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디지털시대의 디카문화(下)

이미지 공유시대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가 한창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와 관련된 사회문화적 의미를 섣불리 예단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사진 또는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천천히 그리고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게 될 것은 분명하다.

‘아해해’ 문화의 요람으로도 유명한 인터넷 사이트 ‘디씨인사이드’(www.dcinside.com)에는 방문객들이 사진을 올려놓고 서로 품평할 수 있는 갤러리가 마련되어 있다.

갤러리는 사진의 성격에 따라 풍경, 여행, 곤충, 식물, 애완동물, 접사(接寫), 아기, 와이프, 남녀이성친구, 커플, 패션, 헤어스타일, 도서, 음반, 추억, 코스튬 플레이(만화주인공의 복장과 분장을 재현하는 것), 표정, 인물, 장난감, 누드, 셀프, 틀린 곳 찾기, 패러디, 합성 등과 같은 다양한 카테고리들로 나뉘어져 있다.

왜 올렸나 싶은 사진부터 참 잘 찍었다 싶은 사진에 이르기까지 그 수준은 참으로 천차만별이다. 눈에 띄는 것은 리플(답변)이 달려 있지 않은 사진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처지는 사진이라고 할지라도 퉁명스러운 리플은 달려 있게 마련이었다.

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일까. 사진마다 붙어 있는 리플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허접한 사진과 시시껄렁한 리플들, 그 사이에 디지털 카메라의 문화적 의미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보고 리플을 읽어 나가는 가운데, 여전히 막연하지만 어떤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려놓은 사진들은, 개개인들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새롭게 가치와 의미를 발견한 경험에 대한 고백이자 기록이었다.

맨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일상의 의미를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리플은, 그 어투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사진을 찍은 사람이 일상의 의미를 재발견했다는 사실에 대한 존중의 표현일 것이다. 적어도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드는 순간, 우리의 일상이 작은 의미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보석상자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열광의 배후에는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미디어를 발견했다는 즐거움이 가로놓여져 있다. 그래서였을까.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참으로 아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그들이 찍은 것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이겠지만, 그들이 무의식중에 되돌려 받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눈에 띈 대목은 디지털 카메라가 우리들에게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통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사진, 그림, 동영상과 같은 시각적 이미지는, 사진작가나 화가 또는 영화감독과 같은 전문가들이나 만드는 것이고, 일반인들은 그냥 수용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지를 대할 때에도 의미와 메시지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전통적인 접근방식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일반인들을 이미지의 단순한 수용자에서 능동적인 생산자로 바꾸어 놓는다. 디지털 카메라 사용자들은 이미지의 주체적인 생산자이길 원하고, 이미지의 생산 과정이 즐거운 놀이이기를 욕망하며, 다른 사람과 이미지를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소통의 관계들을 만들고자 한다. “이미지를 가지고 어떻게 놀 수 있을까”에 대해서 즐겁게 고민한다고 보면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이미 멀티 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문자가 아닌 이미지로써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표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이미지의 생산이 특정한 전문가 집단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차원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화적인 의미를 갖는다.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서 우리는 처음으로 일상을 즉각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대중 미디어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몸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구텐베르크의 은하(문자중심의 기록문화) 속에서 우리는 대상을 지시하고 글씨를 쓰는 손을 가졌다. 이제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서 우리는 기계를 미세하게 튜닝(tuning)하는 손이 우리의 일상을 보다 정밀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이미지는 단순한 감각적 데이터가 아니라 변형된 문자이거나 문장이다. 삶을 일상적인 차원에서 기록하는 이미지의 시대가 문자중심의 기록문화에 조금씩 균열을 가지고 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4/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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