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 관전평

일요일인 3월9일 오전, 기자들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날 오후에 열린 헌정 사상 최초라는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대화.

“일국의 원수가 자신의 고유 권한인 공무원 조직의 인사권을 두고 공개된 자리에서 공무원들과 논쟁을 벌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대통령의 권위에 흠집을 입게 될 것이다”는 시각이 주류였다.

기자는 소수 의견을 폈다. 권한 행사의 절차적 타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과 대통령이 몸을 낮춰 대화를 자청했다는 것이 얼마나 신선한 충격인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수를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2시간의 대화, 아니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생각이 너무 짧았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검사들은 파상 공세를 작심하고 온 듯했다. 기개가 넘쳐 도발적이었고, 심지어 무례하기까지 했다.

노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에 대해 ‘밀실 인사’ ‘법치주의 망각’ 등 원색적인 용어를 쏟아냈다. 스스로를 기업의 노조원 쯤으로 착각이라도 하는 듯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밤 12시까지 일한다. 대한민국 검사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퍼붓는 대목에서는 혹시 ‘개혁’이란 포장 아래 그들의 선배처럼 검찰 기득권을 보호하겠다는 속셈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특히 “정치인 시절 부산 동부지청장에 청탁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 “형 건평씨가 인사 청탁에 휘말린 적도 있지 않느냐”는 ‘인신 공격’성 발언에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대화 자리를 마련했던 대통령 역시 평상심을 잃은 듯 했다. 노 대통령이 “모욕감 마저 느낀다” “이 정도면 이제 막 가자는 것이다”고 응수하며 노골적으로 화를 내게 만든 것은 어쩌면 검사들의 ‘개가’였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지금의 검찰 상층부를 믿지 못하겠다”며 현 검찰 수뇌부 전체를 싸잡아 비난한 것은 국가 원수로서 책임 있는 자세는 분명 아니었다. 아무리 흠집이 있는 인사라도 공개적으로 돌을 던지는 것은 대통령이 주창해 온 민주주의에 부합치 않는다.

때론 권위를 내세우며 검사들의 주장을 윽박지르려 한 모습도 탈 권위를 내세운 자리에서, 특히 노 대통령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끝났다. 하지만 상처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깊었고, 청와대와 검찰 주변은 한 판 전쟁을 치를 태세다. 이젠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민주주의는 신선할 수는 있을지언정, 최악의 상황에서나 꺼내 들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일 수밖에 없다고.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2003/03/24 14:23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