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위기 지방대학] 선착순 모집에 묻지만 선발 중

학생 구걸 등 살아남기 몸부림, 성적·자격 불문 '무조건 합격'

‘선착순 모집, 전원 개인휴대단말기(PDA) 무료 지급, 해외 연수 기회 제공….’

다단계 판매 회원 모집 광고도 지방 도시의 아파트 분양 광고도 아니다. 요즘 일간지 광고면을 온통 도배하고 있는 대학 신입생 추가 모집 광고 중 하나다.

“설마, 선착순까지…”라며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요즘 대학의 실상이 이렇다.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홍보를 하는 곳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주변에 학생을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대학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들 대학은 시험 성적도, 자격도, 나이도 묻지 않는다. 그나마도 말이 좋아 선착순이지, 그저 대학에 입학하겠다고 하는 학생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허리를 굽히고 “어서 오십쇼” 라고 하는 형편이다. 살아 남기 경쟁에 나선 대학이 학생을 구걸하는 시대, 이른바 ‘선착순 대학’ 시대다.


등록만 하면 당일 합격에 장학금은 기본

한창 요란하게 신입생 추가 모집 광고를 하고 있는 호남 광주의 2~3년제 전문대 조선이공대학. 입학 담당 직원은 “정시 모집이 끝났고 추가 모집 기간이기 때문에 선착순”이라며 “지금 등록하면 당일 바로 합격 처리해 준다”고 했다. 내신 성적이 얼마이건,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수능 시험을 보지 않았더라도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만 제출하면 된다. 몇몇 인기 높은 극소수 학과를 제외하고는 ‘선착순 모집’에 모두 해당된다. 기계과 국방특수기술과 전기과 광전자정보학부 토목건설과 사회복지경영과 디자인학부….

신입생 특전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입학금 전액인 52만9,000원을 모든 신입생에게 장학금 조로 지급하고, 원거리 신입생에게는 1년간 원룸 숙소를 무료로 제공한다. 그것도 모자라 만약 본인이 직접 하숙을 하겠다고 하면 매월 20만원씩 생활보조금도 지급한다. 방학 기간 중에 어학 연수자로 선정되면 경비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것은 덤이다.

3월부터 전북과학대학으로 교명이 바뀌는 전북 정읍의 정인대학. 교육인적자원부 등에서 특성화 우수대학, 학과 평가 최우수대학, 기술지도대학, 창업보육센터 운영 대학으로 선정됐다는 곳이다. 이쯤 되면 학생들의 관심도 높을 법 하지만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점이 있다면 ‘선착순’이라는 낯 뜨거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정도일까. 10일부터 시작된 원서 접수 기간은 대부분의 지방 대학들이 그렇듯 ‘충원 시 까지’ 다. 정원이 모두 찰 때까지 사실상 선착순으로 모집한다는 의미였다.

“수능 점수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추가 모집이란 게 정원이 미달됐기 때문에 하는 거잖아요. 수능 점수가 없으시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내셔도 됩니다.” 에두른 표현이었지만 입학 담당 직원의 얘기도 대동소이하다. 어김없이 신입생 특전도 있다. “입학 장학금 형태로 신입생 전원에게 40만원 정도를 준다”는 것이 학교측 설명이다.


‘학점 경품’까지 내건 대학

대학들이 내걸고 있는 경품은 대형 백화점들의 경품 행사를 방불케 한다. 올해 설립된 충남 논산 금강대는 첫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3박4일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기로 했다.

물론 경비 전액은 학교측 부담이다. 신입생 전원에게 입학금 전액을 지급하고 기숙사를 1년간 무료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대전 지역 전문대인 혜천대는 ‘희망하는 신입생에 한해서’ 50만원 상당의 PDA를 무료로 제공키로 했다.

“특정 이동통신 번호만 사용할 수 있고 이용료 부담이 커서 신청 학생이 아주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학교측 주장이지만, 경품에 현혹돼 즉흥적으로 입학 등록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부산 동명대는 학기 초 1학년들을 대상으로 계열별로 18명씩 100여명에게 최신형 휴대전화를 지급하고 신형 마티즈 승용차 추첨을 실시하는 이벤트도 준비중이다.

아예 ‘학점’을 경품(?)으로 내건 학교도 있다. 충남 아산 호서대학교는 ‘학점 인증제’ 과정을 개설하고 “학점을 쉽게 딸 수 있다”며 학생들을 유혹한다. 출석 점수의 비중을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결석만 하지 않으면 학점을 받을 수 있다”고 당당히 홍보한다.

학교측은 “실력에 상관없이 출석만 꼬박꼬박하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모두 치르기만 하면 최소 C학점, 평균적으로 B학점은 보장된다”고 설명한다. “다른 대학에 편입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모든 편의 제공, 교수들은 세일즈맨

대학들의 ‘학생 모시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투철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하고 호텔이나 식당처럼 “고객(학생)을 위해서 라면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나선다.

