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心 공동체식 정부 될라"

노무현식 깜짝인사, 내부선 불만

노무현 정권에 참여할 참모진의 면면이 드러나면서 기대와 우려가 극명하게 교차되고 있다. 노 당선자와 뜻을 같이하는 새로운 인사들이 이전 경력과 상관없이 주요 보직에 속속 발탁되자 일각에서는 차기 정부가 추진할 개혁작업의 적임자들이 포진됐다고 환영하는 반면, 기존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깜짝인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는 이도 나오고 있다.

노 당선자 측의 협소한 ‘인재 풀’은 이전부터 예견됐던 일. 이에 노 당선자 진영에서는 구 정권에서 몸담았던 낡은 인사가 아닌 참신한 인사들을 각계에서 추천받아 요직에 기용하겠다는 원칙을 누누이 밝혀왔다. 여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노 정권의 개혁성에 동참하는 인사라면 누구라도 중용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그간의 인선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먼저 새 정권의 총리내정자는 유신정권에서 5ㆍ6공 및 YSㆍDJ 정권에서 핵심 관료를 지낸 구 정치인으로 정해졌고, 물망에 오른 각 부처의 장관 후보군은 대다수가 전 정권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인물들이 대다수이다. 노 당선자의 개혁성과는 조금 차이가 난다.

이어 청와대 참모진의 인선은 파격적이다 못해 엉뚱하기까지 하다. 노 당선자와 뜻을 같이하는 인사를 중시하겠다고 했지만 새 비서진에는 노 당선자의 뜻을 고사하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인물이 포함됐다.

그러니 노 당선자 진영의 내부에서부터 불만이 싹트는 것은 당연하다. 인수위에서 맹렬히 활동하며 새 정부의 근간을 세우려 했던 인수위원들은 현업 복귀가 대다수이고 당이나 선대위 등에서 노 당선자를 도왔던 인사들도 한 켠에 비켜서 있다. 그 자리에는 이전 정권의 핵심 관료와 사회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무명 인사 및 오랜 가신급 인물로 채워지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들도 앞에서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잔뜩 찡그린 표정들이다. 또 법무장관의 서열파괴 인사원칙이 알려지면서 일선 검사들이 반대의견을 모으는 등 곳곳에서 인사와 관련한 파열음이 생기고 있다. 어째 첫 단추부터 잘 꿰어지지 않는 것 같다.


盧 당선자, “이념적 스펙트럼이 같아야…”

노 당선자는 1월27일 대선 후 처음 방문한 대구지역 토론회에서 자신의 인사원칙을 밝혔다. 먼저 ▲ 뜻이 맞아야 하고 ▲ 편중인사는 지양하되 ▲ 공개인사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노 당선자는 “정부 안에 서로 의견이 다르고 이해 기반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정책입안 때부터 손발이 맞지 않고 이견만 생긴다”고 말했다.

이념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적당히 섞는 ‘무난한 정부’가 아닌 생각이 같은 인사들을 묶는 ‘일심동체식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노 당선자는 또 편중인사 배제를 분명히 했다. 영남출신으로 호남당 후보로 당선된 만큼 지역을 떠나 인재들을 충분히 활용하는 적재적소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연극인 손 숙의 환경부 장관 발탁인사를 실패로 규정하면서 공개인사를 천명하고, 지명도나 개인적 인연에 얽매이지 않는 새 사람을 발굴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론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노 당선자가 밝힌 이런 인사원칙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되는 느낌이다.

먼저 고 건 총리 내정자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 후보로 거명되는 전 정권 인사들은 노 당선자가 줄곧 강조해온 이념적 스펙트럼의 동일성과는 전혀 거리가 있다. 오히려 정 반대되는 성향의 인사들이다.

경제부총리 1순위로 거명되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6공시절 핵심 참모였고, 장관 후보로 거명되는 한이헌 강봉균 한승수 이홍구씨 등은 지난 정권시절 장관과 부총리, 국무총리까지 올랐던 인물들.

구 시대 낡은 정치 청산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출범된 신 정권의 모토와는 맞지가 않는다. 굳이 선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노 당선자가 밝힌 인사 원칙의 제1 안건인 ‘일심동체식 정부’와도 크게 어긋나 있다.


“노 당선자의 정치철학에 대해 아는 바 없다”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에 변호사 출신의 386세대 박주현씨가 발탁된 데 이어 2월10일 발표된 홍보수석과 대변인에는 MBC 기자 출신인 이해성씨와 KBS 아나운서 출신의 송경희씨가 발탁됐다. 이튿날에는 SBS 앵커를 지낸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의 딸인 이지현씨가 외신 담당 부대변인으로 내정됐다.

