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가 사는 법]‘예술심리 치료사’ 이안혜성

"아픔을 이겨낸 행복이 더 큰 법이죠"

햇살이 잘 드는 창이 나 있는 방, 여자는 이부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눕는다. 눈을 올려 곁에 앉은 친구의 얼굴을 보아도 좋고,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아도 좋다. 친구는 그녀의 얼굴 구석구석 향기 좋은 영양크림을 듬뿍 바르고 천천히 마사지 한다. 움직이는 친구의 손끝에서 세심함이 전해져 온다. 여자는 어릴 적 엄마를 떠올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단잠에서 깨어난 그녀 앞에 그녀의 얼굴 모양을 그대로 본 뜬 탈이 놓여있다. 석고붕대로 떠낸 창백한 탈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자신의 코와 눈, 그리고 벌린 입술 선을 따라 손을 움직여본다. 너무 낯선 자신의 얼굴 앞에 선 그녀는 도망가고 싶기도 하고, 핏기 없는 하얀 탈에 색깔을 넣고 싶기도 하다.

그녀는 지옥의 신 ‘하데스의 눈’을 자신의 얼굴을 본 뜬 탈에 그려 넣는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선 ‘6명의 못난 아이들(아픈 아이, 입이 비뚤어진 아이, 외로운 아이, 미친 아이, 바보 아이, 화난 아이)’이 꾸역꾸역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도 가면이 필요하잖아요. 늘 노출된 채 살다 보면 힘드니까요. 그런데 또 가면을 만드는 목적은 내면에 있는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이 가면을 만들어 씀으로써 현재 내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나의 가면들을 벗는 거예요. 가면을 씀으로써 오히려 가면을 벗는 거지요.” 그녀 이안혜성(38ㆍ예술심리치료사ㆍ청운대학교 학생생활연구소 전임상담원)씨는 이렇게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신과 만난다.


못난이 6형제를 잉태하다.

그녀는 자신을 ‘외할머니의 딸’이라고 소개한다. 아버지나 아버지의 엄마인 친할머니로부터는 삶의 긍정적인 자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복덕방을 하던 아버지는 심한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평상시에는 그렇게 조용한데 술만 마시면 집안 뿐 아니라 동네를 시끄럽게 했어요. 육체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술만 마시면 소리를 지르고 욕하는데, 이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정신적인 폭력이죠.”

아버지의 음주에 따라 그녀의 세상(가정)은 엎어지고 뒤집기를 반복했고, 그녀는 심한 멀미를 경험해야 했다. 그녀의 세상에서 그녀는 어떤 것도 제대로 말할 수 없어 입이 비뚤어지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신뢰해주는 것이 없어 화나고, 기댈 곳 없어 외롭고 아팠다. 그럼에도 자신의 의지로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하는 바보, 미치광이가 돼 갔다. 그녀 안에 못난이 6형제가 잉태되었던 것.

아버지의 횡포 아래 눌려 상처 받은 작고 여린 그녀를 바로 세워줄 힘 센 지지대가 그녀에게는 절실했다. “전혜린, 윤심덕, 보부아르….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어요. 어릴 때 많이 보는 책이잖아요. 10대때, 도서관에서 이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 막 가슴이 뛰고 아주 이상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뭔가 (지금의 내 것과)다른 삶이 있을 것 같았던 거죠. 그 이상적인 것을 여성학을 통해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본 거 같아요.”

그녀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의 죽음이 있은 후 그녀는 이미 제 멋대로 자라난 그녀의 못난이들을 깊숙이 묻어둘 수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후 엄마는 언제나 그녀를 지지해주었고, 뭔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대학에선 화학을 공부했는데, 저와는 너무 맞지 않았어요. 한참을 헤매던 중 여성학을 만났고, 졸업하면서 바로 여성학 공부를 했어요. 저의 이상적인 성향과 딱 맞아 떨어진다고 여겼죠. 여전히 제 눈엔 주변의 결혼이 행복하지 않아 보였어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노동 쪽에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민우회활동도 하게 된 거고요.”

그러나 그녀가 꿈꾸었던 이상이 거기서도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여성학을 공부하고 여성운동을 하게 되었음에도 그녀 내부에선 또 다른 ‘전복’을 꿈꾸는 그 무엇이 꿈틀댔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기 삶의 구체적인 과제를 가지고 여성학을 하러 왔는데, 제 경우엔 졸업하자마자 들어갔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랜 연인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에 나온 못난이 6형제

그녀에게는 결혼한 사람들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남자친구가 있다. 그녀는 자신이 꿈꾸어온 것을 그와의 관계 속에서 그대로 풀어놓고 싶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이성적으로 관계를 잘 이끌어가고 싶었다.

