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벼랑 끝에 서다

신용대란 우려 불구 회원수 늘리기 급급, 연체 채권 서다

지난해 11월초. 동원증권은 LG카드에 대한 종목 분석 리포트에서 "바닥을 기대한다"며 '매수'의견을 냈다. 6개뤌 목표 주가는 7만700원. "신용카드사 연체율이 최악의 상황을 지났다"는 업황 전망이 배경이었다.

하지만 증권사측은 올 2월말 의견을 전면 수정했다. "카드 대출은 1개월 미만 단기 대출이기 때문에 연체에 따른 부담도 3개월, 길어야 6개월을 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당시 리포트를 작성했던 이철호 애널리스트는 '오판'이었음을 시인했다. 목표 주가는 4만6,400원으로 무려 34%나 추락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땅 짚고 헤엄치는 업종…'.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타 업계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으며 영원히 호황을 누릴 것 같던 카드업계가 날개 없는 추락 위기에 직면했다. 카드 연체율을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고, 업계는 대규모 적자의 수렁에 빠져 시름하고 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 증권가 정보지에는 "아직도 감춰진 것이 너무 많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1~2개 카드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경고성 루머나 나돌기 시작했다. 불과 몇 개월새 카드 업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길래 사정이 180도 돌변한 것일까. 가계 부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됐음에도 카드 업계가 사상 최고의 순이익을내며 '배를 불렸던' 지난해 상반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난해 3월, 한 일간지 기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가 가계 신용대란의 진원지로 부상하고 있다. 카드 연체율이 급상승하면서 신용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는 전체 신용불량자의 37.2%에 이르고 있다' 카드 모집인 등록제 도입(1월14일), 신용카드 가두 모집 금지(2월21일), 대손충당금 적립 의무화(3월25일) 등 금융 당국의 카드 업계에 대한 건전성 감독 조치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됐다.

심지어 3월 말에는 미성년자 등에 대해 무작위로 신용카드를 발급했다는 이유로 삼성, LG카드에 2개월, 외환카드에 45일의 영업정지를 명령하는 등 초강수를 두기까지 했다.


혼탁한 경쟁에서 싹튼 위기

잇단 경고와 금융 당국의 압박도 업계의 세 확장 경쟁을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9년 신용카드 소득공제 도입을 계기로 카드 시장의 파이가 커지면서 삼성, LG, 국민카드의 업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한 혼탁한 경쟁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던 때였습니다.

카드 업계에 눈독을 들이던 현대, 롯데 등 재벌들이 막 신규로 진출하면서 최소한의 '룰' 마저도 파괴된 상황이었죠. 어느 정도 리스크른 감수할 수밖에 없는 카드 업종의 속성상 그 정도의 연체율은 충분히 감당 할 수 있다는 안일한 판단도 한 몫을 했습니다." 한 카드회사 임원은 위기를 잉태하고 있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상반기 9개 전업 카드사의 당기 순이익이 무려 1조1,078억원에 달했으니, 내용 면에서도 아런 문제가 없는 듯 했다.

이상 징후가 외부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였다 "연체율이 급상승했다""고 우려했던 상반기(6월말)까지만해도 5.1%에 불과했던 9개 전업 카드사의 30일 이상 연체 채권 비율이 9월말 6.65에 이어 11월 말에는 9.2%까지 치솟았다. 결산을 앞둔 연말에 8.8%로 다소 하락하는가 싶더니 올 1월에는 또 다시 11.2%로 폭등, 외환우기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규모 흑자에서 월 1,000억원 저자

사상 최대 흑자가 대규모 적자로 돌아서는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전업 카드사의 하반기 순손실은 총 1조3,698억원. 상반기에 벌어들인 돈을 모두 까먹고도 연간 2,616억원이 적자였다.

원인은 3~4년간 브레이크 없이 계속된 출혈 경쟁이었다. 한 애널리스트의 설명이 재미있다 "허리 디스크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 같잖아요. 헌데 알고보면 나쁜 자세 등이 계속 허리에 무리를 주다가 어느날 우연한 외부 자극으로 표출되는 겁니다. 카드 업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무리하게 외형 확장을 해도 경기가 좋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경기가 위축되면 봇물 터지듯 누적된 부실이 드러나게 되는 거죠."

국민카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쟁사인 LG, 삼성카드가 2개월 영업 정지를 받고 있던 지난해 4~5월. "업계 1위로 부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 국민카드는 무작위로 신규 회원 모집에 나섰다.