원서 송달과 접수는 물론 수험생용 버스까지 무료로 운행하고 교통비를 보조해주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서비스 유형. 혹시 번거롭다는 이유로 입학을 포기할까 봐 일단 전화나 홈페이지로 합격 처리까지 끝낸 뒤 추후에 필요 서류를 접수하는 대학이 상당수다. 수도권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울 인근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교육장을 신설하거나 서울 주요 대학의 강의실을 임시로 빌려 운영하기도 한다.

상아탑에서 연구와 후진 양성에 매진해야 할 교수들은 세일즈맨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지난해 초 경북의 한 사립대가 90여명의 교수에게 각각 고등학교 15~20곳을 할당했다고 해서 물의를 빚었지만, 요즘 이 정도는 별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학 신입생 모집 광고에는 버젓이 담당 교수들의 휴대전화 연락처가 적혀 있고, 지하철 구내 등에 설치된 원서 접수 창구에서는 열심히 홍보 전단을 돌리는 교수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20%대 등록률, 50%대 휴학률

1980년까지만 해도 96개였던 우리나라 대학은 현재 194개로 20여년동안 두 배 이상 늘었다. 4년제 대학만 그렇다. 대학생 수는 40만명에서 6배에 가까운 230여만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2~3년제 전문대학도 158개에 달한다.

올해 대입 정원 73만여명, 수능 수험생 65만여명의 ‘대학 정원 역전 시대’에 접어든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10일 4년제 대학 1차 등록 마감 결과는 참담했다. 지방 대학을 중심으로 등록률이 50%에도 못 미치는 대학이 속출했다. 충북 극동대는 모집 정원 865명 중 36.2%인 310명만이 등록했고, 제주 탐라대도 324명의 합격자 가운데 35.8%인 116명만이 등록 절차를 마쳤다. 그나마 4년제 대학들은 형편이 나은 편. 2~3년제 전문대학 중 최종 등록률이 20~30%에 머무는 경우가 허다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류, 3류 대학들의 고통은 신입생 유치에 그치지 않는다. ‘제2의 대학 입시’로 불리며 대학생들의 연쇄 대이동이 이뤄지는 편입은 또 하나의 적이다. 지방 대학의 학기 당 평균 휴학률은 무려 50% 가량. 전북 완주군 한일장신대 정종원 입학과장은 “편입으로 빠져나가는 인원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아마도 대부분 지방 대학의 휴학 인원 중 절반 가량은 편입 준비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대학은 편입 명단과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 재학증명서와 성적증명서 자동발급기 전원을 아예 꺼버린 채 본부 직원들이 손으로 일일이 서류를 떼 주기도 한다”고 했다.


대학 구조조정 본격화하나

‘학생수 감소 → 재정 고갈 →교수ㆍ교직원 대우 악화 →학교 위상 하락’의 악순환은 우리 사회 대학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정경제부 관계자가 “기업 금융 공공 노사 등 4대 부문 구조조정에 이어 다음 구조조정은 대학”이라고 단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대학 구조 조정의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학교법인 성심학원은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2년제 전문대 성심외국어대를 폐교하는 대신 같은 재단인 경남 양산시 웅상읍에 있는 4년제 영산대에 통합시켰다.

이에 따라 성심외국어대는 올해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고 기존 신입생 정원 2,700명 중 500명만 영산대의 신입생 정원에 포함시켰다.

또 국립 전문대인 공주문화대는 지난해 3월 국립 4년제인 공주대에 통폐합됨에따라 입학 정원 1,000명을 절반으로 줄였다. 교육인적자원부 대학행정지원과 학교 설립 담당 장석환 주사는 “학교의 재정 상태가 아무리 좋지 않아도 통보를 해오지 않으면 부처에서는 정확한 실태를 알 수가 없다”며 “교수 확보율 등에 영향을 미치는 정원을 매년 감축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 등 실제 위기에 봉착한 대학들이 적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광주 동원대학(전문대) 기획실 박종식씨도 “전문대학들의 생사는 향후 6~7년에 달려있다”며 “대학의 3분의 1 가량은 학생들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 구조조정의 길은 아직 요원하다. 인력 정리 등 내부 반발에 밀려 실제 통폐합이 성사되는 경우는 아직 흔치 않은 ‘희귀 사례’에 불과하다.

결국 희생양은 학생이다. 부산 D대 4학년 K군이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짧은 글은 지방대 학생들이 겪고 있는 심적 고통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인성과 학문을 가르친다는 대학교에서 경품으로 학생들을 현혹하는 현실이 슬프다. 그 돈을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쓸 수는 없는 걸까. 지금 울(우리) 학교 현실이 어떤지 학장님 이하 학교 관계자들이 아는지 정말 궁금하다. 지금 정보통신과 졸업반인데 우리 과에 전공을 살려 취업한 친구는 거의 없다. 취직했다는 친구들도 대졸자에게는 너무 낯 뜨거운 직장에 다닌다. 경품을 내걸어서 학생을 더 받으면 뭐하겠나. 현실이 이런데….”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2/25 16:47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