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보춘화

'춘란'이라 불리는 봄의 전령사

사람들이 일년 중 가장 간절하게 봄을 그리워하는 시기가 바로 이즈음이 아닐까. 길가 개나리 가지에는 물이 오르는 듯 하고, 화살촉같은 목련의 겨울눈은 부풀기를 시작하여 머지 않은 시기에 꽃봉오리를 선보일 듯 하며, 날씨는 풀릴 듯 풀릴 듯 하면서도 이내 눈발이 흩날리곤 하는 바로 이즈음 말이다.

보춘화(報春花)는 이때가 가장 어울리는 식물이다. 이름에 그대로 나타나듯이 아주 이른 봄, 서둘러 꽃을 피워 봄을 알리기에 그러하다. 봄을 기다리는 성급한 마음에 산을 찾았지만 꽃을 보지 못해 실망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푸른 잎새의 아름다움을 보여줘 마음을 위로 할 줄 아니 이 또한 그러하다.

보춘화라고 하니까 생소한 이름으로 느껴지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터인데, 흔히 사람들이 춘란 혹은 민춘란이라고 부르는 난초의 정식 이름이 바로 보춘화이다. 봄에 피는 대표적인 난초이니 춘란이요, 이상한 변이종만을 찾아다는 사람들에게 잎이, 혹은 꽃잎이 지극히 정상적인 보춘화의 모습이 강조되어 민춘란이라고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꿩밥, 아가다래, 여달래 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보춘화는 우리나라의 남쪽에서 주로 자란다. 특히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따뜻한 곳, 그 가운데에서도 해안이 가까운 곳, 적절히 볕이 드는 숲이 보춘화를 많이 볼 수 있는 자생지이다. 하지만 보춘화의 분포지는 점차 북쪽의 것이 보고되어 지금은 강원도에서 자생하는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상록성이며 줄기는 한 뼘쯤 올라와 꽃을 피우고, 잎은 2배정도 길지만 뒤로 젖혀지며 적절히 휘어져 높이는 비슷해진다. 꽃은 1줄기에 하나씩 달린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야생 난초들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동양인들이 이 같은 특징을 가진 개체를 난초라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꽃이 하나씩 달리는 것은 난(蘭), 한 줄기에 여러 개의 꽃송이가 달리는 것을 혜(蕙)라고 불렀으니 보춘화야 말로 바로 난이 되는 것이다.

보춘화 꽃의 지름은 2~3㎝ 정도. 꽃잎에는 연두빛도 있고, 백색 순판엔 붉은 색 반점이 있다. 타원형의 열매에는 먼지처럼 작은 씨앗이 가득 들어 있다.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닿는 과정에서 워낙 효과적인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다보니, 헤아릴 수 없는 씨앗이 탄생한 것이다. 국수다발 같이 희고 굵은 뿌리는 이 식물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식물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춘화는 분에 키우면서 보는 관상적인 가치 이외에 약으로 쓰기도 한다. 꽃을 차로 다려 마시기도 하고 뿌리나 잎을 쓰기도 한다. 몸의 기운을 다스리고 피를 잘 돌게 하며 눈을 밝게 하는 등 여러 효과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보춘화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일부 불순한 사람들이 동호회를 빙자해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을 보춘화를 짓밟고 다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돈이 되는’특이한 모양의 보춘화를 찾는 데에만 열심인 데 이 과정에서 보통의 자연스런 개체들은 뿌리채 캐내었다가 민춘란이라며 내던져 버린다. 올 봄에는 이 같은 거짓 보춘화 애호가들이 없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2003/02/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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