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위기…총성없는 절약전쟁

이라크전이 불러올 고유가시대에 대비, 기업들 대책 마련

서울 서초동 법원 인근의 S주유소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경제 운전 요령’ 책자를 고객들에게 나눠준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불안감으로 기름값이 급상승하면서 자가 운전자들의 태도도 크게 바뀌었다.

2001년형 소나타를 운전하는 김정유(40ㆍ서울 서초동)씨는 “지난해 이맘 때쯤 같으면 5만원어치를 주유하면 연료 계기판의 빗금이 끝까지 올라갔는데 요즘은 한 칸 밑으로 쳐지는 것을 보고 기름값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실감한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당연히 경제운전의 요령이 필요할 때다.

사례1, 주유소에서 세차를 기다리거나, 차를 세워놓고 사람을 기다릴 때 시동을 끄는 알뜰 절약맨들이 크게 늘었다. 시동을 걸어놓은 채 5분간 정차할 경우 70cc가량의 연료가 소비되고, 1,800cc 승용차를 10분간 공회전하면 8~10km 정도를 갈 휘발유가 허공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례2, 고객들의 주유 습관도 달라졌다. 기름 넣기가 귀찮아서 항상 기름을 가득 채우던 운전자들이 3만~5만원 선에서 멈춘다. 기름통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 일정 부분 남겨놓는 게 절약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동안 이를 실천하기는 힘들었다.

사례3, 휘발류 보다 리터 당 300원 정도 저렴한 ‘세녹스’ 등 자동차 연료첨가제 수요가 늘어났다. ‘세녹스’는 휘발유와 4대6 비율로 섞어 주유하는 것으로 솔벤트와 톨루엔, 메틸알콜 등을 적절하게 혼합한 연료 첨가제다. 이밖에도 차 트렁크 속에 싣고 다니던 짐을 정리하고 타이어의 마모 정도나 점화플러그의 성능 등 차량 부품 관리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많다.


고유가 시대 대기업 살아남기 비상

고유가 시대를 맞아 승용차 강제10부제 위반 과태료 10만원 시대가 열리고 국내 관련 기업들은 일찌감치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삼성과 LG, SK 등 주요 대기업들은 미국과 이라크의 전력차가 현격한 만큼 단기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경제 전반에 미칠 타격이 클 것으로 보고 대비책 마련에 골몰해 있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를 계열사로 가진 SK는 이라크 전 발발이 그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4~6주 이내 전쟁이 조기 종결될 경우 원유수급 타격이 없을 것으로 내다보는 경우가 40~60%였다. 또 전쟁이 6~12주 소요되면서 이라크의 원유 공급시설이 제한적 타격을 입을 경우는 30~40%.

반면 전쟁이 3~6개월 소요되면서 장기화돼 중동유전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경우는 5~10% 선이었다. SK는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국제유가가 20~25달러 선으로 차츰 하락하겠지만 중기전일 경우에는 35달러 이상, 최악의 경우 50달러 안팎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SK는 이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우선 현재 65% 수준인 원유 장기 계약물량의 안정적 확보에 주력하는 한편 중동에서의 수급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서아프리카와 북해, 남미, 아시아 지역 등으로 도입선을 다변화해 대체 원유를 확보해 나갈 방침이다.

