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탐구] '국민가수' 김건모

"삶의 잔잔한 슬픔을 담고 싶었어요"

“청첩장에 담은 김건모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어느 날 날아온 한 장의 청첩장엔 많은 이야기들이 묻어 있다. 기쁨과 설렘, 아쉬움 그리고 때론 슬픈 추억까지….

국민가수 김건모가 그런 감상이 고스란히 담긴 ‘청첩장’을 들고 찾아왔다. 92년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로 데뷔했으니 벌써 강산이 변했다. 그 긴 시간동안 한결같이 최고의 위치에 머물고 있는 그가 22개월만에 8집 앨범 ‘Hestory’를 내놓았다. 유례없는 불황을 맞고 있는 음반시장이지만 그의 앨범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남자 김건모를 그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판매량이오? 신경 안 써요.”많은 이들이 그의 앨범 판매량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비단 이번만의 일은 아니었다. 데뷔 이후 줄곧 최정상의 인기를 자랑해 온 그이기에 앨범을 내는 매 순간마다 앨범 판매량은 화제의 초점이 되곤 했었다.

그의 7집 이후 백만장을 돌파한 플래티넘 앨범이 등장하지 않는 극심한 불황 상태에서 이번 앨범은 더 많은 이들의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막상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판매량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례적인 대답일거란 의심에 비슷한 시기에 함께 음반을 들고 나온 후배 가수 조성모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물어 보았다. 각종 언론들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거물급 두 가수의 격돌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음악은 경쟁아닌 즐거움”

“라이벌 의식을 가진 적 없어요. 격돌이라느니 김건모 대 누구라느니 하는 건 모두 화젯거리를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에서 만들어 낸 말인걸요.”되돌아보면 그는 늘 누군가의 경쟁 대상으로 언론 지상에 그 이름을 드러내곤 했었다.

서태지 대 김건모, 지오디 대 김건모, 조성모 대 김건모 등등. 그건 그만큼 그가 늘 경쟁대상일 수밖에 없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는 단 한번도 누구에게도 라이벌 의식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더 잘 나가야겠다’, ‘누구보다 더 많이 팔아야겠다’라는 얄팍한 심정으로 가수생활을 하진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으면 ‘삐리리’ 일거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는 그저 즐겁다고 했다. 노래 부르는 일도 방송에 나가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도 자신이 즐겁기에 열심히 할 수 있노라고. 하지만 단순히 즐겁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누구나 그와 같은 인기를 누리지는 않을 터. 그에게 오랜 시간 최정상의 위치에 있을 수 있었던 비결을 물어 보았다.

“천운(天運)이죠. 이쪽 세계가 단순히 노력만으로 되는 곳은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전 정말 천운을 타고 난 것 같아요. 이번만 해도 뜻하지 않게 음반 시장이 불황이다 보니 제게 거는 기대가 더 높아졌던 가 봐요. 앨범이 나온 뒤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기울이시더군요. 예전 같으면 신문 하단에 조그맣게 실릴 기사도 크게 내 주기도 하시고, 홍보에 적잖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웃음)”

사실 그를 인터뷰하러 간 날도 스포츠 신문 1면에 김건모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의 이번 8집 앨범 타이틀 곡 ‘청첩장’이 옛날 사귀던 여자에 관한 노래라고 하는. 그 이야길 전해 주었더니 “그게 기사에 나왔느냐?”고 놀라워 했다. 게다가 1면에 나왔다고 했더니 “거 봐라. 1면에 실어 주지 않느냐” 라며 씨익 웃어 보였다.

8집 타이틀이 ‘청첩장’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여자와 관련된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무덤덤하다고 했다. 외롭진 않냐고 물어 보았더니 대뜸 “외로울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대중도 그렇지만 가수들 스스로도 스타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 봐요. 가수도 한 직업인일 뿐이죠. 괜히 어깨에 힘주고 선글라스 쓰고 남과 다르네, 나 잘났네 해 봤자 자기만 피곤할 뿐, 결국은 똑같은 인간인걸요.”

