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한복판서 '느끼며' 공부하겠다"

늦깍이 대학생 남경필의원, 서민의 삶과 부대끼며 복지정책 체계적으로 연구

늦깍이 대학생이 넘치는 요즘에는 불혹의 나이에 대학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결코 낯설지 않다. 나이 마흔이면 만학이라 이름 붙이기도 쑥스럽다. 그런 사람이 주위에 한 둘이 아닌데 뉴스가 될 턱이 없다.

그러나 그 늦깍이 대학생이 '잘 나가는'재선 국회의원이라면? 그것도 '못 배운게 한이 맺혀서'가 아니라 '배울 만큼 배운'사람이 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나라당 남경필(39) 의원이 3월부터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1학년이 됐다. 파릇파릇한 '영삼(03)학번이다. 1984년 재수 끝에 연세대에 들어갔으니 20년만에 다시 대학생이 된 셈이다. 남의원은 연세대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예일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는 뉴욕대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학력인데 뭐가 아쉬워서 다시 대학문을 두드렸을까.

"개인적으로는 한나라당이 이번 대선에서 진것은 변화의 큰 흐름을 놓쳤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깥 세계는 확확 바뀌고 있는데 우리만 이전의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던 거지요. 이제 정치인도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대 변화를 따라 잡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학부에서는 사회복지학을 석사 과정에서는 경영학을, 또 박사 과정에서는 행정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제학이다.

"어찌보면 나로서는 생소하다고 살 수 있는 경제학이 늘 세상의 흐름과 함께 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복지는 대학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왔고, 또 정치판에 들어와서는 더 절실하게 '제대로 배워야 겠다"고 느끼고 있는 분야입니다. 이제부터 경제학을 기초부터 공부해서 체계적인 복지 정책을 연구해 볼 생각입니다." 복지 전문 정치인으로 거듭나겠다는 소망에 다름 아니다.

지난해 중반 국회 상임위를 재배정할때 15대때부터 줄곧 일해 온 문화관광 위를 포기하고, 보건복지위로 옮기더니 다 그런 속내가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뼛속까지 서민이 되겠다"다짐

남 의원이 늦깍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굳이 방송통신대를 택한 데에도 나름의 까닭이 담겨 있었다.

" '한나라당은 재벌당'이라는 이미지가 우리로서는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이번 대선에서 이를 제대로 털어내지 못했지요. 내년 총선을 생각한다면 이제 부터라도 다시 서민의 삶 속에서 뛰어들어가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대 입학을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대중정치인이 되기 위한 한 과정'으로 해석해 달라는 의미인데 고개를 끄덕일 만한 구석이 있기는 하다.

곱상한 외모와 깔끔한 옷맵시, 구김살 없는 표정 등 남 의원은 겉보기에 영락없는 부잣집 도련님이다. 실제의 삶도 이미지와 전혀 다르지 않다. 1998년 작고한 부친(남평우 전 의원)은 한때 언론사를 소유할 정도의 재력가이면서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의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든든한 배경은 대중정치인으로 커 나가는데에는 작지 않는 핸디캡이다. "고생을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서민들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는 유권자들의 선입관 때문이다. 98년 7월 보궐선거(경기 수원 팔달)로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물'이 덜 빠졌다.

지난 달 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뼛속까지 서민이 되겠다'고 다짐을 했다는데 어디 한번 두고 볼일이다.

입력시간 2003/03/1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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