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모, 또다른 희망의 싹을 티운다

극심한 재정적자·결집력 약화 등 위기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707호. 버젓한 간판 하나 제대로 찾을 수 없지만 문 안쪽으로 어렴풋이 비치는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자가 이곳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중앙사무국 사무실임을 알린다.

‘Promise1219’ ‘노란 리본, 당신의 희망입니다’ ‘I LOVE 노무현’ 등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제일 먼저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벽 한쪽을 장식한 노란색 낙서판이다. 대선 기간 중 전국 각지에서 올라 온 회원들이 남기고 간 글들이라고 했다.

“노무현이 맺어준 아름다운 인연” “원칙과 상식의 대명사 무현 짱” “당신과 동시대에 호흡하고 있음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 굳이 노사모 회원이 아니라도 그들의 순수한 열정에는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글들이 빼곡하다. 한 때 간이 침실로 활용했던 공간, 회의실 방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벽 한 쪽에 붙어있는 대선 포스터 등 치열했던 ‘2002년 12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이런 ‘전흔’을 시야에서 지우는 순간, 40평 남짓한 공간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다가온다. 4명의 상근 직원만이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너무 한가롭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들의 얼굴에서도 치열함보다는 오히려 평온함이 느껴진다. 불과 3개월 전, 수십명의 회원들과 자원 봉사자들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새우잠을 자며 전투하듯 하루하루를 보냈던 공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다. 상근 직원 윤유미씨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지지율 추이, 막판 후보 단일화 파기 등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초긴장 상태였잖아요. 그만큼 노사모에게 주어진 역할도 많았고, 우리 노사모 회원들의 꿈도 컸죠. 주변 사람들도 많은 관심을 쏟아 주셨고요.”


노사모에 새로운 꿈이 있는가

그들의 꿈 은 이루어졌다. 월드컵 4강 진출 보다 더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그간 고민도 많았다. 꿈을 이뤘으니 순수성을 해치기 전에 이제 그만 각자 갈 길을 가야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비등했다. 대통령이 노사모 만의 전유물일 수 없다며 대통령의 팬클럽은 해체돼야 한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계속 남아 있기를 선택했다. “아직은 해야 할 일이, 그리고 못다 이룬 꿈이 많이 있다”는 이유였다.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을까. ‘노짱’(그들은 처음부터 대통령을 이렇게 불렀다)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8만 회원들의 열기는 눈에 보이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노사모의 유일한 수입원인 회원들의 회비는 ‘전성기’ 때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심각한 적자였다. 꿈이 사라진 노사모를 등지고 ‘반전 평화’ ‘언론 개혁’ 등 그들이 좇는 목표를 향해 하나 둘씩 자리를 이탈했다.

이라크 전쟁 파병, 대북 송금 특검법 공포 등 대통령 취임 이후 ‘노짱’의 행보에 실망하며 탈퇴를 선언하는 이들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인 노사모에 과연 새로운 꿈이 있는 것일까.


탄생에서 지금까지

2000년 4ㆍ13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 감정을 깨겠다”며 15대 지역구인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 출마했다 낙선하던 그날 밤, 그의 홈페이지에는 울분의 글이 쏟아졌다. 하루 1,000건이 넘는 글들은 낙선한 정치인 노무현의 실패를 안타까워했고, 그를 낙선시킨 지역 감정에 아파했다.

그 중 유독 네티즌들의 눈길을 끄는 글이 있었다. ‘늙은 여우’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이 ‘노무현 팬클럽’을 제안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총선이 끝난 지 불과 4일 뒤인 17일 ‘노무현 팬클럽 임시 게시판’이 마련됐고, 10여일이 지나 회원이 300명을 넘어섰다. 온라인 뿐 아니라 오프라인 상에서도 모임을 갖자는 제안이 나오기 무섭게 서울(4월29일) 광주(4월28일) 부산(4월29일)에서 지역별 소모임이 꾸려졌다.

5월 노사모 공식 홈페이지(www.nomuhyun.org)가 개설됐고, 6월에는 공식 창립총회가 열렸다.

노사모가 본격적으로 대통령의 ‘지원 사격’에 나선 것은 올해 초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 경선 때부터였다. ‘노풍’(盧風)의 진원지였던 광주에서 그들은 자금이 부족했던 대통령에게 지갑을 털어 ‘실탄’을 공급했고, 조직이 부족했던 그에게 기꺼이 자원 봉사자가 돼 주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노사모가 다시 한번 힘을 결집시킨 것은 8ㆍ8 재보선이 끝난 직후였다.

