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전문경영인 체제로 위기 돌파

손길승·표문수 투톱…오너 지배력 약화, SK텔레콤 분리 가능성도

3월31일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309호 법정. 서울지법 형사합의 22부(재판장 김상균 부장 판사)는 이날 최태원 SK(주)회장을 비롯해 손길승 SK그룹 회장, 김창근 SK그룹 구조 조정 본부장 등 SK경영진 10명에 대한 '계열사 재무제표 분식 회게 및 내부 거래로 인한 부당 이득' 혐의를 심리하는 첫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은 부도 기업을 제외하고 단일 기업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1조5,000억원대의 분식 회계를 저질렀다는 검찰 수사 결과와 달리 회계 기준의 모호성으로 인해 검찰이 추산한 분식회계 규모가 적정하지 않다고 맞서는 변호인단과의 법정공방이 치열했다. 다소 초췌한 모습으로 공판에 나선 최회장은 시종 일관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SK호 이끌 선장은 누구인가

재계는 최 회장이 구속됨에 따라 향후 과연 누가 SK그룹을 이끌어 갈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40),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글로벌 상사 부문 부사장(39)등 오너 그룹이 있기는 하지만 오너 그룹의 파워가 아직은 부족해 당분간 손길승 회장 1인 경영 체제로 유지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대부분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SK그룹의 주력사인 SK텔레콤의 경우 표문수 사장의 독자적인 경영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표 사장은 지난 연말 인사에서 일부 오너 그룹의 입김을 배제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주요요직의 임원을 임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 회장의 고종 사촌형인 표 사장은 1953년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한때 교수로 재직했었다.

1989년 그룹 경영기획실 과장을 시작으로 SK와 연을 맺은 표 사장은 94년 대한텔레콤 이사로 부임하며 정보통신 분야에 입문, 한국이동통신의 경영기획실장과 상무, 기획조정실장, 전무, 부사장 등을 두루 역임하고 2000년12월 사장에 취임했다.

SK그룹 내부에서는 SK텔레콤이 올해도 공격적인 기업인수·합병(MA)자세를 계속 견지할 것으로 보여 표 사장을 그룹의 실질적인 2인자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SK그룹의 주력사 중에서 텔레콤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구 크고 손회장이 통신부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표 사장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다"며 "최 회장도 표 사장을 신뢰하고 있어 당분가 표 사장의 입지는 확고 부동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고 지적했다.


꿈틀대는 SK텔레콤 분가설

일부 외국 투자 기관들은 SK텔레콤이 계렬분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표 사장의 입지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에서 분리되기 전에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은 것은 물론 주가에도 악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할때, 표 사장이 SK텔레콤을 별도 분리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을 정도다.

최태원 회장 등 오너 가족들은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 분명하지만 최 회장이 주식 표기각서를 채권단에 제출한 상태이기 때문에 SK텔레콤 계열 분리는 채권단이나 정부에서 회사 경영진을 종용해 밀어 붙이면 성사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K 텔레콤은 SK(주)와는 달리 각 계열사들과의 복잡한 지분관계가 비교적 적은편"이라며 "SK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고 다른 계열사가 갖고 있는 SK텔레콤 지분은 자사주 형태로 매입하면 되기 때문에 계열분리가 기술적으로 그다지 어려울 것은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문제는 SK그룹의 현금 창출 역할을 하고 있는 SK텔레콤이 분리되면 SK(주)를 비롯한 다른 주력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기 때문에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 분명하며 오너 가족들의 반대가 많아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나 증시에서는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SK텔레콤이 SK그룹에서 분리돼 전문경영인 체제로 재편되면 오히려 더 환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은행 등 채권단이나 재정경제부 등 정부에서는 현대그룹 사태와 달리 이번 SK글로벌 사태가 SK그룹 전체로 확산될 기미가 아직은 없기 때문에 무리하게 SK텔레콤을 분리할 필요는 없다는 부정적 시각들이 팽배해 분리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표문수 사장이나 SK텔레콤 입장에서는 SK글로벌 사태가 SK증권 등 다른 계열사에 옮겨 붙으면서 파문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미리 계열분리에 따른 이해득실을 분석해 보는 작업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향후 SK그룹의 변화

재계는 SK텔레콤 등 SK 계열사의 분가(?)움직임을 놓고 SK그룹 최태원 회장 가족들이 다른 그룹에 비해 그룹 장악력이 부족했고 SK글로벌 사태로 경영권 포기 각서까지 제출했기 때문에 앞으로 SK그룹이 정상화 과정을 거치더라도 과거와 같은 오너 경영체제로 복원되기 어겹다고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SK그룹은 결국 주력 업종인 통신과 에너지 등 몇 개 사업군으로 분할되어 독립 경영체제로 탈바꿈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착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최 회장 가족의 그룹 지배력은 느슨한 형태로 유지되는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한편 SK글로벌은 우선 그룹에서 분리해 채권단이 주도권을 쥐고 경영 정상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SK는 다른 계열사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안해 SK 글로벌은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광범하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관계자는 "SK그룹이 향후 몇 개의 소그룹으로 분리될 가능성도 있고 SK글로벌이 채권단 관리 하에 있는 등 그룹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어 구조조정본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무용론이 내부에서 조차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향후 SK그룹 구조본은 해체되거나 존속하더라도 그 역할과 위상이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SK그룹 구조본은 올해 초에 전체 3개 팀 중 사업구조 조정팀을 재무개선팀과 합쳐 2개 팀으로 축소한 바 있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직을 한 번 더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입력시간 2003/04/0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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