이들 새 멤버는 인수위는 물론 노 당선자 측근들도 예측하지 못했던 인물들. 발탁 배경도 핵심 인사들조차 “전혀 의외”라거나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발탁자들은 노 당선자와 깊은 교감을 유지해온 인물들이거나 노 당선자의 정치 노선을 이전부터 지향했던 인사들일까. 그래서 노 당선자가 운운한 ‘이념적 스펙트럼’이란 인사 원칙에 부합되는 인물들을 고른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송경희 대변인 내정자는 임명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노 당선자의 국정철학 관련 질문에 대해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아직 당선자를 만나지 못해… 다음에 말하겠다”며 발탁배경에 대해서는 “나도 의외”라고 답한 뒤 쫓기듯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이해성 홍보수석 내정자의 경우에도 발표 여부가 수 차례 번복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이 내정자를 추천한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는 “(노 당선자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내정자의 언론관과 문제의식이 발탁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노 당선자의 ‘입’을 대신할 세 명의 내정자는 모두 공중파 방송 3사 출신. 이들 ‘트로이카’ 인선에 대해서는 신문에 대한 노 당선자의 뿌리깊은 불신이 작용한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러다 보니 이들을 떠올리면 이념적 동일체보다는 “노 당선자의 정치 철학을 이제부터 공부하겠다”는 말부터 생각날 뿐이다.

이렇게 노 당선자의 인사원칙이 흔들리자 한 인수위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진 인사의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노 당선자의 인사원칙에 입각한 다면평가제를 만들었는데, 비서진 인선이 먼저 이뤄지면 어떡하느냐”며 “반영하지도 않을 다면평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불평하고 있다.

다른 인수위 관계자는 이를 빗대 “청와대에 들어가려면 노 당선자의 핵심 측근들과 친분이 두텁거나 아니면 초야에서 풀을 뜯어먹다가 와야 한다”고 자조하는 실정이다. 노 당선자의 부산상고 1년 후배이자 독서실 총무 출신으로 노 당선자의 변호사 사무실과 부산 지구당의 사무국장 등으로 일해온 최도술씨를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내정한 것도 이런 불만을 부채질하고 있다.


‘깜짝 인사’는 누구의 작품?

청와대 박주현 국민참여수석과 이해성 홍보수석, 송경희 대변인 및 이지현 외신담당 부대변인으로 이어지는 노무현식 깜짝 인사는 어느 선에서 결정된 것인가. 일반인들에겐 낯설기만 한 이들의 발탁은 신계륜 인사특보와 이광재 비서실 기획팀장 라인의 작품이란 설이 일반적이다.

신 특보는 후보 비서실장 때부터 줄곧 노 당선자의 신뢰를 쌓아 왔고 이 팀장은 88년 노 당선자의 국회 보좌관으로 인연을 맺은 뒤 계속 정치적 노선을 함께 한 ‘386 측근’ 중 대표적 인물. 이들 신 특보와 이 팀장 콤비에 의해 신 정권 인사가 좌지우지되고 있는 설이 파다하다.

이들 콤비는 인사자료의 취합과 대상자 면담에서부터 인사를 위한 전문가 집단에 대한 여론조사까지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국세청 및 금감원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도 신 특보의 지시에 의해 이 팀장이 실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당선자도 이들의 인선 결정에 대해 “그 쪽에서 했다면…”이라면서 상당한 신뢰를 표시하고 있다고 한다.

인사는 만사(萬事)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권도 ‘인사가 망사(亡事) 수준’이란 비난을 면한 적이 없었다. 잘못된 인사는 모든 것을 그르친다. 얼마 전 노 당선자의 특명을 받은 대미특사들도 “주한미군 철수를 바라는 젊은이들도 있다”라는 실언을 해 미국 언론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대러특사로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조순형 의원도 북핵 문제와 관련한 어떤 성과를 보이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이런 결과는 미국과 러시아에 정통한 적임자 대신 노 당선자의 측근 정치인이 나섰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는 이들이 많다.

한나라당은 새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 인선과 관련한 논평을 내고 “노 당선자가 측근 중심, 이념편식 인사를 고집한다면 인사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쯤으로 치부한다 해도 분명 신 체제 인사에 우려를 갖는 이는 많다. 새 정부의 일선 사단장 격인 각 부처 장관 인선이 2월 말 정부 출범과 함께 단행될 예정이다. 노 당선자가 천명한 인사원칙이 어느 정도 지켜졌으면 한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2/25 16:01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