민주당 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면서 재경선 공방이 치열할 즈음 그가 가는 곳마다 노란 손수건을 내걸었고, 당 지도부를 직접 찾아가 노란 장미를 건네는 등 열성을 다했다.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이후에 노사모의 활동은 정점에 달했다.

거의 모든 선거 유세장을 노란 목도리로 물들였고 ‘희망 돼지’를 분양해 자발적으로 정치 자금을 마련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노사모의 가장 큰 업적에 대해 “대통령 노무현을 만든 것이라기 보다 국민에게 부정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정치판에 긍정과 희망의 싹을 피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적자 수렁 탈피 몸부림

노사모 중앙사무국은 최근 회원들에게 메일 한 통씩을 보냈다. 노사모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알리는, 아니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10월 2,779만원, 11월 3,952만원, 12월 2,809만원이었던 회비는 대선이 끝난 올 1월 1,159만원으로 급감했다.

1월 한달간 적자가 630만원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2, 3월 수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1월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는 수준이었다. 돈의 많고 적음을 애정의 잣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회원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노사모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몰려들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노사모는 긴축에 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산실인 현재의 사무실을 비우고 인근에 신축된 ‘민족통일 대통령’ 건물 절반 규모의 사무실로 터전을 옮기기로 했다. 윤유미씨는 “대선 국면에 조금 무리해서 넓은 사무실로 옮겼기 때문에 이젠 형편에 맞는 곳으로 다시 이동하는 게 맞다”며 “임대료나 관리비를 절반 가량은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3월 중 사무실 이전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하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에 새롭게 들어오겠다는 이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고, 새 사무실에 입주하는데 들어가는 보증금도 모금 실적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소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보겠다며 수익 사업도 준비 중이다. 우선 노사모 사이트에 유료 배너 광고를 달자는 의견이 제안돼 21일부터 회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투표에 들어갔다.

노 대통령의 캐릭터 제작 업체인 ㈜프렌즈측과 제휴를 맺고 쿠션, 인형, 열쇠고리, 수건 등 ‘노짱’의 캐릭터가 새겨진 상품을 판매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아직 회원들 사이에 공론화하지는 않았지만 노사모의 수익사업은 논란의 대상이 될 게 분명하다.

한 회원은 “대통령의 순수한 팬클럽을 자처하는 조직이 어쨌든 대통령을 상업적인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될 소지가 다분하다”며 “회비를 늘리든지 아니면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지 수익 사업에 나서는 것 자체는 모임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망, 고민, 그리고 분노

다른 시민단체와 달리 노사모가 온라인 공간을 통해 자생적인 활동을 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어찌 보면 재정은 부수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설사 노사모 사무실이 문을 닫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회원들이 끈적끈적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한 노사모 자체가 붕괴될 리는 없기 때문이다.

노사모에게 더 큰 근심거리는 갈수록 느슨해지는 결집력이다. “아름다운 귤이 주렁주렁 열리는 될 성 싶은 나무인 듯, 그 씨앗이 탐스러워 아랫목에 고이 묻어두고 긴긴 밤을 노심초사했는데, 열매도 맺기 전 가시부터 생기는군요.” ‘달빛바다’라는 아이디의 한 회원은 이라크 파병 결정을 내린 노 대통령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내며 노사모 탈퇴 의사를 밝혔다.

“결국 특검법 수용, 더 이상 그를 사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차선의 선택인 줄 믿었더니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혹독한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노사모 자체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다. 대부분 노사모의 진로에 대한 의견들이다. “이제 노사모의 다른 면모를 보여줘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노사모는 정치 색깔을 보여서도 안됩니다.”(qorwkrhf) “노사모는 노무현이라는 코드는 같되 그 안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노사모는 개혁 단체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니다. 정치 집단도 아니다. 노사모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고 예단하거나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무드블루)


제2 탄생을 위한 산고일까

노사모 지도부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주문한다. 대선 국면이라는 특수 상황이 지나간 만큼 결집력이 이완되고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명계남씨에 이어 노사모 대표일꾼 자리를 물려받은 차상호(41)씨는 향후 노사모의 지향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노사모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계속 이뤄져야 할 부분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슈들을 좇기 보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지역 감정 해소, 동서 화합 등 사회 전반에 밑거름이 되는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어차피 노사모가 처음 결성된 것도 노 대통령이 지역 감정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였으니까요.”

아직 노사모를 지키고 있는 상당수 회원들도 지도부의 이런 생각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한 회원은 “노사모라는 이름을 걸고 무엇을 하는데 집착하기 보다는 노사모에서 배출한 일꾼들이 각기 원하는 조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적자 노사모’가 제2의 노사모를 탄생시키기 위한 산고일지, 아니면 노사모 총체적 위기의 시그널일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2003/04/02 13:10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