그래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무대를 내려오면 외롭지 않느냐고 다시 캐물었지만 대답은 여전하다. “회사원이 일을 마치고 집에 간다고 외로워 하지는 않잖아요. 저도 똑같아요. 노래를 부르는 일이 직업이라는 점이 다를 뿐 무대에서 내려왔다고, 방송이 끝났다고 외롭거나 하진 않아요. 일례로 친구나 후배 가수들한텐 방송사에 갈 때 그래요. 출근하러 간다고, 퇴근하고 보자고.(웃음)” 그러더니 창 밖을 내다보곤 “아 오늘 같은 날엔 출근하기 싫다. 날씨 죽여주죠?”라며 또 한번 씨익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바람과 달리 그는 요즘 거의 매일 같이 방송사에 출근하고 있는 중이다. 앨범 발매 후 쏟아지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출연 요청에 흔쾌히 응한 결과이다. 얼마 전엔 젊은 청춘남녀들만 출연하기로 소문난 ‘강호동의 천생연분’에 출연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막상 출연한다고 했더니 제작팀에서도 놀라던데요? ‘어떻게 김건모가 우리 프로에!’하면서 (웃음). 근데 너무 웃긴 건 사실은 제가 더 출연하고 싶었다는 거죠. 활동을 쉬면서 TV 볼 때 결심했죠. 방송활동 시작하면 제일 먼저 저기에 꼭 나가봐야지. 왜냐구요? 에이, 알면서. (웃음)”


“자주 뵙게 될거에요”

젊은 청춘 남녀의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간 게 쑥쓰럽지 않았냐고 했더니 “고정관념을 깨라”며 말을 덧붙였다. “방송을 꼭 어린애들만 하란 법 있나요? 두고 보세요. 방송활동 시작한 이상, 온갖 오락프로를 다 섭렵해 볼 작정이에요. 재밌잖아요.” 역시 그는 일상에서도 방송에서 보여줬던 유쾌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남자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웃음과 진지함을 함께 실을 줄 아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들 줄 아는 사람. 그만한 위치에 오른 이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거만함도 찾아볼 수 없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탈한 30대 남자. 그런 김건모가 들려주는 ‘Hestory’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말 그대로 그냥 story, 즉 이야기에요. 30대 중반이고, 8집까지 낸 가수,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는 김건모에 대한 이야기죠.” 그래서일까? 이번 앨범은 유난히 많은 이들에게서 ‘김건모 다운 음악들’로 채워졌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남자의 절절함이 우러나오는 타이틀 곡 ‘청첩장’은 물론이고 뽕짝 리듬의 댄스곡 ‘제비’와 후배 가수 싸이와 함께 작업한 ‘딸기’ 등은 동반 히트 조짐을 보이고 있을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김건모 본인은 ‘김건모 표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찰리 채플린 아시죠?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 내내 웃다가도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서는 채플린의 뒷모습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어요.

채플린 본인은 단 한번도 울지 않지만 오히려 그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삶의 페이소스가 멜로 영화나 신파 영화에서 화면 가득히 잡힌 배우의 눈물보다 더 진한 감동과 슬픔으로 느껴지죠. 김건모의 음악도 그렇게 들려졌으면 좋겠어요.”

그는 슬픈 발라드 곡을 부르면서 꼭 누군가를 울려야겠다 라거나 내가 울어야겠다 라는 심정으로 부르진 않는다고 했다. 단지 누가 그 노래를 들어도 충분히 슬프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그 곡의 감성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듣는 그의 노래들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노랫말이 아님에도, 촉촉이 스며드는 감미로움이 없음에도, 듣는 이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마치 ‘삶이 그런 것이다’라고 노래하는 듯 했다.


김건모의 추천곡 ‘my son’

타이틀 곡 말고 개인적인 애착을 지닌 노래가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 ‘my son’이란 노래를 꼽았다. 타이틀곡인 ‘청첩장’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고 ‘김건모 표 발라드’란 찬사를 받고 있지만 그가 생각하는 가장 김건모 다운 노래는 ‘my son’이라고.

“제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한때 음악을 꿈꾸었던 모든 이들에 대한 노래에요. 음악을 동경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풍경과 그리움이 담겨 있어서 들어보면 많이 공감하실 수 있을거에요.”

김성주 연예리포터

입력시간 2003/03/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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