2개월간 국민카드측이 확보한 신규 회원은 60만명. 평소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지난해 연간 2,609억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올 들어 1월에만 무려 1,204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연체율도 12월말 9.83%에서 1월말 13.62%로 폭등하며 업계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 한때 6만원대를 넘나들었던 국민카드 주가는 1만6,000원때까지 떨어졌고, 모 회사인 국민은행 주가도 주택은행과의 합병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며 허우적대고 있다.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한 현대카드, 동양아멕스카드를 인수한 롯데카드 등 후발 업체의 외형 확장도 이에 못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출범과 함께 '현대M카드' '노블레스카드'등을 출시한 현대카드는 65만명에 불과했던 회원수를 지난해 말 320만명으로 늘렸다.

"회원 수를 늘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었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대차, 기아차를 갖고 있는 고객이면 누구에게나 닥치는 대로 카드를 발급해 줬죠." 동종업게 한 관계자는 "조만간 일이 터지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업계 내부 자료에 따르면 현대와 롯데의 연체율은 지난해 말 현재 각각 15.0%와 20.2%. 이 관계자는 "연체율이 20%에 달한다는 건 그야말로 혼수 상태라는 의미"라고 얘기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감춰진 부실'이다. 때문에 카드 업계 부실이 어떤 파괴력을 지닐지 가늠조차 힘들다는 푸념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해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최근 실체가 드러난 것이 '대환 대출'이다. 대환 대출이란 새로운 대출을 일으켜 기존 대출금을 갚도록 하는 것. 겉으로만 보기에는 정상적인 대출이기 때문에 연체료는 잡히지 않지만, 카드사가 대출을 중단하는 순간 즉시 연체로 전락 할 수 있다는 심각성이 알려지면서 요주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감춰진 부실이 더 많다

대환 대출로 가장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은 LG카드다. 지난해 10월말 애널리스트 대상 기업설명회(IR)에서 대환 대출 규모가 1조7,0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가 올 초에는 무려 두 배가 넘는 3조 8,74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기준의 차이"라는 것이 LG카드의 해명이었지만, 증권 업계가 "의도적인 축소"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것은 당연하다.

국민(1조2,700억원) 삼성(1조2,700억원) 외환(6,920억원) 등 업계 전체로 대환 대출 규모는 7조원을 넘어선 상태. 업계는 이중 적게는 30#, 많게는 50%가 회수 불가능한 채권 일 것으로 보보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이제는 덩어리가 너무 커져서 떨어내고 싶어도 떨어낼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며 "언제 폭발할지 모를 시한 폭탄을 껴안고 계속 둘리고 있는 격"이라고 했다.

이 뿐만 아니다. 대출이 아닌 현금 서비스를 일으켜 기존 대출을 막는 '대환 현금서비스(CA)'는 아예 규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를 포함할 경우 전체 대환 대출 규모는 10조원을 크게 웃돌것으로 추산될 뿐이다.

일부 재벌계 카드사의 경우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의도적으로 연체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은행계 카드사 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을 통해 "삼성과 LG카드가 각 계열사들과 구매전용 카드를 통해 거래하는 과정에서 원가 이하의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등 불공정 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매출 규모가 늘어나기 때문에 연체율은 줄어드는 대신, 현금서비스 운용 비중 규제(50%)속에서도 현금 서비스 규모를 계속 늘려나갈 수 있다.

시중은행 카드 담당 임원은 "계열 거래를 제외하고 재벌계 카드사의 연체율을 조사해 보면 10 %대를 훨씬 넘어설 것" 이라고 귀띔했다.


카드 대란 오나

카드 업계의 향후 전망은 '컴컴한 터널속'이다. 이라크 전쟁, 북핵 문제 등으로 경기가 언제 고개를 들지 알 수 없는데다. 연체 채권과 대환 대출 급증세도 언제 멈출지 아무도 장담할수 없다. "향후 6개월이 고비다. 이 기간에 상황이 개선 되지 않으면 정말 문을 닫는 카드사가 생길 수 있다." 카드사 한 임원은 이렇게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설사 카드사 1~2곳이 무너지더라도 파장이 크지 않을 거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은행, 보험, 투신 등과 달리 카드사의 경우 예금 고객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사정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사업 특성상 카드회사는 1, 2 금융권을 통한 자금 조달 의존도가 크다"며 "카드회사가 무너지면 은행을 비롯해 보험, 투신사의 경영에도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카드 자산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의 경우 지난해 말 현재 누적 잔액이 40조원에 달하는 등 국내 ABS 시장을 좌지우지 하는 상황. ABS 시중 붕괴이 붕괴되면 민간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상당한 차질을 입을 수 밖에 없다.

퇴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더라고 카드업계의 부실은 우리 경제에 엄청난 짐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카드사 부실화 → 전금조달 여건 악화 → 카드 연신 축소 → 연체율 상승 → 카드사 부실 심화'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몰린 카드 업계를 살리기 위한 선택은 두 가지다. 침체된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기만을 애타게 고대하든지, 아니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내놓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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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2003/03/2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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