 젖는다. 공연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을 때 현지 아가씨 몇 명이 문밖에서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기웃거렸다. 연습을 멈추고 사인을 해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더니 무릎을 끓고 노래를 경청하는 모습에 이성원이 오히려 민망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한국 전통가락에 기초한 이성원의 맑은 목소리와 통기타 가락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까바바이"라는 말레이시아 말로 인사를 건네 친근감을 안긴 그는 30여분동안 '군밤타령'과 창작곡' 보아라 수야' 그리고 '휘모리''등 개량 민요와 즉흥곡 '원 리틀 인디언' 등을 불렀다.

현지 관객들은 싱겁게 불러본 즉흥곡들을 특히 좋아했다. "중국계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군밤타령'을 부를 때는 나중에 함께 따라 불러 너무 기분이 좋았다. 우리 가락은 세계적으로 통하는 음악임을 처음 느꼈다"

공연 후 이성원은 앵콜 세례를 받아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오블라다 오블라디' 등 그들에게 친숙한 외국 히트 팝송을 들려주었다. 흥겨운 싱어롱 한마당처럼 모든 관객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성원과 지휘자 이재만은 1천 여명의 사인 공세를 받았다. 새로운 한국 가락에 감동한 모든 관객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장사진을 이룬 것이다. 20여분 간 사인공세가 지속될 만큼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국내로 이어진 감동의 물결

SGM관계자들은 "올 해 첫 이벤트로 꾸며진 무대가 너무도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한국 가수로는 이성원씨가 처음인데 너무 음악이 훌륭해 다시 한번 초청하고 싶다"며 만족감을 전해왔다. 실제로 SGM문화재단 고위관계자들은 공항까지 이례적으로 따라와 극진한 환송을 했다.

이성원은 "어제 저녁의 공연을 하루만에 사진첩으로 만들어 전해주는 정성인 인상적이었다“며 “우리 노래를 너무 좋아해 마치 한국에서 공연을 하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편안했다"고 말했다. 이성원은 SGM측으로부터 재 초청 의사뿐 아니라 인근 브루나이 왕국의 초청 의사까지 전달받고 귀국했다. 그는 한국대중음악을 말레이시아에 전파하는 민간 음악전도사 역할을 한 것이다.

귀국 후 이성원은 곧바로 KBS 제1 FM의 신년 첫 국악공연 무대 <새해에 열어보는 국악신세계>무대에 초청 받았다. 공연장인 호암아트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그의 국악포크와 동요. 민요 가락에 매료되며 사인공세와 함께 "음반을 꼭 사서 듣겠다"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이 무대에 선 이성원은 특별히 긴장하고 있었다. 존경하는 선배 포크가수 김의철씨가 참관을 왔기 때문. 양희은의 스승으로 1970년대의 명 포크곡 ‘저 하늘에 구름따라’를 지은 그는 공연 후 이성원을 만나 "프로다운 좋은 공연이었다. 앞으로도 우리 포크의 감동을 남겨달라"며 격려했다.

어린 시절부터 김의철의 음악세계와 순수한 정신을 존경해온 이성원은 "오늘 한국 포크의 정신인 김의철 선생님과 만나 음악적 교감을 나누니 더없이 행복하다. 금년엔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삼청동의 한 식당에 자리한 이성원은 김의철곡 '저하늘에 구름따라'를 즉흥적으로 김의철과 함께 불렀다.

범상치 않은 두 사람의 멋진 화음이 식당에 울려 퍼지자 시끌벅적하던 식당은 어느덧 적막감이 감돌았다. 노래가 끝나자 손님들은 힘찬 박수로 답례를 했다. 상상하지 못한 즉흥적인 무대였다. 이성원은 "김의철 선배님과 함께 음악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자 한국 가락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김의철은 "우리의 포크정신을 잃지 않은 이성원씨 같은 후배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음악을 남겨야 한다"고 격려했다.

세계 최초로 클래식 포크를 발표했던 김의철은 어둡고 저항적인 포크 곡들로 군부정권의 요주의 감시를 받고 암울한 1970-80년대를 살아야 했던 비운의 포크가수이다.

그의 노래는 이 땅에서보다는 독일과 미국 등 외국에서 오히려 환영을 받았었다. 이성원 또한 국내에서는 음악 능력에 걸맞지 않는 푸대접을 받아오다 이번에 말레이시아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니 닮은 꼴 가수들인 셈이다.

과연 이 땅에서 진지하게 우리의 가락을 노래하는 것은 대중가수에겐 천형일까! 포크의 정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음악 세계를 묵묵히 걸어 온 두 사람의 만남을 보며, 외국 곡을 표절한 히트곡이 판치는 작금의 가요계에서 진정한 우리 포크 가락의 르네상스를 꿈꿔보는 것은 성급한 기대일까.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2/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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