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안찾기


■ 유럽 자본주의 해부
(김진방 외 지음/풀빛 펴냄)

20세기 말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붕괴로 전 세계는 자본주의화 했다. 자본주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동일한 것일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자본주의라고 하더라도 그 나라의 역사, 사회ㆍ경제적 상황, 정치, 종교, 지리적 위치, 민족성 등 여러 특성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프랑스의 미셀 알베르 전 국제경제계획위원장은 1991년 발간한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냉전 이후 세계는 자본주의 간의 다툼이 될 것이며, 자본주의를 크게 미국 영국 중심의 ‘앵글로 색슨 모델’과 독일을 축으로 한 ‘라인 모델’로 구분했다.

이 책은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세계화, 즉 시장의 확장은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속성이지만,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효율이나 평등과 관련된 시장의 한계나 폐해가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특성을 보이지 않아, 국가나 공동체에 따라 시장 개입 정도나 규제 방식이 서로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탈규제, 자유화, 민영화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분명히 새로운 세계화 현상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표준’이라는 명목 아래 시장에 대한 외부의 개입과 규제를 해체하거나 약화시킬 뿐 아니라 심지어 전통적으로 시장의 외부로 평가 받던 영역에까지 시장 논리가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한 마디로 앵글로 색슨 모델인 미국식 자본주의가 득세를 하고 있는 반면 독일과 일본 등은 맥을 못쓰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미국식이 일단 세계를 평정한 것같이 보인다. 그런데 미국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세계 경제는 왜 번영을 구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금융의 세계화가 확산된 80년대 이후 남미와 아시아에서 금융 불안정성이 심화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90년대에 미국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보임과 동시에 빈부 격차가 확대됐는데 왜 그런 것일까. 97년 외환위기와 함께 글로벌 표준이 빠르게 정착됐다고 평가 되는 한국 경제에서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세계화와 무관한 것인가.

이 책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과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 받는 유럽의 자본주의에 대해 그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구체적인 작동 메커니즘과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제도 형태들에 이르기까지 살펴보기로 했다”고 저자들은 밝히고 있다.

우리와는 어떤 연관이 있나. 한국 경제에 미국의 자본주의 모델이 이미 상당히 침투한 상황에서 이 모델과 구별된다고 평가 되는 유럽의 자본주의 모델을 연구한다는 것이 때로는 시대착오적인 고집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저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계화가 대세라고 해도 자본주의 모델에 따라 세계화가 진행되는 정도나 그 영향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한국 자본주의의 대안 모델을 구상하는데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 모델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화가 ‘장미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그래서 세계화에 대해 좀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 기본 입장인 것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세계화와 유럽’으로, 세계화 시대에 유럽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딜레마나 문제를 안게 되었는가를 살피고 있다.

유럽에서 시장 논리의 팽창이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위협하고 있으며, 세계화가 독일 경제에서 효율성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평등과 연대의 틀마저 더욱 약화시킴으로써 독일의 복지제도는 기존의 틀 복귀와 세계화 수용 가운데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2부는 ‘독일의 기업 지배구조와 금융 시스템’으로, 이 구조와 시스템이 세계화 이후에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이해 당사자와 은행 중심의 라인 모델은 주주 이익과 자본 시장 중심의 앵글로 색슨 모델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 본질은 지킬 것이라고 보고 있다. 3부는 ‘독일과 프랑스의 혁신 시스템’으로, 이들의 특징과 세계화에 따른 변화 양상을 고찰하고 있다.

저자들의 말대로 독일 경제가 유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아쉽다. 또 유럽에 대한 편견이 종종 눈에 띄지만,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 책은 좋은 자료가 된다. 사족 한 마디.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미국식 경제와 독일식 경제 중 개인적으로 독일식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상호 논설위원

입력시간 2003/04/16 16:36


주간한국