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순례'


■ 성스러운 여행-순례 이야기
필 쿠지노 지음/ 황보석 옮김/ 문학동네 펴냄

순례는 신전이나 성지 같은 종교적 장소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그러나 여행가 필 쿠지노에게는 순례가 반드시 성지를 찾는 여행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어쩌면 그에게는 모든 여행이 순례다.

그 여행이 나름의 의미가 있고, 가슴 뿌듯한 추억으로 남는다면 순례가 되는 것이다. 좋아하는 야구선수가 홈런을 날린 야구장, 어렸을 때 떠나 온 고향, 전쟁 중에 폭탄을 떨어뜨렸던 적지 등 자기에게 특별한 곳이라면 그 곳이 바로 그에게는 성지가 되기 때문이다.

여행, 즉 지은이가 말하는 순례의 목적은 번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순례를 떠난다는 것은 곧 나날의 삶에 도전장을 던진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자신을 정복하는 모험이다.

순례는 생각없는 여행을 주의깊게, 무감동한 여행을 감동적으로 바꾸어준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그 차이는 미세할 수도 있고 극적일 수도 있으나 당연히 삶을 변화시킨다. 진정한 순례는 지구를 반 바퀴 돌건, 아니면 집 뒷마당으로 나가건,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알려진 곳의 경계를 넘어 마음에는 목적지를, 가슴에는 이상을 품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여행자.

그는 길 위에서 꿈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지혜를 이용해 새로운 의식을 창조한다. 그리고는 알게 된다. 순례는 삶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이 책은 순례를 꿈꾸면서도 일상에 묶인 채 망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어 길을 떠나도록 이끈다. 지은이는 여행자가 집을 나서서 다시 돌아오는 동안 열망-부름-출발-길-미궁-도착-은혜로운 선물의 일곱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길을 떠나고, 그 길에서 모든 것을 배우며, 고난과 시련의 미궁을 지나 나의 상상 속에 있던 것들을 손으로 만진다. 그리고는 여행이 남긴 선물과 함께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지은이는 어찌할 수 없는 여행가다. 태어난 지 2주밖에 안됐을 때 부모는 그를 포대기에 싼 채 1949년형 허드슨 승용차에 싣고 30시간이나 차를 몰았다. 그의 말 대로 “그 때이른 여행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방랑벽을 심어준”모양이다.

그의 아버지는 여행이 정신 건강에 좋다고 확신했고, 그의 어머니는 그 일이 영혼에 좋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가 순례자의 삶을 더 없는 행복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는 부모에게 빚을 져도 한참 많이 졌다.

입력시간 2003/03/2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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