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예술을 심한한 史家


■ 샤갈
모니카 봄 두첸 지음/남경태 옮김/한길아트 펴냄

날아다니는 소와 공중에 떠 있는 연인들, 낭만과 환상을 찬미하듯 밝은 색채의 이미지들로 충만한 샤갈의 그림은 푸근하고 소박한 감성을 자극하며 우리에게 다가 온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 이름이 그렇듯 샤갈이라는 화가와 그의 작품은 우리 안에서 이미 소박한 평화의 보편적 기호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은이 두첸은 소박함이라는 외피 속에 계산적으로 숨겨진 진실을 낱낱이 해부한다. 특히 화가 자신이 조장한 소박함의 가식에 관한 한 이 책은 검사 두첸과 피고이자 변호인인 샤갈의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지는 가상의 법정이다.

샤갈은 직관적 창조와 독창성을 말하며 자신을 신비화한다. 반면 두첸은 샤갈을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맥락 속에서 규명해 내려 한다. 두 사람의 대결은 늘 전작을 뛰어넘는 창조라는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화가와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고 사실을 재구성해야 하는 사가(史家)가 펼치는 진검승부다.

독자들은 이 법정에 앉아있는 배심원으로서 샤갈의 변론과 두첸의 심리를 통해 예술가 샤갈의 전모에 대해 판결을 내리기만 하면 된다. 과연 샤갈은 소박한 환상과 환희의 화가였는가, 아니면 소박과 세련, 온건과 오만, 우울과 쾌활 등 모순적인 성격의 복합체였는가.

두첸은 전시회 기획자이면서 20세기 예술 전문강사. 1980년대 후반 소련의 글라스노스트 이후 서구에 소개된 샤갈 관련 시각자료와 문헌을 꼼꼼히 검토, 제대로 된 샤갈을 그려냈다는 평이다.

입력시간 2003/02/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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