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미국은 수백명의 빈 라덴을 만들고 있다"


■ 석유 황제 야마니
제프리 로빈슨 지음/유경찬 옮김/아라크네 펴냄

“미국은 중동에서 두 가지 목표를 확실하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석유입니다. 석유 수출금지 조치를 취했던 1973년을 제외하면 이 두 가지 문제가 한 번도 조화를 이룬 적이 없습니다. 석유 수출금지가 미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나머지 미국은 걸프만의 석유를 장기간 통제하기 위해 군사적인 수단을 동원하게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아랍 국가들 덕분에 미국은 성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물러났지만, 무려 25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을 지냈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으로 서방세계와 맞서 ‘미스터 오일’이라고 불렸던 쉐이크 아메드 자키 야마니가 지난 2월 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 도서전에 초청 연사로 참석해 한 말이다.

그의 말은 또 이어진다. “메이저 석유회사의 이익에 앞장 선 사람들로 구성된 부시 행정부에는 체니 부통령이 관장하는 ‘5인 위원회’라는 은밀한 조직이 있습니다. 장막에 가려져 있었지만 곧 이어 실체가 드러났지요.

5인 위원회는 걸프만 석유, 특히 사우디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어 왔습니다.” “미국이 가장 원하는 해결책은 사담 후세인이 망명하고, 미국이 정복자로서 바그다드에 무혈 입성하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미국은 대부(代父)에게 충성심을 보이는 하수인들을 모으고 있지요.”

이 책은 이런 이야기를 한 야마니에 대한 평전이다. 1989년에 출판되었지만 지금도 많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우선 미국과 이라크와의 전쟁 때문이다. 석유가 이번 전쟁의 주요 요인이라는 점에서 야마니만큼 중동 석유 문제의 속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인물은 드물다.

그를 통해 미국과 중동의 갈등, 중동 국가들간의 역학 관계, 유가 움직임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는다. 또 야마니를 높이 평가하는 사우디의 왕세자 압둘라가 파드 왕의 뒤를 잇게 되면 야마니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전망하고 있다.

그의 일생은 ‘중동 석유의 현대사’다. 사우디 메카에서 태어나 미국의 뉴욕대와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사우디 최초의 국제변호사가 됐다. 그와 서구의 메이저 석유회사 들과의 기나긴 전쟁은 이때부터 본격화한다.

중동은 석유의 원산지였지만, 이를 지배한 것은 서구의 석유 재벌들이 결성한 아람코라는 강력한 카르텔이었다. 그는 석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사우디 파이잘 왕세자에 의해 1962년 석유장관으로 발탁된 후 먼저 아람코와 한판 승부를 벌였다.

그는 석유대학이 국영석유회사가 필요로 하는 기술자 과학자 관리자를 배출하기 전에는 실질적으로 아람코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960년대 중반 다란에 석유광물자원대학과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민이 세워졌다.

이 대학은 산유국 최초의 석유관련 대학으로 지금까지도 중동지역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 받고 있다. 야마니는 이 대학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침내 그는 1972년 걸프만 산유국을 대표해 아람코에 석유회사들과 공동으로 참여한다는 테헤란 합의서를 작성해 석유 국유화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1967년의 6일 전쟁, 73년의 1차 석유 파동, 78년의 2차 석유 파동 등에서 그는 아랍의 이익을 위해 일부 아랍 국가들의 독선과 미국의 오만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나갔다. 그러다 보니 아랍의 강경파들로부터는 ‘미국의 앞잡이’라고 매도 당했고, 케네디에서 레이건에 이르는 6명의 미국 대통령들은 그를 ‘비협조적’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적은 부정부패에 빠졌을 뿐 아니라 수요 공급의 기본 법칙조차 모르는 왕족들이었다. 1986년 유가가 폭락한 시점에서 왕은 전투기 등을 대량으로 매입하기 위해 3,450억 배럴의 원유를 암시장에서 팔라고 명령했다. 단지 커미션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고, 그 결과는 면직이었다. 그는 자신의 면직 뉴스를 카드놀이를 하던 중 TV를 통해 들었다.

그 후 그는 여러 석유회사의 제의를 물리치고 런던에 거주하면서 국제에너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회교 서적 출판도 겸하면서. 그는 앞에서 언급한 국제 도서전에서 또 이런 말을 했다. “무엇보다 이라크 전쟁의 가장 큰 후유증은 수백 명의 또 다른 ‘오사마 빈 라덴’을 길러낼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석유와 관련시켜 이번 전쟁을 보려고 한다면 한층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논픽션 방송작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실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찬양 일변도가 좀 거슬린다.

이상호 논설위원

입력시간 2003/04/0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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