그녀는 보통의 연인관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것을 거스르는 쪽을 택했다. 성욕을 느끼고, 안 느끼고의 문제와 무관하게 자신이 주도하는 성관계만 하고 그가 주도하는 건 무조건 하기 싫었다. 또 공부하러 떠나는 남자친구를 잡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크면서도 서슴없이 ‘가라!’고 했다.

“제 나이가 그때 스물 일곱 여덟됐을 때니까 나이도 많이 찼을 때죠. 제가 보기에 저는 학생운동 쪽도 아닌 것 같고 뭔가 뒤죽박죽인데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힘 드는 거예요. 그 친구가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죠. 그때 처음으로 ‘이상한 나의 모습’을 봤어요. 남들과 다르게 살 거고, 인생에 있어 가정적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반면, 내 안에 그것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있고.

또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딱딱 끊는데, 그 친구가 조금만 서운하게 하면 내 안에서 이상한 게 막 올라오고. 거기에 내가 압도되는 거예요. 그때는 그걸 몰랐고, 인정할 수 없었죠. 그걸 인정하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요.”

깊숙이 가둬놓고 돌보지 않은 사이 그녀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과제(못난이들)들이 엄청나게 큰 괴물로 자라 서서히 그녀의 현실을 압박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에 민감하고 그만큼 기복이 심하다는 얘기죠. 또 비슷한 사람을 보면 공감이 되고. 우연하게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하게 됐는데, 그게 재밌었어요. 내가 누군지를 알아가는 이 과정이 때론 힘들고 고통스러우면서도 짜릿한 무엇이 있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거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는 과정에서도 제가 드러나요. 아주 우습게. 그 모습을 보는 게 아프고 싫지만 그것을 통해 저 자신을 확인하면서 성장하는 그 자체가 좋아요.”

그녀가 말하는 성장이란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아프게 하거나 화나게 할 때, 그 때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내가 현재(현재의 감정과 욕구)를 모르면 미래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수가 없잖아요. 나를 알아가면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었어요. 적어도 이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맘껏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요.(웃음) 그 친구와는 참 질긴 인연이에요. 지금은 일 때문에 외국에 나가있는데, 제가 방학이면 그 친구한테 가서 몇 달 살다 와요. 남들 부부생활 한 거 만큼 오래 알고 싸워오는 동안 서로에게 맞게 변화된 것이 아까워 둘 다 못 헤어지고 있어요.(웃음)”


나를 맘껏 놀게 하고 싶다!

예술 심리치료는 오래 전부터 중요한 심리치료의 한 방법으로 있어오다가 1950년대 미국에서 전문직종의 하나로 정착한 결코 역사가 짧지 않은 심리치유법이다. “저도 2000년까지는 언어로 하는 것을 훈련 받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예술치료를 알게 됐고, ‘이거다’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언어로 하는 상담은 피하고 싶을 때 도망갈 수가 있어요. 그 대안으로 생긴 이 예술치료는 그럴 수가 없어요. 아주 상징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죠.”

그녀는 현재 청운대학교에서 열등감과 부모와의 불화 등으로 자기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하고 있는 대학생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그리고(미술), 움직이는(동작, 연극, 소리) ‘놀이’를 통해 자기표현이 다양해지면서 자기를 인정하고 잘 놀게 된다. “참, 우습죠. 분명히 ‘놀이’라는 걸 알고 시작하고 끝난 뒤에도 ‘놀이’였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해요.(웃음)”

결국 모든 상담치료의 끝에는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 일이 있다. 바야흐로 놀이의 시대라는데 거꾸로 우리는 점차 자신을 그대로 놓아두는 ‘놀이’를 잃어가고 있다. 왠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싶은 예술심리치료는 우리 모두의 잃어버린 ‘놀이’와 ‘쉼’에의 추억을 일깨우는 하나의 장치로도 읽혀진다.

한편 그녀는 여성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여성학 공부나 여성단체 활동 쪽에 있는 자신에 대해 ‘모호했다’고 말한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며 한 사람씩이라도 손잡고 같이 가는 게 맞는 거 같고, 그걸 제 운동의 방법으로 삼고 있어요. 그렇다고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 걸진 않아요. 하지만 여성들 고민의 맥락을 이해할 때, 여성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은 어떻게 그 여성을 지지해줘야 할지를 알게 해주죠. 이것이 여성들과 작업할 때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요.” 청운대학교 말고 그녀의 또 다른 일터인 ‘줌마네’(주부 및 미혼여성들의 커뮤니티)에서‘내공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에 열심인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양은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3/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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