이 회사는 또 휴스턴과 런던, 두바이와 싱가포르 등에 위치한 지사망을 풀 가동, 국제 석유시장의 수급 및 유가 동향을 24시간 모니터링해 물량 확보에 차질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LG도 계열사인 LG 칼텍스 정유의 오랜 노하우를 십분 활용, 장기도입물량 확보에 주력하는 한편 원유 구매량 최적화와 원유공급 중단 가능성이 있는 이라크 주변국으로부터의 원유 수입량을 줄이기로 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중이다. LG는 그 동안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온 원유 공급선 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최소의 비용으로 정상적인 원유수급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은 이라크 전 예상 시나리오를 단기전(1개월 전후), 중기전(2~3개월), 장기전(4~6개월)으로 구분하고 시나리오별 대책을 마련했다.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미국의 세계 리더십이 강화되면서 세계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장기전으로 갈 경우 배럴 당 40달러 이상의 고유가로 세계 경기가 침체에 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은 이에 따라 비용절감, 전략적 투자와 함께 경상투자 유보 등의 보수적 경영 방침을 유지하면서 전쟁의 전개방향에 따라 적절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한화는 각사별로 에너지 절감 테스크 포스 팀(TFT)을 구성해 이에 대비중이다. 한화는 한화석유화학과 한화 종합화학, ㈜한화, 한국 종합에너지 등 계열사들에 세이브(절약) 프로그램을 도입, 각종 공정 개선에 나서는 한편 각 사업장 별로 전년 동월 대비 3% 절감을 목표로 에너지 절약 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더욱 바빠진 항공사

항공사들의 위기감은 한층 높다.

대한 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등도 항공유 비축분 확대와 위험 회피 대책 마련 등에 주력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율도 비축기지(최대 85만 배럴 규모)의 비축분을 최대한 확보하고 연간 항공유 소비량의 30% 정도를 유가변동이 있더라도 일정한 가격으로 공급 받는 헤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3월말까지 가동되는 컨틴전시 프로그램을 마련, 기내판매 수입등 부대수입 목표대비 5% 추가달성, 소모성경비 절감, 판촉ㆍ광고선전비 집행유보,비계획 신규투자 금지 등을 추진키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전쟁의 낙관적 시나리오와 비관적 시나리오에 모두 대비해야 한다”며 “지금부터라도 석유 비축량을 늘리고 에너지 절약운동을 펼치며, 기업별로 무리한 확장보다는 선별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전쟁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면서 고유가 시대를 맞아 에너지 절약을 위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다.

고유가 시대의 알뜰 운전법 5題
   

▲ 공기 저항 최소화: 차량이 달릴 때 공기 저항이 높으면 연료 소모량이 늘어난다. 속도가 빨라지면 상대적으로 공기 저항도 높아진다. 또 자동차 외부에 장식물을 부착하거나 차체 밖으로 튀어나온 광폭 타이어를 다는 것도 공기 저항을 많이 받는 요인이 된다. 고속 운전할 때 창문을 닫는 것도 요령. 창문을 열면 공기 저항이 증가해 연료 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 타이어의 적정 공기압 유지: 타이어 공기압이 적정 수준보다 낮으면 그만큼 노면에 닿는 면적이 넓어져 연료 소모량이 많아진다. 전문가들은 타이어 공기압이 적정 수준에 비해 10% 부족하면 연료가 5~10% 정도 더 소모된다고 지적한다. 또 타이어 공기압이 20% 이상 부족하면 차가 시속 130㎞로 질주할 경우 타이어가 파열돼 사고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 급가속과 급제동은 금물: 급출발과 급가속, 급제동, 급 차로 변경, 무리한 앞지르기 등은 사고 위험도 높고 연료 소비량도 많다. 정상적으로 운전할 때에 비해 연비가 20% 이상 떨어진다. 급출발 한 번에 12cc 정도의 연료가 더 소요된다는 통계가 있다. 차로를 급하게 바꾸거나 앞지르기를 자주 하면 그만큼 가속 페달을 세게 밟아야 하므로 연료 소모량이 많아진다.

▲ 트렁크를 가볍게: 자동차는 무게가 무거울수록 연료가 많이 소요된다. 몸이 무거운 사람이 움직일 때 더 힘이 드는 것과 같은 이치. 차의 내부나 트렁크에 불필요한 짐을 싣고 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 10㎏의 짐을 싣고 50㎞를 달리면 50cc의 연료가 더 소모된다.

또 몸무게 80㎏의 성인 1명을 태울 경우 중형차는 5%, 소형차는 10% 정도 연료가 더 소요된다. 기름도 가득 채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름을 많이 채울수록 차는 무거워지고 연료 소비도 많아진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3/02/26 16:00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