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 개그펀치] 대화와 탁상공론

요즘 우리 앞집에는 심상치 않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두 집이 마주보고 있는 계단식 아파트인 우리집과 앞집은 내가 이사온 지 얼마 안된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로 인해서 이제껏 왕래가 없이 살고 있다. 아내는 허구헌 날 앞집 현관 앞에 놓여있는 악취나는 쓰레기 봉투와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가 담긴 배달 음식 그릇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기본도 안된 사람들과는 상종도 안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코앞에 사는 처지에 혹시 낯이라도 붉히며 싸우게 되면 불편해서 어찌 사냐고 고민하던 아내는 우회적인 전략을 쓰기도 했다. 자장면을 시켜먹으면 제발 보고 깨달아 달라는 의미에서 배달 그릇을 깨끗이 씻어서 내놓기를 여러 번이었지만 효과가 없었고, 두어 번 다른 시도도 해보았지만 실패로 돌아가자 깨끗이 손을 들고 말았다. 헌데 얼마 전부터 앞집은 쓰레기 처리와는 다른 문제로 시끄럽다.

부부싸움에 돌입했는지 얼마 전부터 새벽 한두시에 부부가 번갈아 가며 잠긴 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러대고 발길질을 해대고 있다. 아마 언쟁이 오고 가고 그러다 분을 참지 못한 한쪽이 집을 뛰쳐 나오면 다른 쪽은 즉시 현관문을 걸어 잠근다. 그러면 다시 진입을 목적으로 열쇠를 돌려대다가 여의치 않자 초인종을 눌러대며 애꿎은 현관문을 발과 손으로 차댄다. 손바닥만한 엘리베이터 앞 공간에서 욕설을 동반한 말싸움도 마다 않는다.

앞집 때문에 심심할 겨를이 없다고 푸념하는 아내는 동네의 이목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소문내며 부부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혹시 욱하는 마음에 가스라도 터뜨리면 어쩌냐고 좀 황당한 걱정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집의 상황을 보며 대화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물론 부부싸움을 비롯한 모든 위기상황을 배운 사람들답게 우아하고 이성적인 대화로만 풀어나갈 수는 없다. 때로는 한잔의 술로, 몇 번의 종주먹질로 시원하고 명쾌하게 해결을 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화로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어 해결하는 것이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않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안다. 모두들 잘 알면서 우리는 대화로 해결을 보는 데 지극히 서투르고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 대통령이 검사들과 TV에 나와 토론을 한 것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전임 대통령들도 국민과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받고 대통령이 간간이 유머를 섞어 대화를 하는 걸 우리는 몇 번씩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대화가 아니다.

어느 정도 예상된 질문과 대답으로 짜여진 조심스러움을 벗어나지 못한 가식적인 예의 차리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이 일반 검사들과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대가 진짜 많이 변했다’, ‘정말 저렇게까지 말해도 되는거야?’ 하며 놀라움과 신선함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저게 무슨 토론이야, 그냥 서로 우격다짐이지’, ‘대통령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니까 불안하다’ 며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냥 막연하게 뭉뚱그린 국민이 아닌 세분화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도 좋다. 다만 진짜로 해야 할 숙제거리는 놔둔 채 무조건 만나서 어설픈 대화만 나누려고 한다면 그건 좀 문제가 있다. 이러다가는 검사 뿐만이 아니라 노점상들, 노동자들, 주부들, 학생들 심지어는 호스테스 아가씨들이며 조폭들까지 자신들의 고충을 들어달라며 대화를 갖자고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할지도 모르겠다.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던 샐러리맨들이 일갈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검사들하고 대화를 하든 맞장을 뜨든 그게 뭔 큰일이라고 난리들이래? 당장 물가부터 잡아주는 사람이 서민한테는 하나님이네요.”

입력시간 2003/03/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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