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모니터] 아줌마의 힘이 시장을 지배한다

광고, 제품명, 서비스 개선에 큰 역할, 소비자 여론 주도

"행주까지 빨아주는 세척기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매번 행주를 빨고 삶아대는 것이 만만찮은 일이거든요." "오븐 레인지에 국물이 넘치는 것을 방지해 주는 장치를 만들면 어떨까요?" "냉장고 선반을 접이식으로 한다면 대형 김치통을 넣을때 편리할 것 같아요"

가전 제품 회사의 직원 아이디어 회의가 아니다. 주부 모니터 모임에서 쏟아져 나온 의견들이다.

소비자들이 기업의 제품을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제시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본격적인 소비자 모니터 제도의 첫 시작을 1970년대 중반으로 보고 있으니 그 역사가 제법 오래된 셈이다. 1979년 동종 업게 최초로 모니터제도를 도입해 지금에 이르고 있는 신세계 백화점은 사반세기 남짓 소비자 모니터제도를 운영할 결과 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커다란 도움을 받았다고 평가한다.

예정의 소비자 모니터제도가 기업과 환경에 대한 감시자 역할이었다면 최근 각 기업마다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모니터 제도는 자사 서포트 군단의 성격이 짙다.

특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유통점 등 소비자들의 기호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소비재 생산 판매 업체들은 소비자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의견을 들을 기회를 두 손 들어 환영한다.

모니터들의 구성을 보면 중·고등학생에서부터 대학생, 미혼 직장인, 전업주부, 전문직 여성 등 다양하지만 아무래도 그 중심 축은 전업 주부들이다. 물건을 사고 이용하는 것에 주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신제품 아이디어에서 광고 제작까지

작년 중반, 주방 가전 전문 회사인 동양매직의 광고 모델이 갑자기 바뀌었다.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의 기존 모델 김남주보다는 친근한 주부 이미지의 윤혜영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동양매직 주부 모니터들이 제안한 것이다.

이를 임원진들이 전격 수락했고, 광고 콘티 작업부터 적그적으로 주부 모니터들의 아이디어가 모아져 현재의 광고가 만들어졌다.

작년 2월 매직 패밀리란 이름으로 모인 동양매직의 소비자 모니터들은 그 수가 1,000명에 달해 규모만으로도 여론조사 표본 집단의 역할이 가능할 정도다. 때문에 광고나 디자인의 소비자 반응도 조사, 신제품의 신기능 테스트, 시장 조사, 네이밍 등이 매직 패밀리 내에서 대부분 해결된다.

얼마전 출시된 '햅쌀다미' 또한 매직패밀리의 작품. 쌀을 신선하게 보관해 주는 쌀장고의 이름을 매직 패밀리들에게 공모해 '햅쌀다미'라는 맛깔스런 이름을 얻었고, 현재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1기 매직 패밀리를 통해 짭짤한 성과를 거둔 동양매직은 그 여세를 몰아 현재 인원수를 곱절로 늘린 2,000명의 2기 모니터들을 모집 중이다.

닭고기 가공식품 생산업체인 마니커 역시 주부 모니터제를 운영해 개가를 올린 경우다. 작년 12월 첫 선을 보인 '지글지글'이란 이름의 바베큐 양념 닭고기 제품은 마니커 주부 모니터 모임인 '꼬사모'에 의해 겉과 속 모두가 만들어진 제품.

모니터들이 손수 요리해 먹어 보고 비교해가며 '지글지글'의 맛과 크기, 질감 게다가 제품 이름까지 직접 지어 주었으니 꼬사모가 낳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유통점의 판촉 행사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시판된지 불과 열흘만에 3억 8,000여만원의 매출을 안겨준 효자 상품이다.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로운 윈원 전략

주부 모니터 제도에 대한 기업들의 기대가 큰 만큼 주부들의 관심도 뜨겁다. 보통 20명 안팎을 뽑는 주부 모니터 모집에 200명 이상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이 10대 1을 웃돈다. 회의 참석비와 교통비는 물론 자사 제품을 직원가로 할인해 준다거나 신제품을 제공하는 등 제법 쏠쏠히 가계에 보탬이 돼서 좋고, 직접 생산 현장에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자부심도 상당하다.

1년 동안 식품회사 모니터로 활동해 온 주부 신정순(36)씨는 "내 아이, 내 가족이 먹는 식품을 만드는데 내가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한다고 생각하면 뿌둣하다"고 말했다.

신씨는 "슈퍼에서 내가 활동하고 있는 회사의 제품을 보면 너무 반갑고 저절로 그 회사 제품에 손길이 가더라"면서 모니터로서의 보람을 전했다. 몇해 전 모니터 일 했던 한 주부는 "이미 활동 기간이 끝났지만 아직도 그 백화점만 이용하게 된다"며 "직원 아닌 직원으로서 회사에 대한 애사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들 때문에 기업들의 모니터제 도입이 부쩍 늘고 있다. 주로 식품 회사, 화장품업계에 몰려 있던 주부모니터 제도는 최근 들어 건설업계나 인터넷 사이트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해태제과 기업 홍보부 이병권 부장은 "모니터 활동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로운 전략"이라며 "기업들의 최대 관심사인 고객 만족을 위해서도 소비자 모니터 제도는 매우 효과적이며 이런 장점 때문에 앞으로 기업의 모니터제 활용은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입력시간 2003/03/2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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