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역사가 평가 할 것이다”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참으로 죄송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제 얼마있지않아 대통령 자리를 떠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2월14일 대국민 담화의 첫 마디다.

눈물이 쏟아질 듯 침통 했다. 그래선지 15일 대보름달은 뜨지 않았다. 그러나 해는 이튿날 밝게 떴다. 그의 햇볕정책은 계속 역사의 지평 뒤에 지고 뜰 것임을 상징하는 듯이.

14일의 담화에 앞서 12일, 김 대통령은 민화협 관계자들과 청와대에서 다과를 가지며 말했다. “나는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고통을 각오했다. 나는 이제 2주 뒤면 물러난다. 역사 속에서 평가 할 것이다. 잘못했다면 잘못한대로 잘했다면 잘한대로 공정하게 평가 받을 것이다.”

이에 대해 곳곳에서 회답이 나왔다. 영국의 BBC 방송은 15일 “한국의 주요 신문들은 김 대통령의 담화가 2억 달러 송금 의혹을 풀어주지 못했고, 실정법 위반 혐의에 대한 시인이 부적절하다고 목소리를 함께 했다”고 분석, 보도 했다.

이 방송은 4대 신문들(중도, 반정부, 친정부적)이 특검제가 그 의혹을 푸는데 가장 적절한 방법 일 것 같다는 방향을 독자들에게 제시했음을 보도 했다.

미국의 상ㆍ하원(외교, 군사, 2004년 예산위원회)에서도 때를 같이해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청문회가 열렸다. 존 엔사인 상원의원(공화ㆍ네바다)은 발언했다. “역사에 따르면 독재자들은 외교에 응하지 않는다. 그들이 대화에 순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들은 힘에 굴복 할뿐이고 그들이 뭔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만 순응한다. 북한의 독재자들이 다시 약속을 깨도록 하는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공화당 하원의원 에드 로이스는 목소리를 높였다.

“개혁할 의도가 전혀 없는 정권에 돈을 주고 튼튼하게 해주면서 그 대가로 안정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정권의 도덕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 해야 한다.” 햇볕정책과 김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 뒷거래에 대한 비판을 점잖게 둘러서 말한 것이다.

2월5일자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은 사설에서 김 대통령을 “가짜 평화 제창자(prophet)”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대북송금을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뇌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방콕에서 발행되는 영자지 ‘아시아 타임스’에 ‘평양 워치’라는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아이던 포스터 카터(영국 리드대학 현대 한국사 수석연구원)는 그의 깔끔한 문체와 20년 가까운 북한 연구를 토대로 반박에 나섰다.

‘모든것을 아는 체 하는 독선주의자들의 무례’(2월8일자)와 ‘왜 햇볕은 달볕(moon shine)과 다른가’(2월14일자)에서 김 대통령의 ‘고통’을 해석했다. 북한이 전술상으로 탁월한 듯하면서 전략상으로는 멍청이라는 전제를 그도 또한 가지고 있음을 밝히면서 였다.

“나는 김대중이 진실한 사람이라 믿고 있다. 비밀스런 접촉이나 협상은 그만이 한 게 아니다.” “핵개발에 대한 책임은 김정일에게 있다. 아직 평양은 핵무장은 안되었다고 본다. 그건 한국과 미국이 햇볕과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포용으로 막을 수 있었다.”

“햇볕정책의 큰 성과는 북과 남이 아직도 적이지만 서로 이제는 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서울은 북한의 제2의 무역 상대이며 금강산에 해마다 50만명의 남쪽 사람이 갔다 온다.” “한반도는 스스로 영원히 폐쇄해 있으려는 고립성과 상호 적대성으로 버텨왔다. 이를 타파 하려는 비전이 필요했고 햇볕은 이를 실천했다. 역사는 그(김대중 대통령)로부터 햇볕은 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이다”고 썼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이런 평가들을 앞으로 한국의 역사가들은 어떻게 볼까.

한국일보에 매주 목요일 ‘쓴소리’ 칼럼을 쓰는 강준만 교수는 작년 11월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를 냈다. 이책에 대해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우리 현대사에서 1970년대는 역사 눈높이를 결정하는 시기다.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과 함께 길을 나서면 1970년대가, 박정희가, 유신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고 평하면서 이 책을 추천했다. 강 교수의 ‘-산책’에는 이런 강 총장이 70년 7ㆍ4 공동성명이 유신을 하기위한 명석 깔기였음을 알고 배신감을 느껴 조선후기 상ㆍ공업사 전공에서 현대사로 연구과제를 바꿨다고 쓰고 있다.

제발 강 교수와 강 총장이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어지러움을 던져주는 ‘김대중 시대’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내려 주기를 바란다. 한국역사는 좋든 싫든 2000년 6월 전후의 햇볕의 의미를 꼭 밝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3/02/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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